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최광수 (천암함 생존자)
여러분은 천안함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2010년 3월 26일 오후였죠. 백령도 남서쪽 1km 지점에서 침몰한 우리 해군 천안함. 이 천안함 침몰로 104명 중에 58명이 구조됐고 46명은 사망했습니다.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이 꾸려졌고요.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 어뢰에 의한 폭침으로 결론을 내렸죠. 하지만 지금까지도 천안함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참 오랜만에 천안함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폭침이냐 좌초냐, 그런 논란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요. 그 논란, 그 논쟁 뒤에 가려져 있었던 사람들. 58명 생존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분이 참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셨어요. 천안함에서 수병으로 근무했던 최광수 씨인데요. 이 천안함 생존자가 방송에 출연해서 이렇게 육성으로 인터뷰하는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분이 그동안 본 것, 느낀 것 그리고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한번 담아보죠. 천안함 사건의 생존자 최광수 씨 연결이 돼 있습니다. 최광수 씨, 안녕하세요?
◆ 최광수>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우선 어려운 인터뷰 이렇게 용기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최광수> 아닙니다. 제가 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사실은 천안함에 타고 있던 장병들 어떻게 지낼까 저는 늘 궁금했는데... 언론 취재가 막혀 있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게 아니었습니까?
◆ 최광수> 보통 일반 사람들, 제가 만난 사람들도 그 당시에 정부나 국방부가 저희에게 함구령을 내리거나 어떠한 교육을 시켜서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게 그런 함구령이나 어떤 교육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고요. 오히려 언론과 여론의 그러한 반응들이 너무 무서웠고. 그리고 언론에서 제가 어떤 얘기를 하거나 그런 것들이 왜곡되어서 표현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고. 제가 생존 장병들이나 유가족들을 대표해서 어떤 얘기를 한다는 것도 굉장히 무서운 상황이었죠, 그때는.
◇ 김현정> 어떤 말을 했을 때 이게 그대로 전달이 될까 우려들 때문에?
◆ 최광수>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지금 저희와의 인터뷰를 응하게 되신 이유는 뭘까요.
◆ 최광수> 직접 이렇게 나서서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 형성도 불러일으킬 것 같고. 이제는 제가 스스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취재에 응하게 됐습니다.
◇ 김현정>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어떤 정신적인 안정이 그나마 되신 걸까요?
◆ 최광수>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 김현정> 파리에서 유학 중이시라고요?
◆ 최광수> 네.
◇ 김현정> 언제 가셨어요?
◆ 최광수> 정확히는 2012년 1월에 갔습니다.
◇ 김현정> 12년. 사실은 2010년 3월 사고 후 두 달 만에 제대를 하셨는데. 그런데 왜 파리로 가셨어요?
◆ 최광수> 직접적인 원인도 저에게는 그런 언론과 여론들이 저를 힘들게 했었던 이유도 확실하게 있었고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공부도 있었기 때문에 파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 김현정> 고통스러운 과정들이 많았습니까, 그 직후에?
◆ 최광수> 폭침 이후에 바로 전역을 하게 되었고 국가의 어떤 보호도 없이 오롯이 저 혼자 그런 상처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실은 전역하고 1년 정도는 제가 정확하게 뭘 하고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그래서 이동수단 같은 것을 타거나 어떤 건물 같은 데를 들어갈 때도 저는 지금도 항상 그런데 모든 이런 것들이 무너져버릴 수 있겠다...
◇ 김현정> 8년 지났는데 지금도 그럴 정도로?
◆ 최광수> 네.
◇ 김현정> 그런 삶. 제가 날짜 수를 세보니까 3030일이에요, 그 사고 난 후로. 3030일이면 사실은 천안함이 잊혀질 법도 한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까?
◆ 최광수> 그냥 쉽게 말해서 여전히 저희는 2010년 3월 26일에 멈춰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생존 장병들도 모두 그럴 것 같은데. 특히 3월이 되면 약간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저는 그때는 조금 더 심하게 하루 종일 천안함이나 먼저 간 동료들 생각하느라, 계속 현실의 제 삶을 살지 못하는 그런 경우들이 되게 많이 있죠.
◇ 김현정> 최광수 씨, 최광수 당시 병장. 참 죄송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그날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2010년 3월 26일, 전역을 두 달 앞둔 병장 최광수. 어디 계셨어요?
◆ 최광수> 피격 당시에는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쉽게 말해서 배를 운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저는. 그리고 파도가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되게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던 바다로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그 당시에.
◇ 김현정> 일단은 그러면 함수에 계셨네요.
