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처리를 둘러싼 논란에 흔들리고 있다.
송영무 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기무사 장교들과 정면충돌했다. 송 장관은 지난 3월 16일 계엄령 문건 보고 당시의 정황을 놓고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부딪쳤고 국방부 담당인 100기무부대장(대령)과는 지난 9일 열린 실국장 회의에서 한 발언을 놓고 국민들이 보기 민망할 정도의 진실 공방을 벌였다.
어제 증인 신분으로 국회에 나온 민병삼 100기무부대장은 "장관은 7월 9일 오전 간담회에서 '위수령 검토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송영무, 국회서 휘하 기무사령관·대령과 민망한 수준의 공방
송 장관은 이를 추궁하는 의원 질의에 "완벽한 거짓말이다. 대장까지 지낸 국방부 장관이 거짓말을 하겠나. 장관을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회의장에 배석한 국방장관 군사보좌관인 정해일(육사46기) 준장도 "민병삼 대령이 뭔가 혼동한 것 같다"며 장관을 거들었다.
송 장관이 이처럼 민 대령의 발언에 민감해 하며 강하게 나온 이유는 계엄령 문건에 대해 특별수사가 이뤄지고 부대끼리 오고 간 보고 문서를 모두 제출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지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기 때문이다.
송 장관이 기무사 문건이 문제가 안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건에 대한 그의 인식이 청와대와 크게 다른 것이 되고 결국은 장관은 별 문제가 안된다고 본 문건을 청와대가 이슈화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병삼 100기무부대장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25일 그가 지난 9일 국방부 회의에 참석해 송 장관의 발언을 자필 메모한 후 PC로 작성해 기무사령부에 보고한 문건을 확인했다.
기무사로부터 제출받은 문건에는 송 장관이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장관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하기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민 대령 주장한 보고서 확인…국방부 "사실 아냐, 기무개혁 필요성 반증"
문건에는 또 송 장관이 "위수령 검토 문건 중 수방사 문건이 수류탄급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면, 기무사 검토 문건은 폭탄급인데 기무사에서 이철희 의원에게 왜 주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기무부대 요원들이 BH(청와대)나 국회를 대상으로 장관 지휘권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많은데 용인할 수 없다. 그래서 기무사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이날 "송 장관의 기무사 관련 언급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며 "민 대령 본인이 장관 동향 보고서를 작성해 사실이 아닌 것을 첩보사항인 것처럼 보고하는 행태는 기무개혁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하는 증거가 될 뿐"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3월 16일 계엄령 문건 보고에 대해서도 송 장관과 기무사령관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며
부딪쳐 의구심을 키웠다.
이 사령관은 송 장관에게 20여분간 보고하며 문건의 중대성을 충분히 전했다고 했지만 송 장관은 문건의 중대성을 알았다면서도 보고 시간은 5분여였다고 말했다.
보고 시간이 논란이 되는 것은 문건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초기 판단과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당시 계엄령 문건에 대한 중대한 문제 의식 없이 보고가 이뤄지고 이로 인해 국방부의 청와대 보고도 지체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넉달 동안이나 청와대 보고나 수사 지시 등 조치가 없었던 것이 결국 송 장관의 초기 판단미스나 소극적 대응에서 비롯됐고 같은 맥락에서 '문건이 별 문제가 안된다'는 발언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적폐세력으로 몰려 최대위기 맞은 기무사…송영무 잡고 반격
적폐세력으로 몰리며 해체 수준의 개혁 얘기가 나오는 등 최대 위기에 몰린 기무사가 결국 송 장관의 이런 허점과 실책을 활용해 조직 보호를 위한 대대적 반격에 나섰고 이것이 어제 국방위에서 벌어진 하극상 수준의 정면충돌로 표출됐다는 분석이다.
송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기무사 개혁을 밀어붙였다. 국방부 본부 지원 기무부대를 축소시키고 기무사 본부의 1처를 해체하는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이석구 기무사령관도 정치중립 준수를 선언하고 부대원들이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내부고발을 할 수 있는 인권센터를 만드는 등 개혁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과 계엄령 문건 작성 등도 권력의 지시를 따를수밖에 없었다는 억울함, 장관도 문제가 없다고 인식한 계엄령 문건이 결국 조직의 명운을 좌우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기무사의 불만이 송 장관에 대한 대반격으로 나타난 셈이다.
결국 여야가 이날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군·검 수사와는 별도로 계엄문건이 실제 실행될 가능성이 있었는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검토자료뿐이었던 것인지 또 송 장관의 계엄 문건 대처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송 장관의 의지보다는 수사와 청문회 결과에 따라 기무사에 대한 여론과 개혁 수준이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이런 상황이 도래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송 장관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