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면서 상당수 병원들이 부실한 진료로 환자 학대 논란을 초래하는 등 환자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CBS의 기획보도 <'인간시장'으로 전락한 요양병원의 민낯> 여섯 번째 순서로 부실한 진료로 환자를 방치하는 요양병원 실태에 대해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브로커 판치는 요양병원… 환자 사고 파는 '인간시장'으로 전락 ② 요양병원 브로커 활동 무대로 전락한 국립대병원 ③ '리베이트' 받고 팔려다니는 요양병원 환자들 ④ 밤과 주말이면 사라지는 요양병원 환자들 ⑤ 오로지 돈… 요양병원 주인은 '사무장'? ⑥ "우리 할머니가 애완견보다 못해?" 요양병원 환자 용품에 곰팡이 (계속) |
광주의 한 요양병원 치매노인들의 병실인 이곳의 컵과 빨대 등 개인용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다.(사진=독자 제공)
A 씨는 치매에 걸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70대 할머니를 병문안하기 위해 지난 2일 광주의 한 요양병원을 찾았다. A 씨는 목이 말라하는 할머니에게 음료를 드리기 위해 컵을 찾다 아연실색했다.
할머니가 사용하는 개인용 위생 컵과 빨대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는 병원 측의 단순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의 컵과 빨대를 살펴보고 A 씨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대다수 환자들의 개인 용품에 모조리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병실에 있는 어떤 환자도 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병실에 머물고 있는 환자들이 거동이 힘든 것은 물론 의사소통도 힘든 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데, 환자복과 음식 등의 위생 상태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A 씨는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우리 할머니가 애완견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환자 학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의 한 요양병원의 치매환자가 모여있는 병실. 이 병실의 환자들 개인용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다.(사진=독자제공)
요양병원 환자들에 대한 부실한 관리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광주광역시 요양병원에서 학대당한 저희 할머니를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8만여 명이 동의한 이 청원 글을 올린 이는 90대 할머니의 온 몸과 얼굴이 상처로 가득했다고 주장하며 학대와 폭행 혐의로 경찰에 해당 요양병원을 고소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요양병원 측은 "할머니가 피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학대나 폭행이 아니라 관리가 부실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병원 측은 이 사건으로 노인보호전문기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조사 결과 폭행이 아닌 방임으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학대와 폭행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관리가 부실한 점에 대해서는 병원 측이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요양병원에서 환자 학대 등 부실한 환자 관리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요양병원의 시설 및 인력의 법적 기준이 다른 일반 병원들보다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CBS 노컷뉴스가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은 요양병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부실한 환자 관리가 일상이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양병원의 70대 입원환자 B씨는 "요양병원이 어느 순간 치료나 요양 목적의 병원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생애 마지막에 들렸다 가는 곳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며 "병원도 환자들한테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생각이 없고, 환자들 또한 병원에 크게 바라는 점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80대 환자 C 씨는 "음식이라도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병원에 민원을 넣으면 한시적으로 좋아지긴 하는데 그 때 뿐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C 씨는 "그래도 우리 같이 의사소통이 되는 환자들은 말이라도 하니까 개선이라도 된다"며 "의사소통이 힘든 환자들은 '살아있는 송장'"이라고 말했다.
요양병원은 의료서비스 수준에 따라 1등급~5등급까지 5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부실한 환자 관리 문제는 주로 낮은 등급의 요양병원에서 발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 인력과 환자 관리 등의 의료서비스 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2년마다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의 경우 등급을 부여 받은 요양병원 78개소 가운데 1등급이 10개소, 2등급이 43개소, 3등급이 19개소, 4등급이 6개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등급을 부여 받지 못한 요양병원도 상당수 있다.
광주의 한 요양병원 치매환자 병실. 환자들의 개인용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다.(사진=독자 제공)
1~2등급 요양병원이 내과와 신경과, 재활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과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다양한 의료진을 갖추고 있는 반면 4~5등급 병원은 진료과로 내과 정도만 있고 겨우 물리치료사로 구색만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2등급 병원이 호텔처럼 안락한 시설을 갖춘 반면 4~5등급 병원은 성인 한 명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병실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등 시설도 낙후돼 있는 게 현실이다. 4~5등급 요양병원의 의료인력 부족과 낙후된 시설이 결국 환자 관리 소홀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요양병원의 부실한 환자 관리가 일상화되면서 요양병원을 관리 감독하는 지자체 보건소에는 요양병원과 관련한 다양한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부실한 식단과 요양병원마다 다른 자기 부담금, 천차만별 비급여 진료비, 요양병원 종사자의 불친절 등이다. 하지만 요양병원관련 민원이 접수돼도 관할 지자체에서는 일회성 지도점검으로 '땜질 처방'만 할뿐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단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적 문제로 저소득 고령 환자들이 여생을 의탁할 수 밖에 없는 낮은 등급의 요양병원들이 현대판 '고려장' 장소로 전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