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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덕환, 한때 드라마 작업 겁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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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덕환, 한때 드라마 작업 겁냈던 이유

    [노컷 인터뷰] '미스 함무라비' 정보왕 역 류덕환 ②

    최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정보왕 역을 맡은 배우 류덕환 (사진=씨엘엔컴퍼니 제공)

     

    류덕환은 아역 출신이다. 1992년 MBC 간판 프로그램 '뽀뽀뽀'로 데뷔한 그는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순길 역을 맡아 연기를 시작했고, '새엄마', '오남매' 등에도 출연했다. '물꽃마을 사람들', '신의', '너를 노린다', '신의 퀴즈 시즌 1~4', '미스 함무라비'까지, 26년이란 긴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드라마 작품 수가 아주 많지는 않다.

    '웰컴 투 동막골'의 순박한 북한군 서택기,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 등 류덕환이란 배우를 각인시킨 매체는 사실 영화였다. 그러다 만난 운명적인 드라마가 바로 '신의 퀴즈'다. 메디컬 범죄 수사극 '신의 퀴즈'는 류덕환에게 시즌제 드라마의 변치 않는 주인공이라는 선물을 줬다. 해당 채널은 장르물 전문 채널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덕환은 꽤 오랫동안 드라마라는 매체에 겁을 냈었다고 밝혔다. 어릴 적부터 경험한 현장은 '많이 혼났던 곳'으로 기억됐고, 눈치 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행히 변화와 도전의 시기도 찾아왔다. '신의'와 '신의 퀴즈'가 그것이다.

    일문일답 이어서.

    ▶ 정보왕-이도연(이엘리야 분)의 연애도 '미스 함무라비'의 재미 중 하나였다. 도연은 보왕이 안전한 남자라서 좋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보왕은 도연이가 왜 좋았을까.

    예뻐서다. (웃음) 당연히 예뻐서다. 엘리야 씨 처음 봤을 때 한 말이 있다. 너는 너의 그 아름다움에 대해 아름답게 표현하라고 했다. 저는 아름답다는 말을 되게 좋아한다. 예쁜 것과는 다르다. 자기답게 사는 거다. 그 친구가 도연이에 대한 캐릭터를 처음 가져왔는데 너무 확고하고 명확하더라. 그래서 보왕이 캐릭터도 완벽하게 딱 섰다. 이 친구가 하는 것들을 잘 듣고 반응하면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너지가 올라갈 수 있겠다 싶더라.

    보왕이는 다른 사람이랑 있을 때는 자기 말이 다 맞다면서 남의 말을 끊는다. 그런데 (도연이는) 나를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아마 남자들은 다 알 것이다. 여자들도 똑같을 거고. 사람이 자기 감성을 좀 꾸며서 표현할 수도 있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도 있는데, 원래의 나와 자꾸 다른 모습이 표출될 때 이 사람과는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구나 하고 느낄 것 같다. 나를 멈추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분명히 다른 기류가 흐른다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더 확실하게 다가가려고 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예뻐서고. (일동 폭소)

    ▶ 이엘리야가 '키스씬 트라우마 깨게 해 주셨다'며 고마워했다고 하던데.

    아이, 뭐가 감사한가. 자기가 해 놓고. (웃음) 그 얘기도 촬영하는 날 엘리야가 했다. 트라우마인 거다. 걱정이 됐나 보다. 얘가 촬영 와서 주춤하는 모습을 저는 처음 봐서 놀랐다. '오빠, 저 키스씬 어떡해요' 하는데 저는 '그냥 하면 되지'라고 했다. 전작 키스씬으로 무슨 얘기를 들었다는데, 저도 재홍이 형 때문에 군대에서 그 작품을 봤다. 근데 저게(키스씬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이엘리야가 표현한 도연이는 여자들에게도 멋있는 사람이었다. 동성에게 멋지다고 느껴지는 동성이 되기 어려운데. 도연이가 먼저 저를 리드한 만큼, 저는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봤다. (끌려서) 되게 솔직하게 다가간 남자니까. '네가 주춤거리면 나는 완성될 수 없다'고 하니까 고맙게도 엘리야가 잘 받아들여 줬다. 그런 얘기를 나눈 걸 말했나 보다.

