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월등면의 한 양계농가가 폭염 피해를 막기 위해 대형 선풍기를 연일 가동하고 있다.(사진=박사라 기자)
"바깥기온이 35도를 넘으면 바람막이를 설치하고 선풍기를 온종일 돌리고 애를 써 봐도 닭들이 더위에 쓰러져나갑니다."
19일 오후 3시쯤 전남 순천 월등면의 한 양계농가에서는 연일 폭염과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형 선풍기 15대를 24시간 가동하며 적정온도인 23~24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9일째 이어진 찜통더위에 실내온도가 30도를 넘기 일쑤다.
농장주 아들 주창현(31)씨는 때릴 듯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생때같은 닭을 한 마리라도 더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육계 병아리 5~6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 주씨는 최근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에 1.4kg 가량의 닭 1000여 마리가 죽어나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씨는 이날도 병아리들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사육장 주변에 물을 뿌리며 열을 식혀보았지만 일주일째 이어지는 폭염을 견디지 못한 닭들이 맥없이 쓰러져 나갔다.
주씨는 "병아리들마저 폭염 속에 살이 찌지 않을 수 있어 걱정은 되지만 24시간 환풍기를 돌리고 또 돌리면서 키우고 있다"면서 "양계농가는 1년 중 더위만 무사히 넘기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순천 별량면 우산마을의 한 양돈농장에서 돼지 수백마리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다.(사진=박사라 기자)
닭보다 덩치가 큰 돼지도 더위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순천시 별량면 우산마을 대덕농장에서 돼지 3천마리를 키우고 있는 농장주 김동철(64)씨는 얼음주머니에 구멍을 뚫어 돼지 목덜미에 물을 뿌려주다 자신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됐다.
주변 온도에 따라 환풍기와 선풍기, 에어컨을 작동시키는 자동화기기 시스템을 수시로 점검하는 일이 폭염 피해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씨는 7~8월 두 달은 다른 달보다 전기세가 5배 이상이 나오지만 여름만 버티면 1년을 잘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씨는 "갑자기 기온이 오르면 사람도 적응하기 힘든데 가축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올해 여름은 장마가 빨리 끝나면서 때 이른 폭염이 찾아와 피해가 클 것 같다"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19일 전남 22개 모든 시군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전남 동부내륙지역에는 고흥을 뺀 모든 시군에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기상청이 밝힌 순천의 이날 낮 최고기온은 36.5도, 체감온도는 40도였지만 농가들이 느끼는 더위는 수치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전라남도 통계에 따르면 19일 기준 순천의 양계 농가 3곳에서 7천 마리의 닭이 폐사했다. 양돈 농가 한곳에서도 10마리의 돼지가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축산농가가 밀집한 나주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15개 농가에서 3만9천 마리의 닭과 오리가, 양돈농가 21곳에서 245마리가 폐사했다.
전남 도내를 통틀어 53개 양계농가에서 닭 14만3천 마리, 6개 오리농가에서 1만 마리, 77개 양돈농가에서 돼지 940마리가 폐사했다. 전체 피해액만도 11억1800만원에 달한다.
전남도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달 28일부터 폐사가 시작돼 누적 피해가 17일 12만4천 마리, 18일 13만8천 마리, 이날은 15만3천 마리까지 증가했다. 매일 약 1만4천 마리씩 늘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지난해 3분의1 수준이지만 이번 폭염이 한 달 가량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어서 이 같은 속도라면 종전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남도는 이날 매일 커지고 있는 가축 폐사 피해를 막기 위해 예비비 30억 원 긴급 투입을 결정하고 소규모 축산농가에 스프링쿨러, 차광막, 안개분무, 환풍기를 지원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지난해 101만2천 마리가 폐사해 역대 최고 피해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3~4일 빨리 무더위가 찾아온 데다 기간도 더 길 것으로 보인다"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