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재윤군과 동생. (사진=김재윤군 유족 제공)
"엄마, 오빠는 왜 안 와?"
세 살배기 재윤이의 동생이 오빠를 애타게 찾을 때면 엄마는 이렇게 둘러댄다.
"오빠는 구름 나라로 갔어. 거기서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가족 지켜주고 있는 거야"
121cm에 22kg. 故 김재윤 군은 세상에 난 지 5년 9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앓았지만 숨질 당시, 골수 검사에서는 '정상' 판정을 받았다.
3년 간의 항암치료 끝에 완치를 앞두고 있었던 시기다.
재윤이 엄마 허모씨는 "그 때를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죄책감이 들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때는 지난해 11월. 재윤이의 몸에 열이 38.5도 가까이 올랐다.
단순 감기 같아 보였지만 허씨는 혹시나 재윤이 건강이 다시 악화된 건 아닐까 불안했다.
곧장 항암치료를 받았던 영남대병원에 전화를 걸어 아이 상태를 설명했다.
병원 측에서는 혹시 모르니 검사를 받아보자고 제안했다.
아이가 열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예정에 없던 골수검사까지 갑작스레 받게 된 허씨는 괜시리 불안했다.
심지어 그날은 골수검사를 해야하는 환자가 밀려있어 평소 검사를 받던 간호사실이 아닌, 주사실을 이용해야 했다.
산소호흡기와 응급세트도 없는 곳이라 엄마의 불안은 더 컸다.
꼭 오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거냐고 했지만 의료진은 빨리 받아보는 게 좋다고 권했다.
엄마는 병원을 믿고 권유에 따랐다.
지금까지 이 병원에 항암치료를 믿고 맏긴 결과 병세가 크게 호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차 레지던트는 그렇게 재윤이를 상대로 골수검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10분 뒤, 간호사가 다급히 허씨를 불렀다. 허씨가 주사실로 들어갔을 때, 아이의 심장은 이미 멈춰 있었다.
산소호흡기와 응급세트가 갖춰져 있지 않은 주사실이었기에 레지던트가 입으로 인공호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급히 담당의가 달려왔고 심폐소생 끝에 아이의 심장은 다시 뛰었다. 하지만 이미 상당 수준의 뇌 손상이 진행된 상태였다.
레지던트는 '골수검사를 완료하고 엎드렸던 아이를 바로 눕혔더니 입술에 청색증이 와 있었다. 산소 포화도가 77%까지 떨어진 상태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 수면마취를 위해 미다졸람 4mg과 케타민 10mg을 투여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아이의 상태는 나빠져만 갔고 그날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한쪽 갈비뼈가 절반 이상 부서졌고 기관삽관으로 치아도 부러진 채였다.
재윤이는 결국 병원에 도착한 지 약 19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허씨는 "검사를 하러 갔던 아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엄마'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채 떠났다. 그날 어떻게 해서든 검사를 안 받겠다고 우겼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작성한 고 김재윤군 부검결과서. (사진=류연정 기자)
재윤이가 숨진 후 나온 골수검사 결과에서 재윤이는 정상 판정으로 나타났다. 백혈병은 완치된 상태였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작성한 부검 결과서에는 백혈병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진정제 투여와 관련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나와있다.
허씨는 급박하게 진행하느라 아이의 상태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실시한 부실한 검사 과정과 응급 상황에 대비조차 돼있지 않은 병원 환경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했다.
대한소아마취학회 소아진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감기에 걸린 유아의 경우 마취로 인한 기도 폐쇄가 우려되기 때문에 상태를 보아 마취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가급적 감기를 회복한 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고 한다.
허씨는 병원이 이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났고 병원에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심폐소생 과정에서 발생한 '흡인성 폐렴'이 사인이라며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담당의는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서 피해 청구를 하라"고 했다.
이후 전화를 걸어 다시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머니 마음대로 하시라. 병원에 전화하지 말라'는 거였다.
고 김재윤 어린이 유족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13일 영남대병원 앞에서 재윤이 의료사고 원인 규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류연정 기자)
A씨는 13일 영남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한 번 병원 측의 책임을 물었다.
재윤이를 떠나 보낸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병원으로부터 사과 한 번, 실수를 인정한다는 말 한 번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의료진이나 병원이 밉지는 않다고 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3년을 함께 싸워준 이들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어처구니 없는 부실한 대응으로 아이를 떠나보내게 만든 데 대한 사과는 받아내야한다고 생각했다.
A씨는 "그래야 우리 아이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일을 막고 싶은 마음이다. 더는 재윤이처럼 황당하게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 가족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병원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윤이 죽음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도록,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재윤이가 질병사가 아니라 사고사로 떠났다는 걸 병원이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내 전부인 아이를 이미 잃었는데 보상이 무슨 소용이냐. 그런 걸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병원 측은 이에 대해 "환자가 숨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결과가 나온 뒤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