◆ 최광수> 함수, 함교라고 제일 꼭대기. 배를 운전할 수 있는.
◇ 김현정> 그날은 함수에 계셨어요. 사실 바로 직후에 가라앉은 게 함미인데 함미에는 식당도 있고 체력단련실도 있고. 그런데 만약 그날 일이 없는 상태였고 함미에 있었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드시겠네요.
◆ 최광수> 그때 당시에 8시~12시 당직을 서고 있었어요. 굉장히 좀 힘든 당직이라서 그때 당시 장교분 한테 '제가 말년 병장인데 힘든 당직을 서야 되겠냐, 바꿔달라' 이렇게 농담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 제가 그냥 서게 됐죠. 혹시 만약에 그때 시간에 제가 당직을 서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도 (함미 쪽) 식당에서 아마 동료들하고 같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 김현정> 그러니까 누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생사가 갈려버린 그런 순간인데요. 고요하던 그 바다가 갑자기 '쾅' 한 겁니까?
◆ 최광수> 네, 그때 왼쪽 뒤편에서.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으로 배가 얼마간 붕 떠올랐었어요.
◇ 김현정> 1200톤짜리 배가 붕 떠올랐어요?
◆ 최광수> 네, 앞으로 붕 떠올랐다가 그리고 바로 '콰쾅쾅'하는 철골들이 아마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기억을 하는데. 그런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90도 이상으로 기울어졌죠. 이게 말로 표현해서 그렇지 정말 짧은 시간에 몇 초 안에 일어난 일이에요, 이 모든 게. 그래서 당연히 함교 당직자들은 바닥이 되어버린 배의 오른편으로 다들 튕겨져 떨어졌고요. 그리고 동시에 정전이 일단 됐었고. 바로 바닷물이 오른쪽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게 보였어요.
◇ 김현정>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문을 열고 나가셨습니까?
◆ 최광수> 아니요, 일단은 (함교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이 왼쪽과 오른쪽이 있는데. 아예 오른쪽으로 90도 기울다 보니까 오른쪽은 바다죠. 그러니까 나갈 수 있는 문은 위쪽에 위치하게 되는 거죠.
◇ 김현정> 왼쪽 문. 천장에 붙어 있는 왼쪽 문을 어떻게 열고 나가셨어요?
◆ 최광수> 일단은 제 발밑에 'CO2 재킷'이라고 터트리면 부풀어 오르는 그런 구명재킷들이 있어서 동료들한테 하나씩 던져주고, 작동을 시켜주는 것도 도와주기도 했었어요. 이제 나가야 된다고 다들 생각을 해서 천장에 있는 왼쪽 문으로 나가려고 하려다 보니, 그곳까지 올라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 바닷물은 밑에서 차오르고 바닥은 너무 미끄럽고. 또 문을 위로 열어젖혀서 열어야 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중사 한 분께서 '자기 몸을 밟고 올라가라.' 그렇게 겨우 왼쪽 함수로 저랑 함교 당직자들이 올라갔었죠.
◇ 김현정> 겨우겨우 그렇게 해서 천장에 붙어 있는 그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상황이 어떻던가요?
◆ 최광수> 그래서 어느 정도 승조원들이 왼쪽 함수로 올라왔는데. 그때 이제 어떤 누군가가 뒤편에서 "함장님, 함미가 없습니다!"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어요.
◇ 김현정> '함장님, 함미가 없습니다.' 아니, 그 큰 배에 함미가 없다고 소리치는 게 들리셨어요? 돌아보셨겠네요.
◆ 최광수> 네, 다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을 했는데. 함미가 있어야 할 공간 쪽으로 봤는데, 함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저도 인식을 하게 됐고.
◇ 김현정> 반토막이... 두 동강이가 나서 뒤쪽이 없는 거예요, 아예?
◆ 최광수> 네, 아예 없는 상황이었죠.
◇ 김현정>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으셨겠네요.
◆ 최광수> 네. 저는 그냥 '이거는 그냥 폭침이구나'라고 다들 똑같이 생각을 했고. '전쟁이 났구나. 이제 전쟁이겠구나'라는 생각을 다들 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함미를 보는 그 순간 '이거 전쟁이겠구나.' 그런데 실은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초기부터 많이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면 '어떻게 그 큰 배가 그렇게 깨끗하게 절단이 되느냐. 그리고 이게 폭침이라면, 폭발이라면 어떻게 고막을 다친 병사가 하나도 없느냐.' 이런 의심이 쭉 있어왔거든요.