    처음에는 되게 힘들어했다. 자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원래는… 대본 보고 작가님이 저를 너무 배려해주셨구나 했다. 제가 (계단에서 이엘리야의 위치보다) 위에 있는 거였는데 그게 너무 별로더라. 감사하긴 하지만. '엘리야 네가 올라가라, 차라리 네가 높은 게 나아'라고 했다. 항상 도연이가 그 자리(더 높은 자리)에 있었고 보왕이는 밑에서 몰래 바라봤던 인물이었다. 이야기에 치중하다 보면 관객들은 그런 부분까지는 쉽게 못 느꼈을 수 있지만, 저는 은연중에 엘리야가 저보다 더 위(높은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제 키도 감춰지고 여러 면이 상부상조하게 되니까. (웃음)

    류덕환은 극중 법원 속기 실무관 이도연 역을 맡은 이엘리야와 연인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JTBC 제공)

     

    ▶ '미스 함무라비'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냄과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던져줘서 흥미로웠다.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는 시장에 갔을 때, 이른바 미러링이 일어난다. 늘 누군가를 바라보는 존재였던 남성이 성적 대상화되고, 정보왕이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장면도 나왔는데.

    드라마적인 요소를 위해 조금 과해진 것도 있지만, 그때 당시에 저희가 조심해야 할 문제여서 가볍게 다룰 수 없었다. 촬영할 때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가 터져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다, 남성들은 반성해야 한다, 누가 무조건 잘못했다 이런 게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의 문제라고 봤다.

    작가님이 (그 장면을) 되게 걱정하셨다. 혹시 나중에 무슨 얘기 나오지 않겠냐 하면서. 작가님이 쓰시는 이야기는 다양한 부분에서 사람들이 반성하고 다시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데 조심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저는 이것도 (드라마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미투'가) 이슈화된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했다. 이런 대사 하나 때문에 (연기를) 못하고 배우 생활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이 작품을 안 했을 거다. (장면을) 알아서 잘 만들어내겠다고 하고 찍었다.

    ▶ 이승기 씨가 군 공백기에 대해 부담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입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저는 없었다. 이승기 씨는 톱스타지 않나. 저는 항상 공백기였다. (웃음) 집중도가 좀 다른 것 같다. 이승기 씨는 저랑 다른 매력을 갖고 있고 또 많은 달란트를 갖고 계시다. 가수도 하시고 드라마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고, 대한민국 최고 예능에서도 잘 동화해서 하시는 분이다. 저는 작품에만 집중해 있다면 (이승기 씨는) 집중도가 굉장히 다양하게 분산돼 있지 않나. 그러니 공백기가 부담되고 걱정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저는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좀 다른 것 같다. 공백기라고 하기엔 군대에서 2년 동안 항상 연기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웃음) 참아야 했다. 제 최고의 작품이 군대에서 나왔다. 앞으로 그만한 연기는 못할 거다. 접신했다, 접신. (일동 폭소)

    ▶ 그럼 제대 후 성격이 달라졌다거나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부분이 있나.

    성격이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군대 때문에 바뀐 게 있다면 군대 안 간 사람들에 대한 여유가 생겼달까. 그들을 놀릴 수 있는… (웃음) 세계 최고로 놀린다. 조금만 더워도 '야, 어떡하냐. 큰일 났다' 이런다. (웃음) 그것 말고 일적인 부분은 관점이 조금 바뀌었달까. 순화해서 얘기하면 용기가 좀 생긴 것 같다.

    제가 20대 때는 온전히 하고 싶은 것만 했다. 하고 싶은 작품 위주로만 했다. 대중을 배제하고. 근데 2년 동안 정말 대중과 같이 벌거벗고 씻고 밥 먹고 자고 그러다 보니 이제야 조금 대중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제가 병장 때 후임으로 들어온 이등병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 TV에서 보면 진짜 반가울 것 같다'고.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냐. 어떤 배우가 예쁘냐, 이런 걸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고르고 고른 말이 그거였다.

    엄청 감동적이었다. 아, 진짜 나는 모르고 살았구나. 내 것만 보고 살았구나, 하고 느꼈다. 드라마 매체에 겁을 내고 적응을 못 할 거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신의 퀴즈'만 봐도 고정 팬들이 항상 기다려주신다. 그분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배우 류덕환에 대한 시선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조금은 폭넓게 작품을 선택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들른 임바른(김명수 분), 정보왕(류덕환 분)은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성적으로 불쾌한 발언을 듣는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일상화된 모습을 뒤집어 '역지사지'를 느낄 수 있게 만든 장면이었다. (사진=JTBC 제공)

     

    ▶ 드라마 매체에 겁을 냈던 이유가 있는지.

