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의 김지운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강동원은 '인랑' 개봉 인터뷰에서 영화에 합류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김지운 감독님이 하신다고 하니까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조용한 가족', '커밍아웃', '반칙왕', '쓰리',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 코미디부터, 호러, 느와르, 액션 등을 오가며 인상적인 발자국을 남긴 김지운 감독은, 배우들이 꼭 한번 작업하고 싶다고 입을 모으는 인물 중 하나다.
영화와 잘 맞는 좋은 배우를 밝은 눈으로 알아내어,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해 하나의 팀을 꾸리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이번 '인랑'에서 김지운 감독은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한예리, 최민호 등 눈부신 캐스팅을 완성했다. 거기다 박병은과 허준호가 각각 우정출연, 특별출연했다.
'인랑' 개봉 3일 차였던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김지운 감독을 만났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모은 이유부터, '인랑'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앞으로 감독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컷 인터뷰 ① 김지운 감독이 '인랑'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성취)일문일답 이어서.
▶ 극중 임중경(강동원 분)-이윤희(한효주 분)의 멜로가 뜬금없어 보인다는 반응이 많다.그걸(멜로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SF 액션을 보러 왔는데 왜 멜로가 강화됐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 것 같다. 주인공(임중경)이 개인의 생각을 하고, 개인의 말을 하기까지 자각하는 과정에서 한상우(김무열 분)도 거치고, 이윤희, 장진태(정우성 분)도 거친다. 이때 이윤희와 관계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집중된 부분도 있다. 세 사람을 거치면서 세 집단의 시스템을 거친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한상우는 악당으로 규정돼 있으니까 고민을 많이 안 해도 되고, 장진태도 너무 정확하게 기능이 수행되는 캐릭터이니 그에게도 질문을 많이 던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윤희와 임중경은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는 상황이다 보니, 거기에 어떤 생각과 의문들이 투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멜로 라인이 부각된다고 보신 게 아닐까. 저는 각 인물(한상우-장진태-이윤희)이 임중경에게 똑같은 크기의 혼란을 주고 내상을 입힐 거로 생각했다.
▶ 결말이 원작과 달라졌는데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막혔던 것을 뚫고 가기 위한 메타포가 필요했다. 그게 이야기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통일 반대 시위가 격화됐을 때 막혔던 철도가 (나중에는) 원활하게 뚫리고, 두 정상의 대화도 잘 된다는. 뚫린다는 건 자기 문제에 치열하게 싸워오다가 결국 이뤄냈다, 개인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니 위안과 휴식을 주고 싶었다. 전작에서는 인물들에게 정말 가혹한 시련을 던져준 다음에, 위안도 안 주고 결말도 파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인랑'이) 구원의 메시지가 있는 거라서 그렇게 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인랑'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궁극적으로 '인랑'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뭘까.이 시나리오를 처음 기획하고 쓸 때, 일본에는 아베가, 중국에는 시진핑이 들어섰을 때였다. 러시아에도 아직 푸틴이 있고, 미국은 트럼프가 있고. 어떤 블록화가 돼 있었다. 국내 사회도 보수와 진보로,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 자꾸 벽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현대라는 세계가 장벽이 막고 있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정작 개인의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나 싶었다. 개인이 없어지고 있으니, 개인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봤다. 명백하게 어떤 진영인지 입장을 밝혀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고 억압해 위축시키는 어떤 현상이 심각한 문제고,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문제라고 봤다. 그걸 임중경에게 옮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 언론 시사회 때 완벽한 피사체를 재현하기 위해 지금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좀 더 자세한 캐스팅 배경이 듣고 싶다. 정우성 씨 같은 경우는 여태까지 그가 맡은 캐릭터를 보면 다 자신이 나서야 했다. 다 나서서 뜨겁게 부딪히고 발산하고, 상당히 감정적이면서 저돌적이고 돌파력 있는 역할을 했다.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처음으로 움직이지 않고 모든 걸 장악하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차갑고 엄정하고 냉철하게 모든 계획을 짜고 장악하고 지시하는 배역. 정우성 씨가 나이를 되게 좋게 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미국의 조지 클루니처럼. 이제 정우성의 관록과 연륜, 중후함을 보여줄 타이밍이 아닐까. 그럼 이왕이면 내가 먼저 빨리 써 보자! (웃음)
한효주 씨는 아시다시피 연기를 되게 잘하는 배우이지 않나. 디테일을 잘 표현한다. 멜로나 로맨틱 영화에서 차분하고 청순하고 청초하고 밝고 맑은 여자 캐릭터를 주로 했는데, 어두운 그늘을 한번 끼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럼 강한 여자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효주 씨도 영화를 통해 그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좀 더 재밌는 연기를 했다고 본다. 효주 씨는 연기를 자기 혼자 했을 때와 임중경 만났을 때, 한상우 만났을 때, 구미경(한예리 분) 만났을 때 다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딜레마에 빠진 상태의 이윤희는 여기저기 걸쳐져서 무엇 하나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런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고 분열적인 연기를 해야 했던 거다.