◆ 최광수> 약간 과학적인 측면이다 보니, 제가 말씀드리는 것도 제가 직접 겪은 상황과 정황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라서 그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절단면이 깨끗하다'라고 하는 건, 저는 어떻게 그게 깨끗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직접 보셨다면 절대로 절단면이 깨끗하다고 말씀을 못 하실 것 같거든요, 저는.
◇ 김현정> 그런데 사진으로 보면 정말 물론 깨끗하다고 그래서 자로 잰 듯이 깨끗한 건 아니겠지만. 폭탄이 터졌으면 걸레 같이 울퉁불퉁 절단이 돼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 그걸 이유로 드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 최광수> 그리고 이미 그게 중간에 소실된 부분도 있죠, 당연히. 그런 것들이 안 보이니까 절단 부분이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고. 어뢰로 충격이 왔을 시 발생하는 철판의 휘어지는 정도라든지 그런 것들이 확실하게 발견이 되는 걸로 저는 알고 있거든요.
◇ 김현정> '고막을 다친 사람이 어떻게 없느냐, 1200톤짜리가 두 동강이가 날 정도의 폭발인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 최광수> 그러니까 '배에 직격탄을 맞았을 경우에는 고막이 손상될 수 있다'라고 저는 들었어요. 알고 있는데. 저희 배 같은 경우는 어뢰가 수중 폭발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직격을 맞은 게 아닌 거죠. 그리고 군함이 격실이 되게 많다 보니까 폭발로 인해서 충격파들이 철골과 격실을 통해서 분산이 됐다라고 저는 알고 있어요.
◇ 김현정> 그렇군요. 소리를 흡수했다 이 말씀이시죠?
◆ 최광수> 네. 그래서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오히려 고막이 손상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던 거죠.
천안함. 지난 2010년 인양된 천안함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그렇군요. 누구보다도 그 안에 타고 계셨던 분들이 보기에 이건 좌초냐, 폭침이냐. 그게 북한에 의한 것이든 뭐에 의한 것이든 그건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분명히 폭발이었다 이 말씀이신 거예요?
◆ 최광수> 그리고 저는 한마디를 더 붙이자면 좌초라고 하는 게, 저희 장교분 중에 한 분이 구조를 요청하면서 최초로 '좌초했다라'고 보고를 한 그것 때문에 많은 좌초에 대한 의혹과 음모들이 많이 생긴 것 같은데요.
◇ 김현정> 맞습니다.
◆ 최광수> 해군이나 해상 생활을 하다 보면 '좌초'라고 하는 단어는 '배가 움직일 수 없고 운용을 할 수 없는 상황'을 그냥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상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런 반응들이 나오는 거는 저도 충분히 이해는 하죠.
◇ 김현정> '이해를 한다. 이런 의혹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한다' 이 말씀이세요.
◆ 최광수> 네, 저도 생존 장병이 아니었으면, 저도 수많은 의혹들과 음모론들에 대해서 충분히 저는 이해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한 생각들이 나올 수 있다라고.
◇ 김현정> 다만 '그 안에 있던 생존자로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것을 의심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이 말씀만은 분명히 하시는 겁니까, 확신하시는 겁니까?
◆ 최광수> 네, 물론 국제 합조단에 의해서 나온 결과를 저도 신뢰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보다 저는 제가 겪은, 직접 겪은 정황들을 저는 믿는 사람이라서 어뢰가 확실하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위 보수 진영에서는 '경계도 제대로 못 선 패잔병 취급'을 당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이용을 당한 사람들. 그러니까 진실을 숨긴 사람들'인 양 비난 받고. 사실은 양쪽에서 다 버림받은 느낌 같은 걸 받으셨을 것 같아요, 이 장병들?
◆ 최광수> 그렇죠. 저희를 단순히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그런 것 때문에 저희도 모든 입을 닫아버린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후회도 되는 상황이에요. 그때 저희가 조금 나서서 얘기를 했더라면 그런 것들이 진심이 전해졌을까...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선뜻 나서서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 김현정>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입을 열 이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말씀이에요. 사실 오늘 천안함이 폭침이냐, 좌초냐, 뭐냐.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마는 그날의 생존자, 당사자의 첫 방송 출연이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궁금한 걸 여쭤봤어요, 최 병장님. 8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그날의 그 상황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시는 거예요? 전쟁 같았던, 아비규환 같았던 상황들이?
◆ 최광수> 저는 지금 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늘 천안함 폭침 순간은 잊어본 적이 없고 늘 기억이 나는 거죠. 비명도 지르고, 패닉 상태에 온 동료들도 많았고, 또 피를 흘리고 있는 동료들이라든가. 굉장히 아비규환이었죠, 말 그대로.
