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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성-김광일 PD 죽음, 불공정 방송산업이 낳은 폭력적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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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환성-김광일 PD 죽음, 불공정 방송산업이 낳은 폭력적 결과"

    [현장] 1주기 추모제 '다시,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
    "갑질 없는 세상, 공정한 방송 생태계를 위한 길에 끝까지 함께하겠다"

    지난해 7월 14일 오후 8시 45분(현지시각)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박환성-김광일 PD (사진=김수정 기자)

     

    "고 박환성 PD는 자연 다큐멘터리, 특히 동물들의 세계를 통해 인간사를 다루는 독창적 시각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더욱 주목하던 독립PD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방송사의 갑질에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故 김광일 PD는 지상파의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방송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늘 일자리와 생활고를 걱정해야 했던 대표적인 비정규직 독립PD였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독립PD의 대표 직군인 1인 창작자였고, 수많은 비정규직 독립PD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두 PD는 방송계에 독버섯으로 만연해 있는 불공정한 제작 관행이 낳은 쌍생아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방송계의 일그러진 초상입니다." _ 한국독립PD협회 송호용 회장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될 예정이었던 '야수의 방주'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박환성-김광일 PD가 사망한 지 오늘(15일)로 1년이 됐다. 한국독립PD협회(회장 송호용)가 주최한 故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추모제 '다시,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가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코바코 홀에서 열렸다.

    추모제는 예정된 시각보다 10분 늦은 오후 7시 10분 시작됐다. 첫 순서는 사망 직후 고인 시신을 현지에서 옮겨오기 위한 여정이 담긴 추모 영상 '그들이 떠난 길' 상영이었다. 유족들과 독립PD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사고 차량과, 그 안에 남아있던 빵 쪼가리와 콜라를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해 '독립PD의 척박한 환경과 불공정한 방송 관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독립PD협회 송호용 회장은 "두 PD의 죽음은 약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공정하지 못한 방송산업, 그 제도가 낳은 폭력적 결과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두 PD의 죽음에 주목하고 비통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유족들에 대한 당사자 직접 사과를 거부하고 여전히 진실을 호도한 채 갑질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공영방송 EBS"라며 EBS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故 박환성 PD는 남아공 출국 전인 지난해 6월,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정부 제작지원금의 40% 환수를 요구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EBS는 이 같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 올해 초 언론개혁시민연대-한국독립PD협회와 한 3자 협의 과정에서 나온 철저한 진상조사 및 공식 사과도 모두 거부했다.

    송 회장은 "독립PD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두 PD가 생전에 염원했던 공정한 방송생태계를 만드는 그 날까지,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한다! 그 길만이 말없이 이역만리에서 숨져 간 두 PD에게 살아 있는 우리가 보답할 길"이라고 전했다.

    15일 오후 7시 10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코바코 홀에서 故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추모제 '다시,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가 열렸다. 故 박환성 PD의 동생 박경준 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故 박환성 PD의 동생 박경준 씨는 "형은 일과 결혼했다. 작품을 자식처럼 애지중지했지만, (방송사에) 납품하고 나서는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라는 것에 많이 서운해했다. 그러다가도 또다시 자식 만드는 일에 빠져들곤 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그는 모난 돌이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거대한 정을 맞았다. 거대한 정에 맞선 이유는 그가 무모해서가 아니다. 동료 선후배 PD들이 있어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용기 내 부당거래를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고 본다"고 전했다.

    박 씨는 "현재 맞서고 있는 방송사와의 정황이 불리하다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알 것이다. 공정위 제소 결과도 '무혐의'로 나왔다. 하지만 여기 있는 분들이 함께하는 한 저도 끝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는 "7월 15일 새벽 3시 45분. 나와 나눈 마지막 메시지 '지금 이동 중'. 지금도 어딘가를 이동하고 있는 건지, 김광일 당신을 만나려면 몇 개, 몇십 개, 혹은 몇천 개의 계절을 지나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문을 열었다.

    오 씨는 "나는 여름이란 계절에서 무더위보다 혹한기를 맞이하고 있어"라며 "사고 날 때 번쩍하면서 김광일이 혹시 몇십, 몇백 년 전 과거로 떠나서 거기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이날 추모제에는 정의당 추혜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오정훈 수석부위원장, 한국PD연합회 류지열 회장, 한국언론정보학회 전규찬 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최성주 대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노조 김두영 지부장 등 다수 외빈이 참석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두 사람의 사망 후) 독립PD들을 비롯한 방송제작 노동자들에게 국회도 관심을 가졌고 정부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고, 두 분에 대한 죄책감도 커진다'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을 만들자던 두 PD의 꿈을 후배들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꿈과 열정만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현장을 용납하지 않겠다. 몸소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하나하나 고쳐나가겠다"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출범했다. 이 노조가 합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모든 방송노동자 권리를 보호할 수 있게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키워나가겠다. 두 PD 영전에 이 약속을 바친다"고 전했다.

    한국독립PD협회·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민변 노동위원회·민변 언론위원회·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소비자주권행동·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언론정보학회·NCCK 언론위원회·국회의원 김해영·노웅래·이상돈·추혜선 등은 공동 성명서를 준비했고, 한국독립PD협회 송호용 회장과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두영 지부장이 함께 낭독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이들은 "수십 년간 공공연하게 자행된 거대 방송사의 갑질에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故 박환성 PD는 자신의 밥줄을 내놓고 공개적으로 저항했다. 다른 이들처럼 갑질에 굴종하며 밥줄을 지키고자 했다면, 고인은 방송사와 싸우느라 시간 낭비도, 무리한 촬영 일정 강행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비극적 사건을 제대로 규명했던 방송사가 어디 하나라도 있었던가"라며 "공정한 방송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비단 고인의 뜻일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시대의 사명이다. 방송계 내부의 적폐청산 없이는 방송의 정상화, 공정한 사회는 모두 정치적 수사이자 위선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이원규 시인의 추모시 낭독, 1년이 지나도 외주인력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현실을 짚은 영상 상영이 이어졌다. 1부는 유족과 내·외빈의 헌화를 마지막으로 8시 20분쯤 끝났다. 2부에서는 가수 하림과 아프리카 오버랜드의 추모 공연이 열렸다. 아프리카 여행 중 받은 영감으로 만들어진 노래들로 공연을 꾸몄다. 이후, 故 박환성 PD의 '아프리카 그늘 1부', 故 김광일 PD의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한편, 이날 추모제에는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위원장, KBS 양승동 사장, MBC 최승호 사장, SBS 박정훈 사장, 한국PD연합회 류지열 회장이 추모 화환을 보내 고인의 1주기를 기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두 사람의 1주기인 오늘(15일) 공식 SNS에 "고 박환성 김광일 독립PD 1주기. 방송계 불공정개선을 체감하는 사람은 아직 적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독립PD들의 '전쟁같은 삶'을 기억합니다"라는 글로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이원규 시인이 故 박환성-김광일 PD 1주기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1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故 박환성-김광일 PD에게 헌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1주기 추모제가 열린 코바코 홀 밖에 설치된 안내판 (사진=김수정 기자)

     

    행사장 밖에는 독립PD들의 제작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도 전시돼 있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왼쪽부터 KBS 양승동 사장, SBS 박정훈 사장, MBC 최승호 사장, 한국PD연합회 류지열 회장,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장관 화환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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