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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허스토리' 단관 가 보셨나요?

    팬들의 사랑과 지지로 만들어진 특별한 시간
    재개봉 요청, 부산 정대협 등 단체 후원도
    민규동 감독, 배우들이 밝힌 뒷이야기까지

    지난 6월 27일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 (사진=NEW 제공)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볼 곳이 없어서,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팬들이 힘을 모아 아예 판을 만들었다. 감독과 배우도 참석할 만큼 본격적인 '이벤트'가 되기까지는, 좋은 영화를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보고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팬들의 열망과 이를 행동으로 옮긴 실행 능력에 있었다. 이처럼 '허스토리' 팬을 자처하는 이들을 '허스토리언'이라 부른다.

    2018년 8월, 현재 상영작(15일 기준 스크린 수 2개, 상영횟수 3회, 누적 관객수 33만 1721명) 중 가장 활발하게 단체관람이 이뤄지는 영화는 아마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일 것이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전쟁 피해국-가해국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갇히지 않고, 편견을 강화하는 '피해자다움'(무결성)을 강조하지도 않으며,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는 이 영화의 관람객 평점은 9점(15일 기준 네이버 9.56-다음 9.1점)을 넘는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6월 27일 개봉한 '허스토리'는 696개 스크린-상영횟수 2618회로 출발했다. 하지만 2주차였던 지난달 4일 스크린 수가 282개로 급감했고 상영횟수도 440회로 줄었다. 그로부터 8일 후인 지난달 12일에는 스크린 수가 두 자릿수(93개)가 됐고, 상영횟수도 125회에 그쳤다.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스크린 수가 절반 넘게 줄어든 데에 문의가 빗발쳐, 제작사 수필름 민진수 대표는 SNS에 다음과 같은 공식입장을 남겼다. "영화의 상영과 시간 배치 여부는 제작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극장 측의 판단에 의해 진행되기에 제작사는 그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좀 더 합리적인 운용이 이루어져 다양한 영화들이 상생하는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가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영화를 보려고 시간을 내도 볼 데가 없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롯데시네마 은평에서 첫 번째 단관이 치러진 지난달 15일 '허스토리'의 스크린 수는 77개, 상영횟수는 103회였다. 이때 시작한 단관은 주 1회꼴로 이어지고 있다. 7월 20일 이수 아트나인, 28일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8월 11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4차례 진행됐다. 지난 4일에는 '허스토리'의 주 무대가 되는 부산(CGV 대연)에서도 단체관람이 열렸다.

    14일에는 올해 첫 정부 공식 기념일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맞춰, 민규동 감독, 배우 김희애, 박자명 PD와 함께한 스페셜 토크가 펼쳐졌다. 당분간' 허스토리' GV나 단체관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8일 대구 오오극장에서 민규동 감독이 참석하는 GV가, 26일에는 서울 내 단체관람(장소 미정)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 단관 분위기는 뭐가, 얼마나 다를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노원구 더숲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영화 '허스토리' 스페셜 토크. 이 행사에는 민규동 감독, 배우 김희애, 박자명 PD가 참석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기자도 지난 11일 진행된 '허스토리&바캉스'와 14일 열린 '스페셜 토크'에 다녀왔다. 단단하고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이들이 가득한 자리는 공기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훈훈하고 열정적이었고, 대부분 그 마음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냈기에 웃음이 넘쳤다.

    단체관람 때는 상영관 대여를 위해 우선 수요 조사를 한다. 문서 입력 폼으로 신청해서 입금이 확인되면 최종 참가가 확정된다. 단순히 영화를 '함께 본다'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단관 때만 특별 제작되는 기념품(굿즈)을 나눈다. 지난 11일에는 투명 부채와 스티커, '관부재판을 아십니까?'라고 쓰인 수건이 제공됐다.

    배우 김희애가 참석해 큰 화제가 됐던 3번째 단관(7월 28일) 땐 극중 문정숙(김희애 분)의 명함이 등장했고, 허스토리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명함에는 '할머니를 생각하는 대한여행사 대표, 부산여성경제인 연합 부회장'이라고 쓰여 있었고, 이날 티켓에는 '대한여행사'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단관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영화 관람 직후 이어지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다. 제작진, 배우들과 함께 '허스토리'란 영화에 한 걸음 더 들어갈 기회이기에 특히 관객들의 호응이 높다. 기자가 갔던 11일 행사에는 원래 민규동 감독만 참석하는 것으로 공지됐으나, 극중 각각 이옥주 할머니, 일본 재판부 판사 역을 맡은 배우 이용녀와 김인우가 깜짝 등장해 환호를 받은 바 있다.

    단관에는 '허스토리'를 여러 번 본 관객 비중이 높다. 11일 GV 마지막 질문자를 꼽기 위해 '허스토리' 3번 이상 관람한 관객을 손들게 했으나 워낙 그 수가 많았고, 6번까지 기준을 올리고 나서야 두 명으로 줄었다. 14일 스페셜 토크에서도 영화를 7번 봤다고 말한 관객이 있었다. 질문이 아니라 극중 대사를 재연해 달라는 요청도 곧잘 나온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영화를 여러 차례, 꼼꼼히 본 관객만 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온다는 것이다. 관부재판 진행 중 서귀순 할머니(문숙 분) 장면만 방청석에서 재판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선 처리된 이유, 중국 난징 위안소 현장을 방문할 당시 필름의 질감이 다른 까닭, 극중 문 사장의 패셔니스타적인 면모는 현실 반영인지 아니면 각색한 것인지, 이상일 변호사(김준한 분)의 일본 이름은 뭔지, '허스토리' 말고 달리 생각한 제목은 없었는지 등등. 이쯤 되면, '허스토리' 관련 깨알 정보를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른바 '허스토리언'들은 배급사 NEW에 '허스토리' 재개봉 문의를 하고, 이를 독려하기도 한다. (사진=트위터 캡처)