◇ 김현정> 그렇게 구조가 돼서 육지에 올라와서 정신을 차려 보니까 46명이 구조되지 못한, 사망한 상황. 100명이 그 좁은 배 안에서 부대끼면서 몇 개월씩 배 타고 이렇게 생활을 했던 거니까 다들 잘 아는 사이신 거죠?
◆ 최광수> 그냥 저는 가족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 김현정> 지금도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어떤 사람이 있어요?
◆ 최광수> 맞선임이었던 동료들이 많이 생각이 나죠. 군생활을 이병 때부터 같이 한 친구들이 저는 가장 생각이 많이 나긴 하죠.
◇ 김현정> 살아남은 자들도 살아도 산 게 아니었겠어요.
◆ 최광수> 마치 그 동료들이 그냥 휴가를 간 느낌이에요, 아직까지도.
◇ 김현정> 아직까지도. 이게 몸의 상처는 치료를 받는다지만 트라우마라는 게 지금 8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거기에 멈춰 있는 느낌이라는 거.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 최광수> 두 달 만에 제가 전역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로 내팽개쳐졌다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 김현정> '사회로 내팽개쳐졌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사실은 누구나 전역하고 싶어서 남은 날짜 세는 게 군생활 아닙니까?
◆ 최광수> 제가 전역하기 전에 어떤 행정관이 와서 하나하나 약속을 했던 게 저는 기억이 나요. 심리 치료, 국군수도병원에서 2년간 무상으로 다니게 해 주겠다, 그리고 심지어 예비군 훈련도 2년 동안 받지 않게 해 주겠다. 그리고 물론 유공자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전역하고 난 후에 다만 그 소식들을 기다리기만 했죠.
◇ 김현정> 그런데?
◆ 최광수>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더라고요. 진짜 버려진 것 같은, 국가에서.
◇ 김현정> 버려진 것 같은. 아니, 그런데 보호를 받아야 되는 상황인데 아무 보호도 못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드셨을 거 아니에요. 그 당시 나오고 나서 직후의 상황이 어땠던 거예요?
◆ 최광수> 가족들 말로는 당시에 제가 계속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잠도 못 자고, 계속 중얼중얼거렸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진짜 1년간 기억이 잘 없는데.
◇ 김현정> 기억도 없어요, 그런 상황들이?
◆ 최광수> 그리고 이제 배가 계속 어떻게든 침몰하게 되는 그런 꿈을 계속 꾸고. 그런 악몽들은 지금까지도 가끔씩 있을 정도로 계속되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지금도 꿈꾸면 배가 침몰하는 꿈을 꿔요?
◆ 최광수> 그냥 되게 자주 있는 악몽? '꿈이다'라고 인식을 해도, 그 친구들을 구해내려고 해도, 계속 침몰을 하는 그런 꿈들을 계속 꾸죠. 그리고 밖에 나가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해도 저에게 다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그래서 한동안 사회생활을 거의 못 하고 은둔생활을 계속했었어요, 집에서.
◇ 김현정> 그러니까 그 당시에 제대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예전같이 캠퍼스 생활을 해야 되는 학생이었는데, 그 생활이 불가능한... 생활이 망가져버린 거네요?
◆ 최광수> 그렇죠.
◇ 김현정> 그렇게 삶이 망가져버렸으면 군에서 이 장병들을 위해서 뭔가 케어를, 보호를, 관리를 해 줬어야 했는데. 그런 게 없었어요?
◆ 최광수> 네, '유공자 신청을 개인적으로 해라.'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심사에서 모두 탈락했다고 답변을 받았고요.
◇ 김현정> 제가 지금 자료를 보니까 말이죠. 돌아가신 분들, 사망한 장병들에 대해서는 다 국가유공자 처리가 됐습니다마는 생존 장병들 중에서는 딱 6명이 국가유공자 처리가 됐어요. 심각하게 몸에 상처를 입은, 몸에 상해를 입은 3명은 국가유공자 처리. 나머지 3명은 정신질환 수준인 장병 3명에 한해서만 국가유공자. 나머지는 선정이 되지 못했네요?
◆ 최광수> 네. 제가 앓고 있는 PTSD 증후군이 유공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사에 모두 탈락하게 됐고요.
◇ 김현정> 그럼 지금 국가로부터 보상 받은 건 뭐예요?
◆ 최광수> 전혀 없죠.
◇ 김현정> 그렇습니까? 이게 지금 최광수 병장만의 일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상황을 호소해요?
◆ 최광수> 심지어 먹지도 못하고 다 토해내고 진짜 몰골이 말이 아닌 친구들도 많이 있었죠.
