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사진=자료사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불거진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농단 사태 속에 퇴임하는 대법관 3명이 대국민 사죄 입장과 사법신뢰 회복을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일부 대법관의 퇴임사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으로 근무한 고영한 대법관은 1일 대법원 청사 2층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부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퇴임하게 돼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며 "특히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인해 법원 가족은 물론 사법부를 사랑하는 많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심경을 밝혔다.
그는 2016년 2월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됐다가 법관 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지자 이에 책임을 지고 지난해 5월 처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법관으로 복귀했다.
고 대법관은 "법원 안팎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고 사법권 독립이 훼손될 우려에 처해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며 "저로서는 말할 자격이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법의 권위는 국가경영의 두 영역 중 이른바 '위엄의 영역'에서 필수적이다. 사법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는 법관들이 재판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늦었지만 사법 권위의 하락이 멈춰지고 사법에 대한 신뢰가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법관들에게 "사법 본연의 임무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각종 권력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이런 소임을 다할 때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사법부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런 고 대법관의 발언은 사법행정의 최고 수장인 전직 법원행정처장이면서 이번 사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강제수사에 나선 검찰이 번번이 일선 법원의 영장 기각에 가로막히는 상황에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 대법관은 "제가 관여한 모든 판결에 대해서는 지금은 물론 향후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판과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두 제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심경을 남겼다.
한편 고 대법관과 함께 퇴임한 김신, 김창석 대법관도 안타까운 심경과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김신 대법관은 "최근 대법원 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국민들에게 큰 실망과 충격을 드리게 돼 참담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면서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대한민국 대법관들이 무슨 거래를 위해 법과 양심에 어긋나는 재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창석 대법관도 "법원이 처한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고 오해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해명돼야 하지만, 사법작용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