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방법으로 기상을 관측한 1907년 이래 서울의 최고기온 기록이 경신된 8월의 첫날.
대부분 직장인의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께부터 서울의 공식 기온은 이미 32.4도를 찍었다.
직장인 박모(32·여)씨는 "아침 9시에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워서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에어컨을 쐬러 회사로 뛰다시피 갔다"면서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회사로 달려간 건 난생처음인 것 같다"고 웃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정오께 수은주는 점점 더 올라 36.8도를 기록했다.
점심을 먹고자 하나둘씩 사무실을 나선 직장인들은 양산을 쓰거나 휴대용 선풍기를 손에 쥔 채 재빠른 걸음으로 실내로 들어갔다.
이날 극심한 더위 때문에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평소보다 훨씬 인적이 드물었다. 노점은 물론 소규모 식당이나 점포도 영업을 쉬는 곳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서울 종로구 인의동 거리는 평소 노점상 10여곳이 운영되지만, 이날은 대부분의 노점이 문을 닫았고 2곳만 영업 중이었다. 그나마 발걸음이 드물어 상인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손님을 기다렸다.
시계나 귀금속 상점가가 즐비한 근처 봉익동도 사정은 비슷했다. 오전 11시가 넘었는데도 시계나 도장, 철물 등을 취급하는 소규모 가게는 물론 근처 식당들도 곳곳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고 안내문을 써 붙여 놓고도 문을 걸어 닫은 소규모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도 눈에 띄었다.
김모(31·여)씨는 "태어나서 이렇게 일주일 넘도록 더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 "봄·가을엔 미세먼지에 겨울엔 한파, 여름엔 폭염이라니 매년 이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민을 하고 싶다"며 혀를 내둘렀다.
차량정체 구간을 관리하는 한 교통경찰관은 "날이 너무 더우니까 구두에 발라놓은 구두약이 녹아서 구두가 쩍쩍 갈라지더라"면서 "선크림을 아무리 발라도 목 뒤가 빨갛게 익고 피부가 일어나 아내가 약을 발라줬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하모(32)씨는 "'피가 끓는다'는 말이 비단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인근 영어학원의 홍보 문구가 적힌 부채를 나눠주던 최모(49·여) 씨는 "몸을 시원하게 해준다는 쿨링 셔츠에 쿨 토시까지 찼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면서 "그래도 전단이 아니라 부채를 나눠주니까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간다"며 활짝 웃었다.
펄펄 끓는 날씨 탓에 저녁 술자리 풍경도 바뀌는 모양새다. 사람들은 제아무리 에어컨을 틀더라도 뜨거운 불 앞에서 고기를 구워야 하는 식당은 피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고모(31)씨는 "회식이나 모임 장소를 추천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직접 고기를 구워야 하는 곳보다는 이미 조리된 요리가 나오는 곳을 권한다"며 "요즘 같은 날씨에 불 앞에 있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고 말했다.
해가 갈수록 날이 더워지는데 정장 착용을 고집하는 기업 방침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회사원 김모(35)씨는 "여름철 회사가 그나마 용인해준 것은 '노 타이'(no-tie·넥타이를 매지 않는 차림)뿐이었다"며 "재킷까지 갖춰 입고 출퇴근하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노랫말처럼 반바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조건적인 정장 고집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서울은 이날 오후 1시30분께 종로구 송월동에 있는 대표 관측소에서 측정한 기온이 38.5도를 기록해 기존 최고기록인 1994년 7월 24일의 38.4도를 넘어섰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