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법관들의 태도가 불법행위의 가담자 또는 동조자라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사법농단 사태를 양 전 대법원장 '개인'에 대한 처벌에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김동진 부장판사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내가 양승태 처벌의 구호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대다수 법관들은 과연 진정으로 '피해자'의 지위에만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 당시에 이에 저항하거나 묵시적으로라도 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동조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법관들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2014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1심 재판을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라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법관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게 징계의 근거였다.
그는 해당 글에서 양 전 대법관의 처벌을 요구하는 내부의 목소리에 대해 "마치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중간관리자 지위처럼 동조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실제로 김 부장판사가 지록위마라며 원세훈 판결을 비판했을 때 대다수 법관들은 침묵했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행위에 대해 "대다수 법관들이 '세부적'은 아니지만 '개괄적'으로나마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을까"라고 짚었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법관들이 진실규명 등을 요구하는 것이 책임을 면하려는 '선 긋기'이고 '사법농단의 암묵적 동조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비위행위'에 대하여 엄단을 요구하면서 계속적인 항의를 하는 행위에 대하여 나는 동의한다"면서 "그렇지만 법관들이 마치 피라미드 사기의 중간관리자처럼 자신들이 순수한 피해자에만 머무는 것인 양 행세하면서 국민들의 이런 요구에 편승하여 달콤한 말로 그들의 환심을 산 뒤 힘을 얻고, 그 후 전권을 위임받은 가운데 '판사회의'를 통하여 사법행정권을 독점하려는 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대다수의 법관들 역시 국민들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처벌에 상응하는 엄단'을 받아야할 대상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사법농단 '가담자' 혹은 '동조자' 법관들을 프랑스혁명 당시 독재 공포정치를 펼쳤던 로베스피에르에 비유한 것도 눈길을 끈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전까지는 루이16세의 권력에 빌붙어 지내다 혁명이 일어나자 태도를 바꿔 루이16세를 공격해 대중의 환심을 샀고, 덕분에 권력을 잡았다.
앞서 원세훈 1심 판결을 비판한 김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는 당시 대법원이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이뤄졌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메모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가 적혔다.
최근 공개된 사법농단 관련 자료 중에서도 징계 한 달 전 법원행처가 '김동진 부장판사 징계 결정 후 대응 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있다. 이때문에 김 부장판사는 최근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