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오는 17일 취임 한 달을 앞둔 가운데 당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가시적인 혁신 성과를 내놓기보다, 당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피해가며 입지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는 김 비대위원장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당의 지지율은 11%로,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정의당에게도 밀려 3위를 기록했다. 한국당 지지율은 김 비대위원장이 취임할 당시 지지율(10%)과 거의 변동이 없었다. 민주당에서 빠진 지지율은 정의당으로 가는 한편, 한국당으론 흡수되지 않은 채 중도층에 머물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선(先) 가치정립·후(後) 인적쇄신' 구상을 내비치며 '자율'을 핵심 가치로 소개했다. 인적쇄신의 칼을 우선 빼들 경우 당내 반발로 인해 조기에 쇄신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쇄신 기준을 '과거 행보'에 두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인적쇄신 등 고강도 혁신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표가 그에게 따라 붙었다. 이와 관련해 김 비대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요란하게 인적청산을 하면 반짝 지지율이 반등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오른 지지율은 오래 가지 못한다”라며 “일희일비 않고 꾸준히 자기 목소리 내면 언젠가 반드시 반등하리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자신의 구상대로 일단 자율 가치를 앞세운 그는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을 '국가주의'라는 표현으로 견제하며 주목을 받는 덴 성공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김병준표 정책 대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비대위원장의 비판을 정책으로 바꿔낼 '정책·대안정당 소위'도 구성된 지 13일이 지났지만 상견례를 포함해 회의는 두 번 밖에 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당내에서 다시 고개를 든 ‘1948년 건국론'을 대하는 김 비대위원장의 입장도 선명하지 않은데, 이 역시 기존 보수층과 당내 반발을 최소화하는데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8.15를 건국절로 제정하는 문제나 당 주최로 15일 건국 행사를 열자는 등의 강경한 주장에 대해선 거리를 두면서도 '1948년 건국론·이승만 전 대통령 띄우기'에 나선 의원들이 개최하는 관련 행사에는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칭한 해당 행사 성격이 김 비대위원장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는 미지수다.
김 비대위원장이 편찬위원장을 맡아 발간된 2007년 '참여정부 국정운영 백서'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반민특위 활동은 이승만 대통령과 친일세력들의 견제 및 방해에 시달려야 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난 9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재조명'이라는 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세미나에선 축사를 통해 "사상적 혼란이 일어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폄훼되고 왜곡돼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는 키워지고 공은 축소되고 있다"고 했다.
결국 '건국 시점이 언제냐'는 질문이 던져지자 김 비대위원장은 14일 "주권과 영토가 모두 갖춰졌다는 측면에서 1948년이 건국 시점"이라면서도 “1919년이 건국이라는 견해를 역사적 오류라거나 완전히 틀렸다고 하고 싶지 않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해야지 국가가 정리하려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이 초반 당내 입지 다지기에 무게를 실은 결과, 지방선거 참패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반성의 부재' 상황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과거 가차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를 비판하던 그의 날선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는 2015년 7월 15일 모 매체와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통치점수는 0점이다. 전형적인 마이너스 정치”라며 “친박이 당 운영의 중심에 서는가. 이들이 주도하면 내년(2016년) 총선에 승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 13일 예정됐던 비대위원 3인에 대한 발표도 ‘추가 검증’을 요구하는 내부 위원들의 건의를 수용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당초 내정된 비대위원 3명을 회의 직후 발표하려고 했지만, 전과 논란 등으로 낙마한 ‘김대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 SNS까지 검증하자는 말이 나왔다”며 “김 비대위원장이 이를 수용해 발표를 미뤘다”고 지연된 배경을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내 통합'을 시도하려던 김병준 비대위가 오히려 '통합의 덫'에 걸려 정작 중요한 혁신은 뒷전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지양형 신중한 행보는 결국 대권욕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김 비대위원장 본인의 거듭된 부정에도 불구하고 줄곧 그의 뒤를 따른다. 한국당의 지지기반이 친박계가 뿌리를 둔 TK(대구‧경북)인 만큼, 일단 집토끼부터 결집시키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