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사진=자료사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계된 미공개 문건이 공개되면서, 검찰 수사의 필요성과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대상이기도 한 고영한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사법의 권위'를 운운하는 등 대법원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검찰에 대한 자료 협조 역시 극히 제한적이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대부분 임기를 보낸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은 1일 퇴임식을 가졌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 후반기인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임종헌 전 차장의 상관(법원행정처장)으로 일했던 고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현 사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음을 잘 알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가 처장이던 시절 법원행정처는 '로비 대상'인 20대 국회의원의 재판상황 등을 정리하고 일선 법관들을 사찰한 문건을 만들었다. 2016년에는 고 대법관이 부산지역 법조비리 은폐의혹과 관련해 부산고법원장에게 연락을 시도한 정황이 최근 검찰 수사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 대법관은 "사법 권위의 하락이 멈춰지고 사법에 대한 신뢰가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면서 사법의 권위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법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는 법관들이 재판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의혹를 철저히 조사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기 보다는 "사법의 권위가 국가경영의 영역 중 '위엄의 영역'에서 필수적"이라는 설명으로 검찰 수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앞서 검찰 수사가 개시된 시점에 대법관 전원이 연명으로 "재판거래는 없다"고 밝힌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입장이다.
이같은 태도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생산한 문건들의 내용을 감안했을 때 사법부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지적이 나온다. 당장 전날 전체공개된 문건들에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재판을 수단 삼아 국회의원을 '압박'하고, 국민 기본권을 흥정거리로 정부와 '빅딜'하려던 정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연스럽게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과 의문도 속속 제기되는 형국이다. 이날 이 모 변호사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유도했다며, 해당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앞서 대한변협도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문서 외에 검찰이 따로 일제강제징용 피해자나 일본군'위안부' 재판거래 의혹 문건을 이미 확보한 상황이라, 검찰 수사에 대한 명분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또 피해당사자들의 반발과 의문도 속속 제기되는 형국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문건들이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생산됐는지를 파악하려면 사법정책실이나 지원실 등을 들여다 봐야 하지만 법원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문건에 대해서만 매우 제한적으로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