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인랑'에서 이윤희 역을 맡은 배우 한효주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25일 개봉한 '인랑'(감독 김지운)은 통일을 앞두고 혼란스러운 정세에 세 다툼을 하는 특기대와 공안부의 이야기가 가장 두드러진다. 여기에 인간병기로 살아온 임중경(강동원 분)이 조직을 떠나 개인을 되찾으려고 하는 고민을 담았다.
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빨간 망토 소녀의 언니인 이윤희(한효주 분)는, 임중경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당일 타인에게 좀처럼 털어놓기 힘든 속 얘기를 나누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공각기동대'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 '인랑'과 다르게 영화에서는 멜로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확실히 갈린다. 자기 동생을 죽게 만든 책임이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사랑하게 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중 로맨스를 직접 연기한 배우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영화 개봉 당일이었던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효주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강동원과 다르지 않은 대답이었다.
(노컷 인터뷰 ① 한효주, '인랑'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두 사람은 언제 사랑에 빠졌을까한효주는 지난 2월 개봉한 '골든 슬럼버'에 이어 강동원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전작에서 서로가 풋풋한 첫사랑이었다는 점이 슬며시 나왔다면 이번 '인랑'에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서사로 진행된다.
극 초반부터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려지는 만큼,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연기하는 두 사람의 교감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한효주는 "(상대역이) 강동원 배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웃었다.
그는 "사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제 개인적으로는. 멜로 영화를 보면 다 한두 컷에서 끝난다. 눈빛 주고받고 끝! 저 둘은 사랑하겠다 싶었다. (관객은) 언제 그렇게 사랑에 빠진 거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본능적인 이끌림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럼 이윤희 입장에서 임중경에게 마음이 간 때는 언제였을까. 한효주는 두 사람의 눈이 처음 마주쳤던 케이블카 장면을 들었다. 그는 "처음 마주치는 장면이 되게 좋았다. 서로의 눈빛 하나만으로도 다 표현이 되니까"라고 부연했다. 실은 케이블카 씬은 원래는 없었는데 나중에 추가된 장면이라고.
"처음 눈을 딱 마주친 순간부터 이윤희는 감정의 변화가 확연히 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머리를 묶었다가 화장실에 들러서 머리를 풀잖아요. (웃음) 여자로서 좀 더 어필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사랑이 시작된 시점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라고 생각해요. 계속 흔들리는 캐릭터니까 그런(좋아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아니야. 이러면 안 되지'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엄청나게 갈등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 한효주가 꼽은 인랑의 장점 '복합적인 볼거리'
이윤희는 극중 인간병기로 살아 온 임중경(강동원 분)과 사랑에 빠진다. 이 과정이 영화 속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라,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렸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한효주는 이날 인터뷰에서 영화 출연을 확정 지은 다음에야 시나리오를 봤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영화에 관한 믿음이 강했다. 극중에서 빨간 코트를 입고 나오는 이윤희는 '인랑'이 지닌 전체적으로 어두운 채도와는 다르게 색이 선명했다. 기존에 노출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에 맞는, 어둡고 복잡한 캐릭터였다.
한효주는 이날 인터뷰에서 김지운 감독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되게 설렜다. 뭔가, 정말 '영화 같은 영화'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영화를 찍으면서 결과물이 기대되고, 세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되게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과연 김지운 감독님의 '인랑'은 어떨까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지하수로 세트가 잘 재현된 것 같다. 강화복도 실사로 만들었을 때 되게 어색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전혀 위화감 없이 너무 멋있게 나왔다"고 말했다.
한효주는 지난 20일 열린 언론 시사회 때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다. 생각했던 만큼 잘 나왔냐고 묻자 그는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진심으로 든 생각은,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거였다"고 답했다.
"처음 볼 때 놓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일반 관객과 담담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첫 번째 봤을 때 했어요. 위화감이 있을 법도 한 배경과 옷과 세트를 너무 잘 재현했고, 되게 복합적으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새롭잖아요. 비주얼적으로든, 뭐든. 한국 영화에서 그렇게 총 들고나오는 게 어색하기 쉽지 않은데, 너무 표현이 잘 돼 있으니까 보면서 신기했어요. 새로움과 다시 한번 보고 싶단 마음이 함께했어요."
아직 '인랑'을 접하지 못한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묻자, 역시나 강화복 입은 장면을 꼽았다. 한효주는 "강화복 입고 총 들고 지하수로 막 뛰어가는데 폭탄이 터지면서 벽이 무너지지 않나. 그건 진짜 애니메이션 같다. 실사로 어떻게 저렇게까지 찍을 수 있을까.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간 망토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바뀌는 장면도 좋았다. 음악, 내레이션, 삽화가 잘 어우러졌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배우 한효주에게 지금은 '변해야 할 시기'2003년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로 데뷔한 한효주는 이듬해 청춘 시트콤의 대명사인 '논스톱' 시즌 5에 캐스팅되며 얼굴을 알렸다.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 마지막인 '봄의 왈츠' 주연을 맡았고, '찬란한 유산', '동이' 성공을 견인하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반창꼬', '오직 그대만', '광해, 왕이 된 남자', '감시자들', '뷰티 인사이드', '해어화', '쎄시봉', '골든 슬럼버'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충무로에서도 환영받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로 데뷔 15년을 맞은 그는 지금을 '변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만큼 요즘은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한다.
배우 한효주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너무나도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배우로서 가진 것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복이 많았구나, 운이 좋았구나 하는 걸 알았고 감사했어요. 잠시 숨을 쉬면서 보니까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나아가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더라고요. 동시에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도 같이 고민하게 됐어요.
배우 한효주가 아닌 사람 한효주를 좀 더 단단하게, 성숙하게 만들어야만 배우로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요. 지금이 변화해야 하는 시기이고,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길 바라요. 지금 하지 못한다면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좀 더 성숙하고 견고하고 단단한 사람 한효주를 만들어서, 다음 옷을 입을 때가 됐을 때 그 옷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멋있게 소화하고 싶어요. 딱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고민에 골몰할 때 선배들에게 도움말을 듣는지 물으니 그는 최근 배우 문숙을 만났던 일화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 그에게 문숙은 조용히 맛있는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 한효주는 그것만으로 이미 충만한 느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돼서 나 같은 사람에게 밥을 해 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문숙은) 언제 뵈어도 좋은 선배다. 배우 선배이자 인생 선배이시고, 만날 때마다 좋은 기운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랑'에 관한 마지막 인사를 부탁했다. 한효주는 "흥행은 진짜 배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모든 게 잘 맞아야 하고 운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면서도 "다들 너무 고생해서 열심히 찍었으니 그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