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1주년을 맞은 지난달 1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 문제를 언급하며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위주의 대주주 일가는 주력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을 보유해 주시고 나머지는 가능한한 빨리 매각해 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례 하나하나에 대해 신중하게 면밀하게 사전 검토를 거쳐서 일감몰아주기, 즉 사익편취나 부당지원의 혐의가 있는 사례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조사.제제할 방침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SI(system integration),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 등 일감몰아주기 해소를 위해 지분을 매각해야할 계열사의 종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시장이 요동쳤다. 대표적인 SI업체인 삼성SDS의 주가는 발언 바로 다음날 14% 하락하면서 2조 3000억원 어치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삼성SDS의 주가가 폭락하자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섰고 김 위원장은 며칠 뒤 한 토론회에 참석해 "분명히 비상장 계열사라고 했다"며 상장사인 삼성SDS를 지목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소액주주들의 피해는 물론이고 사적재산권 침해 등 김 위원장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떠나 이번 사태는 공정위원장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재벌저승사자' 김상조 뒤 '경제검찰' 공정위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공정위는 대기업 봐주기와 정권 눈치보기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현 정부는 교수출신의 김 위원장을 공정위 수장으로 내세웠다.
오랫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재벌개혁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도 딱 맞아 떨어지는 김 위원장의 취임 이후 공정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대기업집단 순환출자 구조와 일감몰아주기,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와 계열사간 부당지원,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 등 한국 재벌그룹의 오랜 병폐 해소에 공정위가 나서고 있고 상당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제구실을 못했던 공정위가 현 정부들어 제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해 재벌저승사자로 불리는 김 위원장의 존재감 때문이라는게 경제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동시에 그의 말 한마디에 재벌 대기업들이 벌벌떠는 상황이 빚어진 것은 김 위원장의 존재감 못지 않게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조직이 그의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시민단체 시절부터 줄기차게 재벌개혁을 외쳤지만 재계나 언론, 어느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정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공허한 외침으로만 들렸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중대 경제사건과 관련해 조단위의 과징금을 메길 수 있어 기업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 여기다 담합행위 등에 대해 수사기관에 고발을 할 수도,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전속고발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시말해 오랫동안 지켜온 김 위원장의 신념을 공정위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 뒷받침해 주면서 현재의 김상조號가 탄생한 것이다.
◇ 공정위 적폐 수사가 외부의 견제?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던 김상조號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바로 검찰이 공정위 퇴직자들의 대기업 특혜 취업과 대기업 봐주기 등의 혐의를 잡고 공정위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면서부터다.
김 위원장의 친정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검찰의 공정위 압수수색 직후 성명을 내고 "적폐청산과 조직개편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지난 1년간의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위 내부의 불공정과 부정의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주요 정부기관 중 유일하게 적폐청산을 위한 진상조사와 책임자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공정위"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퇴직자들이 대기업이나 대형로펌에 재취업해 이들의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현직자들은 곧 다가올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혹은 선배들과의 인연을 뿌리치지 못해 공정하지 못하게 사건을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 그동안 공정위와 대기업간 유착 의혹의 핵심이고 이번에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혐의 사실이 대부분 지난 정권 시기에 있었던 일인 만큼 자신이 취임한 이후의 공정위와는 무관하다며 선을 긋고 직원 다독이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압수수색 다음날 "이번 검찰 조사 등 외부의 견제와 비판이 거센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위원회에 부여된 막중한 소임인 재벌 개혁, 갑질 근절, 혁신 성장,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등의 업무가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 나가도록 하자"고 밝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공정위 조직의 인적구성에서 현 정부 들어 달라진 것은 김 위원장 자신을 비롯한 일부 정무직 뿐이라는 점이다.
예를들어 가습기 살균제 부실.봐주기 조사나 4대강 담합 8개 건설사 미고발 등이 전 정부에서 일어났지만 당시 사건을 맡았던 공직자들은 상당수 현직에 있다. 또, 특혜 취업해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퇴직자들과 접촉한 인사들도 당연히 현직 공정위 공무원들이다.
◇ 수장 의지보다 근본적 체질개선이 먼저
김 위원장의 논리대로라면 자신이 취임한 이후 공정위 조직이 변모했기 때문에 이들의 과거 잘못을 굳이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현실 인식으로 재벌 등 외부세력에 대한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재벌과 보수언론 등 개혁 저항세력들은 김 위원장의 개혁작업을 ‘칼춤’에 비유하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입장에서 이번 검찰 수사는 공정위가 주도하는 개혁의 정당성을 반감시키는 호재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않고 남 눈의 티만 본 격'이라는 반격이 충분히 가능하다.
공정위는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며 적폐청산의 대상에서 적폐청산의 주체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무런 반성도 없었다. 단지 수장만 개혁적인 인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관된 개혁을 강조해왔다. 그 일관된 개혁이 김 위원장 자신의 임기내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퇴임하더라도 조직이 과거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정권에 따라, 수장의 성향에 따라 갈지자 행보를 보여온 공정위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더 이상 어두운 과거와 연결된 관료들에게 휘둘리지말고 국민적 비난을 받은 과거 사건의 재조사 및 관련자 처벌을 위한 독립적 조사기구를 하루빨리 출범시켜야 한다"는 친정의 진심어린 조언을 김 위원장이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