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바른미래당 인사들과 비공개로 만나 한국당 쇄신 구상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선 김 위원장이 한국당행(行)을 택하는 게 적절한 지에 대한 토론과 정계개편 전망에 대한 김 위원장의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특히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먼저 정립한 뒤 "그 깃발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보수 대통합을 시사했다는 분석이다.
해당 자리는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이 주최한 것으로, 같은 당 김상민 전 의원과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 등 서로 친분이 있는 원내·외 젊은 인사들도 함께했다. 일부 한국당 당원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뿐 아니라 바른미래당 장성민 전 의원도 각각 정치와 안보문제를 논의할 손님 격으로 초청됐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김 위원장은 새로운 보수노선의 정립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는 밝혔다. 이 의원은 "자유주의가 파괴되고, 국가·집단주의가 강화되며 정치·경제가 후진화되는 상황, 무책임하게 전개되는 운동권식 정치를 걱정하는 비판과 토론이 많았다"며 "보수의 가치인 자유와 법치, 공정, 안전,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을 살려야 한다는 토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사는 "김 위원장은 '가치 투쟁'을 강조했다"며 "초·중·고 커피판매 금지법도 언급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김 위원장에게 인적쇄신 방안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고 한다. 이에 김 위원장은 "당협위원장 교체 권한이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이런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했던 혁신 구상과 비슷한 내용을 이 자리에서 미리 밝힌 셈이다.
김 위원장이 비공개 자리에서 밝힌 '정계개편 구상'은 설명 대상이 범(凡) 보수 야권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인사들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의원은 "김 위원장은 정계개편의 형식이나 방법보다는 과정과 내용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결론은 우선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수야권의 깃발을 먼저 분명히 세우고, 그 깃발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바깥에서 헤쳐모여식이 되든, 혁신된 한국당 베이스(기반)로 대통합하는 식이 되든, 그 깃발이 선명하고 구성원들이 사명감과 진정성이 있어야 국민들이 지지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바른미래당 인사들이 비대위원장 후보였던 김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토론을 펼쳤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비공개 접촉이 있었던 이날은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되기 불과 하루 전이다. 그가 한국당 비대위 준비위원회와의 사전 접촉을 통해 수락 의사을 전달한 이후로 파악된다.
이 의원은 "(참석자들은) 제 1야당인 한국당이 중요하니 거기에 가서 누군가는 희생하고,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들 했다"며 "(김 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이 분이 왜 한국당으로 가시려고 하는지를 이해하게 됐고, 개인적으론 권하고 싶지 않지만 나라를 위해 진정성을 갖고 한 번 역할을 하시겠다면 말릴 것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들을 했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장성민 전 의원. (사진=자료사진)
바른미래당 내부에도 향후 야권 정계개편에 대한 기대 심리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바른정당 출신 또 다른 인사도 "바른미래당의 향후 진로는 결국 한국당의 변화에 연동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비공개 모임의 구심점이었던 이 의원은 "바른미래당 차원이 아니라 젊은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야당들의 지리멸렬한 현 상황과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였다"고 당 차원의 행보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한편 김 위원장과 함께 초청된 이가 장성민 전 의원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장 전 의원은 9월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다. 그는 앞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의 혁신과 통합을 이루고, 야권 질서 재편의 구심축으로서 당을 확고히 세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장 전 의원은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정상회담을 주제로 당시 얘기를 했었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라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에 절대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북미 정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를 쉽게 낙관할 수 없다는 설명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를 무조건 이념적인 잣대로 들여다 볼 필요는 없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마치 남의 일처럼 하는 방관적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전략적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