◇ 김현정> 먹지를 못할 정도?
◆ 최광수> 그냥 뼈밖에 없을 정도로 마른 친구들도 있었고요.
◇ 김현정> 그런 경우도 국가유공자 지정은 안 되는 거예요?
◆ 최광수> 네. 안 된 거죠, 외상이 없으니까. 다친 곳이 없으니까.
◇ 김현정> 그러니까 이게 국가유공자로 지정이 돼서 보상을 받고 안 받고 이런 문제는 두 번째 문제고. '내가 평범하게 살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군대에 입대를 해서 이런 일을 겪었는데, 국가가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구나. 나는 버림받았구나, 방치됐구나.' 이런 서운함이 더 힘들게 하는 걸 것 같아요?
◆ 최광수> 그렇죠. 그리고 심지어 매해 3월에 천안함 추모하는 행사가 대전 현충원에서 하잖아요. 그때도 저희는 초대를 받죠. 당연히 저희는 추모를 하기 위해서 생존 장병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대전으로 가는 그것도 저희는 자비로 가고는데. 거기 행사에 저희가 참석을 하면 모든 카메라 세례를 받고, 정치적인 이용만 당하고. 그리고는 또 아무런 국가적인 지원이 없어요.
◇ 김현정> 그게 하나의 상처라면, 또 하나는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 이런 데 가보면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양쪽에서 공격을 합니다. 특히 지금 천안함 사건이 세월호 참사와 대척점에 있는 …걸로 이렇게 비쳐지는 이런 여론들도 있는데. 최광수 씨, 파리에서 열린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신 사진 있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최광수> 저는 이게 전혀 대척점에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요. 이렇게 서로서로 인터넷에서 세월호가 어떻고 천안함이 어떻고, 서로 비교 대상으로 하는 게 너무 안타까운 것 같아요. 저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같다'고 늘 얘기를 해요. 정부의 그런 안일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고, 그리고 그 안에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애인이고 아들, 딸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본질인 거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원인과 정치적인 관심으로만 천안함과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이러한 이야기들에 정치나 이념이 진짜 필요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천안함. (자료사진)
◇ 김현정> 그러니까 군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낙인 찍힌 상황, 굉장히 힘드시겠어요?
◆ 최광수>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언론이나, 정부 관계자나,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나...전혀 없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까지도.
◇ 김현정> 없다?
◆ 최광수> 그냥 모두 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이용을 하는듯한 느낌을 저희는 계속 받고.
◇ 김현정> 참 안타깝습니다.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그냥 내 옆에서 생활하던 동생 같고, 이웃 같고, 오빠 같은 이 장병들이 그 배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이 상황들을. 이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안타까움이 계속 드는데. 저 멀리 파리에서 어렵게 마이크 앞에 나설 용기를 내셨습니다. 끝으로 최광수 씨가 우리 국민들께, 지금 듣고 계신 뉴스쇼 청취자들께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하시죠.
◆ 최광수> 제가 이렇게 인터뷰에 나와서 하는 말들이 단순히 '저희가 천안함 폭침을 겪어서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 알아달라'고 하는 그런 단순한 얘기는 아니에요. 저희처럼 그런 큰일을 겪은 장병들에게조차 이렇게 당시 정부가 소홀하게 그리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그런 대우들이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죠. 저희는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론과 언론 그리고 스스로와 싸우며 견뎌내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저희의 모습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저는 어떤 국가적인 차원의 어떠한 해법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 김현정> 누군가가 또 나처럼 이런 고통을, 이런 버림받는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 그 말씀이신 거예요?
◆ 최광수> 네.
◇ 김현정> 꿈이 있다면?
◆ 최광수> 어려운 질문이네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그냥 이상적인 꿈이지만 그런 게 이제는 정말 할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것 같죠.
◇ 김현정> 참 마음이 아프네요. 평범하게 전처럼 사는 게 꿈인데, 그렇게 살 수 없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야말로 꿈입니다'라고 하시는 거에요. 최광수 씨, 최 병장님... 힘내시고요. 저는 그 꿈이 진짜 이룰 수 있는 꿈, 실현될 수 있는 꿈이라도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돕고 싶습니다.
◆ 최광수> 감사합니다.
◇ 김현정>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이겨내시고요.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이런 기운을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최광수> 네, 알겠습니다.
◇ 김현정> 오늘 용기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최광수>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천안함의 생존 장병입니다. 46명이 사망했고 58명이 살아났죠. 그중에 1명 최광수 당시 병장, 최광수 씨였습니다. (속기= 한국스마트속기협회) 김현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