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 지난 2015년 3월에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버전으로 재개봉했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서 온종일 나사못을 조이는 찰리(찰리 채플린 분)는, 장시간 반복 노동을 하느라 신경쇠약에 걸린 인물이다. 나란히 있는 동그라미 모양은 뭐든 조이려 드는 그는 정신병원에 가고, 앞서가던 차에서 떨어진 깃발을 찾아주려다 운 나쁘게 시위 주동자로 몰려 감옥에 간다.
출소 후에도 살아갈 방도가 딱히 없었던 찰리는, 고아가 된 가난한 소녀(폴레트 고다르 분)가 빵을 훔치는 장면을 보고 그를 도와준다. 가까워진 두 사람은 남편은 일하러 밖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안일을 돌보는 '평범한 부부'가 되는 상상을 한다. 다 쓰러져가는 집도 둘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한때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가느니 감옥에 있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던 찰리는, 사실 끊임없이 일을 구하려 노력한다. 백화점 야간 경비를 맡기도 하고, 공장이 재가동했다는 소식에 재빠르게 움직여 출근한다. 소녀가 구해 준 가수 일자리에서 재능을 뽐내 이제 좀 빛을 보려나 했더니, 실종 신고된 고아라는 이유로 경찰에 쫓기는 소녀의 처지 탓에 모두 물거품이 된다.
소녀는 찰리에게 "살려고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죠?"라고 묻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위험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원망이 묻어있다. 찰리는 소녀를 위로하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떠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고전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이다.
14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2018 서울노동인권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올해 영화제의 표제작은 '모던 타임즈'(1936, 감독 찰리 채플린)였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정우철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한 해 600명 가까이, 작업 현장에서 죽는다"며 "1930년대 중반 '모던 타임즈'가 나왔던 때와 지금 한국 사회 노동 현실은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여전히 노동의 주인이 아니라 기계 부품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짤막한 개막식 후 곧바로 '모던 타임즈'가 상영됐고, 영화가 끝난 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은수미 성남시장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하 교수는 "산업혁명이 없었으면 노동조합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석유 내연기관이 생기고 전기동력이 사용된 2차 산업혁명은 금속노동자들을 노동운동 중심에 내세웠다. 저 영화가 그 점을 보여준다"며 "'모던 타임즈'와 똑같은 상황이 지금 한국의 화이트칼라 지식노동자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3차 산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이런 영화를 또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2018 서울노동인권영화제' 표제작 '모던 타임즈'가 상영됐다.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은수미 성남시장(가운데)가 말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하 교수는 기계가 고도로 발전한 미래에 대량실업이 발생하지 않겠냐는 두려움에 대해, 최근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5년 SNS에 남긴 말로 답을 대신했다. 호킹 박사는 "기계로 창출된 부를 고르게 공유, 분배하는 데 성공하면 모두가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지만, 기계 소유주가 부의 재분배를 반대해 이를 관철하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 교수는 "SF가 무얼 의미하나. '메이즈 러너', '터미네이터', '스타워즈' 등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 대부분은 소수의 지배세력이 안락한 삶을 즐기고 민중 다수는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항상 저항세력이 있고, 그가 주인공"이라며 "미래 사회에도 부를 공유하기 위한 진보적인 운동은 필요할 것이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운동일 것"이라고 전했다.
은 시장은 새롭게 등장한 노동 형태에 주목했다. 그는 "찰리가 있는 사회는 고용계약을 조건으로 '네가 나를 지휘해도 좋아'라고 하는 사회다. 요즘은 고용계약을 안 해도 지휘·명령을 할 수 있다. 배달 노동자들에게 출근은 모바일 앱을 켜는 것이고, 앱을 닫으면 퇴근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적인 경향이지만 한국이 너무 빠르다. 고용계약 없이도 지휘·명령이 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가고 있다. 돈을 버는 행위는 내가 하는데 돈은 다른 쪽으로 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보기엔 사장님이지만 본사 앞에서 자율성을 잃는 편의점주도 한 예로 들 수 있다. 은 시장은 "우리나라 편의점주는 매일 버는 모든 돈을 본사에 올려야 한다. (본사가 가져간 후) 남은 돈을 받는다. 자영업자인데. 이게 노동자와 뭐가 다른가. 또, 한 편의점은 약간 요리를 해서 음식을 파는데, 계약서에 모자나 앞치마를 착용 안 했을 경우는 계약 해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의 자영업이 이렇게 돼 있다. 굉장히 종속적인데도 고용계약이 없는 것이다. 노동의 개념을 어디까지로 확대할지도 정말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은 시장은 "1천 명 이상 대기업의 경제적 영향률은 90% 이상인데, 고용률은 자꾸 떨어져 이제 10%대"라며 "정부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안전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 시장은 "현재 사회보험은 고용계약을 한 대가로 지휘·명령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따라 임금 사업장 기준으로 돼 있다. 고용 여부에 따라 사회보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개인이 사회보험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기본소득 같은 방식까지 될진 모르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도 포함할 수 있는 안전망이 빨리 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GV에서는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장면엔 각자의 해석도 이야기 소재가 됐다. 먼저 꺼낸 것은 은 시장이었다. "찰리와 소녀가 손잡고 떠나는 게 과연 희망인가"라는 게 그의 질문이다. 은 시장은 찰리가 공장노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파업에 대해서는 묘한 거리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찰리는 소녀 손을 잡고 아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자유를 향해 떠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그러면서 "(찰리와 소녀가) 걸어 나가는 게 희망이나 자유가 아니라, 더 이상 대답을 알 수 없는 현실로부터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게 아니었을까. 성장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고 부연했다.
이에 한 관객은 "'모던 타임즈'는 해피엔딩이라고 본다. 채플린은 우리에게 힘든 일을 피하는 도피를 보여주지 않는다.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상심해 있는) 소녀에게 '스마일'이라고 한다.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그걸 헤쳐나갈 에너지는 웃음에서 나온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를 희극의 왕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라는 해석을 내놨다.
하 교수는 "(관객분이 말한 것처럼) 찰리의 말을 '스마일'로 해석한 비평들이 많다"며 "찰리가 소녀에게 포기하지 말라면서, 만국의 노동자가 하는 핸드 모션(팔을 들어 주먹 쥔 모습)을 쓴다. 너희들도 곧 이렇게(노동운동을) 할 것이라며 포기하지 말라고 암시한 게 아닐까"라고 바라봤다.
관객과의 대화는 약 1시간 동안 이어졌다. 마지막 인사에서 하 교수와 은 시장은 각각 다른 메시지를 전했다.
하 교수는 "사회는 반드시 발전하고 변한다. 저희가 이런 영화 보고 토론했다는 이유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갑자기 끌려가서 조사받고 감옥 갈 거라고 아무도 생각 안 하지 않나"라며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행복한 노동자들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은 시장은 "저는 기득권이고 낡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제가 20대 때 도전해서 기득권이 됐듯, 이제 여러분들이 기득권에 도전할 때"라며 " 여러분들이 날아오를 수 있는 정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노동인권영화제는 지난해까지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로 5회째 개최됐다. 올해부터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서울노동인권영화제'로 재탄생했다. '모던 타임즈' 외에도 '닫힌 교문을 열며', '이상한 나라의 서비스', '무노조 서비스', '팍스콘: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 '클린룸 이야기', '아이언 크로우즈' 등 총 7편의 영화가 14~15일 이틀간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