    저 같은 경우는 진짜 애기 때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를) 한 사람이다. 지금은 아역 친구들도 너무 다 잘하고, (촬영장에서) 아동 배려가 잘 돼 있지만 그땐 거의 소품 취급도 못 당할 정도였다. 엄청 무시당하고 혼도 났다. 아역 시절 저는 혼났던 기억밖에 안 난다. 연기 못해서 울고, 또 울어야 될 때는 못 울어서 혼나고. 학교 안 가서 좋은 건 있었다. (웃음) 어렸을 때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까 눈치를 너무 많이 보게 된 거다. 이 일이 나한테 즐거운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 거다.

    연기가 즐겁다는 걸 알게 해 준 분들이 장진 감독, 신하균, 정재영 등 형들이었다. 배우로서 확고하게 해야겠단 생각도 했고. 이런 사람들과 작업하다 보니까 영화를 하게 되고, 연극은 좋아하니까 했다. 드라마 매체에 대해 눈치 보는 습관이 있어서 무서웠고, 빠르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있었다. 제가 원래 느린 사람이고 게으른 면도 있어서, (현장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무서웠다. 함부로 내가 덤빌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저만의 착각이자 오해가 좀 있었다.

    ▶ 군대 다녀오고 나서 드라마 현장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된 것인가. 아니면 '신의 퀴즈' 때부터인가.

    '신의 퀴즈' 할 때가 24살이었다. 그때 저는 치기 어린 마음에 (작품을) 했을 수도 있다. 대본이 너무 좋다는 이유 하나만 갖고 갈 수도 있었고. 분명히 어려운 점을 느끼긴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힘들었다. 고생스러우면 티 내고도 싶었다. 다만 시즌제 드라마를 하게 돼 영광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게 잘 된다, 못 된다 하는 기준 자체가 저는 아예 없어서 드라마가 잘 되는 줄도 몰랐다. 케이블 드라마가 많이 없을 때 도전한 것도 대단하고, 잘 만들어낸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제작자분들이 말씀해주셔서 알았다. 그걸 쭉 이어나간다는 것, 꾸준히 보는 분들이 있다는 건 되게 감사한 일이다. 저는 '신의 퀴즈'를, 제가 좋은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나'를 남기는 일기장이라고 생각했다. 아, 또 중간에 (드라마에) 용기를 내 봤던 작품이 '신의'였다.

    ▶ 그러잖아도 '신의 퀴즈' 시즌 5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이 많다.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나.

    지금 솔직하게 밝힐 수 있는 건, 시즌 5 이야기는 시즌 4 끝나고도 나왔다는 거다. 전역 6개월 전에 재범이 형('신의 퀴즈' 박재범 작가)이랑 통화한 것도 사실이다. 제작진이 굉장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도 맞고. 모든 것들이 많이 진행됐다, 너무 감사하게도. 근데 아직 시놉시스나 대본도 못 받았다. 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저는 '돈 많이 주면 하겠다'고 했다. (일동 폭소) 대본이 좋으면 당연히 한다. 만일 제가 안 하게 되면 대본이 별로라는 뜻이다. (일동 폭소)

    배우 류덕환 (사진=씨엘엔컴퍼니 제공)

     

    ▶ 예전에 더빙도 했는데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일동 폭소) '뽀뽀뽀'를 하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성우 선생님들이랑 되게 친했다. 성우들이 하는 연기가 되게 신기하더라. 목소리 연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처음 한 게 '마리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1년 가까이 모션까지 다 따면서 했다. 분명한 건 배우들이 목소리를 입혔을 때, 움직임에 대한 호흡 같은 디테일한 것을 성우 선생님들만큼 따라갈 수 없다는 거다. 저는 (더빙을) 굉장히 신기하고 궁금해했고, '해리포터' 더빙도 맡게 됐다. 한 1인 10역 정도 했던 것 같다. 엄청 의욕을 보여서 나중에는 주인공 역도 했다. 열심히 했었다.

    ▶ 마지막 질문이다. '미스 함무라비'에서 정보왕이 만화 명대사를 따서 '부장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습니까?'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덕환 씨에게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

    하나만 뽑으라고 하면… 장진 감독님 만난 순간이라고 하겠다. 그때 제가 어떤 용기가 생겨서 영웅적인 마인드가 만들어지고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꿈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연기하는 것에 대해 확신도 없고 즐거움을 찾기 힘든 나이였다. 그때 제게 즐거움을 찾아주셨다. 그걸 시작점으로 해서 지금까지 좋은 형들을 만나서 잘 성장해 온 것 같아서 제게는 가장 큰 은인이다. 제가 가장 큰 은혜를 갚아야 하는, 변하지 않는 1인이다. 근데 진이 형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다. (웃음) 아마 이 인터뷰도 안 볼 거다. (웃음) <끝>

    (노컷 인터뷰 ①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판사는 신이 아니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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