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정의당 노회찬(경남 창원성산) 의원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아왔다.
그는 종종 20대 때 용접공으로서 현장 노동자들과 섞여 살았던 시절을 돌아보곤 했다. 26살 청년 노회찬은 198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노 의원은 훗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87년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질 때 나는 믿지를 못했다. 내 평생에 못 볼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내 생애는 그런 날이 안 올 줄 알았다"며 "그런데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87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역사에 대해 굉장히 낙관적이 됐다"고 했다.
국회에 입성해서도 그가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이 같은 '낙관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를 꾸준히 꾀했던 노 의원은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결성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노 의원은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사였다. 하지만 각종 토론에서 특유의 '촌철살인 입담'을 과시하며 대중적 정치인으로 발돋움 했다.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고, 쉬운 언어로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는 그의 발언들은 '노회찬 어록'으로 인터넷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
2010년엔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도 출마했지만 낙선했으며 2012년 서울 노원병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재선에, 2016년 20대 총선에선 창원 성산에서 정의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창원 성산은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노동운동의 핵심 지역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진보진영에서 3선 고지를 달성한 의원은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와 그가 유일하다.
그는 2013년 '삼성X파일 사건'과 관련한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그의 투쟁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는 평이 대체적이다. 그는 당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겠다며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날려왔던 그는 최근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게 됐다.
자신이 걸어온 행적을 부정하는 혐의로서 그는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놓였었다. 23일 노 의원의 유서엔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