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다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폭로자'가 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이 전 대통령의 불법자금 수수 내역을 소상히 밝힌 과정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검찰은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속행 공판에서 뇌물수수 혐의에 관한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 내용을 공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올해 1월17일 구속된 김 전 기획관은 같은 달 30일 "김소남 전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비례대표 공천 청탁과 함께 4차례에 걸쳐 2억원을 받아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의 자수서를 제출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어진 검찰 조사에서 "돈을 전달한 뒤 김소남 전 의원의 요청을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후 김 전 기획관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보그룹, ABC상사, 능인선원 등과 금품거래가 있었다는 진술을 잇달아 내놨다.
여기에는 이병모 국장이 검찰 조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심복 가운데 저를 아는 사람은 김백준 전 기획관 정도"라고 발언한 것이 촉매제가 됐다.
검찰이 김 전 기획관에게 이 진술을 제시하자 김 전 기획관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변호인과 잠시 면담하겠다는 요청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약 20분간 면담을 마친 김 전 기획관은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게 됐다"며 김소남 전 의원에게 추가로 2억원을 받아 이병모 국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을 자백했다.
자백을 한 경위를 두고 검찰은 "구속된 상황에서 불법자금을 받은 공모자인 이병모 국장이 먼저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을 고민한 것 같다"며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김 전 기획관은 '그 외에도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고 이병모 국장에게 전달한 자금이 있느냐'는 질문에 망설이다가 능인선원 지광 스님으로부터 불교대학 설립 협조 요청과 함께 3억원을 수수한 사실을 고백했다. 이어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은 사실도 털어놓았다.
검찰이 재차 캐묻자, 김 전 기획관은 다시 변호인과 면담을 하고는 새로 두 가지가 더 기억났다면서 ABC상사 손병문 회장에게 2억원,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에게 5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의 진술에 대해 "일정표 파일 정도 외에는 아무런 참고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기억에 의존한 것이었지만, 나중에 수입지출 내용과 공여자 조사에서 드러난 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고 밝혔다.
또 "10년 전 일에 대해 숫자까지 기억하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비상한 기억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이 전 대통령 측에서 김 전 기획관이 인지장애를 겪고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염두에 둔 일종의 반박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입원 생활을 하다가 구치소로 돌아간 후 처음으로 이날 법정에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법정 난간을 짚고 약간의 부축을 받으면서 직접 걸어 법정에 들어왔다. 그는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이 공개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