     

    완성돼 세상에 나온 작품 자체와, 그 작품을 만든 제작진-배우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것도 '단관'에서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 n차 관람은 기본이고, 단관에 꾸준히 출석하는 관객수가 적지 않아, "자주 뵙네요"라는 인사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14일 스페셜 토크에선 "정말 사랑해요!", "소중한 영화 만들어주시고 연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등의 고백이 이어져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했다.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도 있다. '허스토리' 단관 계정 등 허스토리언들이 영화 정보를 공유하고, 배급사인 NEW에 재개봉 문의를 넣자고 독려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극중 문정숙의 실존인물인 김문숙 회장이 이끄는 (사)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에 후원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후원을 독려하는 '인증'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 단관 GV에서 들은 '허스토리' 뒷이야기

    단관 후 GV는 그 어느 때보다 '허스토리'에 관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풍성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다. 기자가 갔던 11일, 14일 행사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관부재판에서 선고를 내리는 일본인 판사 역을 맡은 김인우가 재일교포라는 사실은 아마 '허스토리&바캉스'에 참석했거나 그 후기를 본 사람들만 알지 않을까.

    김인우는 "위안부에 대해 너무 관심이 있었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를 한다면 반드시 하고 싶다는 간절한 느낌이 있었다. 제가 원했던 생각과 딱 맞아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나쁜 역할'을 맡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위안부 관련 영화에 출연하면 일본에서 절대 활동을 못 할 거로 생각했다"며 "다른 영화라면 별로 나쁜 역을 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이 저를 보고 욕을 할 만한 역을 하길 바랐다. 위안부 영화라면 발 벗고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민규동 감독은 "'깡철이'라는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배우"라며 "당연히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독특하면서도 굉장히 수준 높은 연기로 나와서 늘 관심이 있었다"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김인우는 극중 재일교포로 나오는 이상일 변호사 역 김준한의 일본어 지도를 맡기도 했다.

    민 감독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어 잘하는 배우들에 대해 엄청난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서, 김인우 사단이 한꺼번에 왔다. (김인우가) 캐스팅 디렉터처럼 큰 도움을 줘 감사하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는 중년 여성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예수정, 이용녀, 박정자, 김준한, 이유영, 김해숙, 김희애, 김선영 (사진=NEW 제공)

     

    극중 서귀순을 근로정신대로 보냈다는 자책감에 결국 법정에 나와 위안부 피해자를 옹호하는 증언을 맡았던 스기무라 선생. 배우 구하기가 어려웠던 이 배역도 김인우 덕분에 해결했다. 그의 이모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민 감독은 "한국의 나이 든 배우 중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많이 없고, 일본 배우는 섭외가 쉽지 않았다. 막판까지 공황 상태였는데, (김인우에게) 메신저로 소개받았다. 목소리도 너무 좋고, 제가 생각한 선생님 이미지와도 맞았다. 단아하고 우아하셨다"면서 "(법정 씬에서) 김인우가 곁에 있으며 촬영을 도왔다"고 말했다.

    이용녀는 '허스토리'라는 작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솔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나는 너무 잘살고 있고, 편하기 때문에 너무 미안하다. 이분들(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소재 영화에 출연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 부담이 없었냐고 묻자 김희애는 "1도 없었다"며 "당연히 이건 제가 해야 한다. 그냥 무조건 한다, 이렇게 생각했다. 많은 배우 중 저는 한 사람이었고, 몇 번째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참 감사했다. 민 감독님께서 참, 사람을 제대로 보는구나 싶었다"고 웃었다.

    이어, "할머니들 얘기 듣는 것조차도 저는 좀 무섭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고, 지금도 잘 모른다. 그냥 영화 하나 찍은 것밖에 없다, 부끄럽지만. 나는 너무 모르고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지 했으나, 연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면서도 "아픈 일을 겪었던 할머님들께 저희 영화도 작은 보탬이 됐겠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영화라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답해 박수를 받았다.

    김희애는 "문정숙 씨, 정말 징그럽네요"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 희열을 느꼈다고도 밝혔다. 이는 극중 재판에서 유리해지기 위해 서귀순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끄집어낸 문정숙에게 이상일 변호사가 한 말이다.

    김희애는 "뭔가 통쾌했다. 자기가 가진 이상, 신념에 아주 무서울 정도로, 돌직구로 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그런 게 저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전에 제가 연기한 것 중 그런 캐릭터가 있었을까. 현재 제가 보는 어떤 드라마, 영화에서도 그런 캐릭터가 없었던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도 정말 반갑고 사랑스럽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 많은 단체관람,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민규동 감독은 영화의 의미를 되새기려고 애쓰고, 영화의 수명을 늘려주는 관객에게 특별히 더 고마움을 표했다.

    "오늘(14일) 특별한 날이죠. 의원 입법으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첫 번째로 정해졌고, 대통령이 방문해서 훌륭한 얘기를 했어요. (영화에선) 위령비 하나 세우는 게 힘들어서 막 따지고도 못 만들잖아요. 조금씩 세상이 변해가고 있고, 그 과정에 이 영화도 함께 있다는 게 너무 벅차고, 이 영화가 살아있게 생명 불어넣어 주시는 관객들께 고마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영화 만들어야 하는지 큰 울림과 깨달음을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허스토리&바캉스' 행사에서 받은 기념품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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