김무열 씨는 약간은 비열한 듯하면서 차가운, 또 섹시한 악당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고 봤다. 제가 느꼈던 김무열 씨의 느낌을 한상우 역에 옮겨놓으면 디테일이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예리 씨도 사실은 전작을 통해서 그런 모습이 나온 적은 없었지 않나. 조금씩 기존에 해 왔던 것과 다른, 좀 더 새롭게 보이는 모습들로 캐릭터 연출을 하면 재밌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윗줄 왼쪽부터 강동원, 한효주, 김무열, 아랫줄 왼쪽부터 한예리, 정우성, 최민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임중경은 고난도 액션을 소화하면서도, 대사나 감정 표현이 거의 없어 접근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강동원에게 이 역을 맡긴 이유는.'인랑'의 임중경은 강동원 그 자체다.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다. 만화영화를 실사화했을 때 가장 이질감과 거부감이 없는 배우가 강동원이지 않나. 그리고 여기서 되게 중요한 게, 프롤로그 끝나고 폐허 위에서 실루엣이 나오지 않나. 실루엣의 기럭지와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태의 액션을 하면서도 캐릭터의 슬픈 내면과 정조를 보이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까. 모두 강동원 씨가 가진 거였다. 아주 투명한 유리막에 싸여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느낌조차 임중경을 표현하기에 되게 좋을 것 같았다. (강동원 씨가) 이미 다 가진 것이어서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볼륨을 좀 올리고 내리고의 문제였지.
▶ 아이돌 출신인 최민호가 주요 배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캐스팅한 계기는.
공교롭게도 시나리오를 쓸 때, 민호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김철진 부분을 쓸 때. 되게 고지식할 정도로 충성스러운 사람이 필요했다. 넘버 투 같은 캐릭터는 거친 이미지 또는 전술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지 않나. 김철진은 고지식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신뢰가 가는 오른팔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민호의 그 건강하고 건전한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그런데 캐스팅 후보 리스트를 보는데 민호 사진이 있는 거다. '역이 작은데도 민호가 하고 싶어 한대?'라고 물었고, 되게 하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미팅을 잡았다. '두 남자'란 영화를 봤는데 연기를 되게 열심히 하더라. 그 열심히가 어떤 느낌이었냐면, '아이돌이 연기한다는 선입관과 색안경은 모르겠고 그냥 난 열심히 하면서 나를 입증할 거야' 하는 느낌이었다. 기특하고 예쁘더라. 민호가 이 역할을 해서 저는 너무 좋았다. 민호의 고민을 알고 있으니까. 아이돌을 얼굴마담으로 쓰는 게 아니라 민호가 연기자로 인정받을 만한 어떤 걸 보여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민호의 취조실 씬은 상당한 연기 수준이 보이지 않나.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것에서 이제 배우 같다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을 할 때는 민호도 저도 지칠 때까지 (최선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다행히 잘 받아주고 따라와줘서 완성됐다.
허준호는 '인랑'에서 이기석 공안부장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출연진을 보면 허준호 씨는 특별출연이고 박병은 씨는 우정출연인데, 특별출연과 우정출연의 차이는 뭔가. 또 두 사람의 출연 배경도 궁금하다.구분하기 나름이다. 우정출연이 조금 더 소프트한 느낌? '한 번 놀러와~' 하는 식이다. 특별출연은 좀 더 강한 디렉션 아래서 책임져야 하는 거다. 둘 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다. 자기 색이 뚜렷하다. 허준호 씨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최대한 끄집어내려 했다. 박병은 씨는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는 어떤 색을 입히든 그 색이 잘 드러나는 배우 같다. '밀정' 때부터 작품을 같이 하려고 했는데 병은 씨가 '암살' 때 큰 역할을 했다. 비슷한 영화에 연이어 나오는 것이 곤란할 것 같았다. '인랑'에서는 딱 떨어지는 역할이 없어서 우정출연하게 됐다. 정말 소금 같은 존재였다. (웃음)
▶ '인랑'을 하게 된 배경으로 SF와 멜로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점을 든 적이 있다. 새로 도전하거나, 혹은 계속해 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그동안 제가 영화를 20년 동안 하면서 여러 장르를 해 왔다. 지나간 작품을 돌이켜보면 뭘 시도한답시고 변죽만 울린 느낌이다. 인제 앞으로는 시도했던 것들의 결과물을 좀 더 완성된 상태로 내놓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호러든, 느와르든, 코미디든. 그런 의미에서 여태까지 탐색했던 장르들을 완성하고 싶다. 예를 들어 호러를 시도한 것에 대해, '이런 결과물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고 증명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의 작업은 '책임지고 완성하는 단계'가 될 것이다.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