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의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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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의 이야기처럼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부터 '공작'까지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왔다.
그의 영화에 숭고한 선인은 없다. 기득권 층의 저열한 민낯과 옳든 옳지 않든 신념을 가진 주인공이 존재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다소 영화적이지 않은 다면적인 인물들 때문에 그의 영화는 가장 현실에 가깝게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세 번째로 선보이는 상업영화 '공작'은 북 고위층에 침투한 1990년대 안기부 스파이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 흑금성 박석영, 북 고위층 리명훈, 정무택 등 세 명의 인물 사이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탐색전과 심리전이 영화를 구성한다.
영화를 기획할 때까지만 해도, 영화계에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블랙리스트 때문에 제작 자체가 불투명했었다. 그럼에도 윤종빈 감독은 '이 실화를 꼭 알려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공작' 시나리오에 매진했다.
'반공'이 곧 애국이라고 믿었던 안기부 첩보원이 권력자들의 실체적 진실을 목도하는 것과 적이라고 규정했던 이의 생각이 존중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공작'의 반전은 국가가 부여한 당연한 신념과 편견이 깨질 때 일어난다.
액션의 틀을 벗어난 영화는 날카롭게 이 시대가 풀지 못한 문제의 본질을 파고든다. 아직도 선과 악의 무분별한 이분법이 유효한 이 나라에서 윤종빈 감독은 왜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은 윤종빈 감독과의 일문일답.
▶ 북한의 모습들이 굉장히 실감나게 등장하더라.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했는지 궁금하다. 북한 실정이나 사투리 같은 건 어떤 식으로 구성해나갔는지.- 영상 소스를 많이 샀다. 장마당 같은 경우는 세트를 지은 거다. 대만에서도 촬영을 진행했다. 원래 북한에서도 외화벌이 차원에서 촬영이 되는데 한국 사람들의 촬영은 돈을 내도 안된다고 하더라. 실제 보위부 장교 출신 탈북자 선생님이 우리 자문을 맡아 주셨다. 대다수 고증을 따라가려고 했다. 대사는 사투리보다는 전달에 우선을 뒀다. 북한말 쓰는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귀가 불편하고 피로감이 높더라. 이 영화는 특히 대사가 많아서 더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사투리 억양에 집착하지 말자고 그랬다. 실제로 평양은 별로 억양이 강하지 않다. 괜히 어색하게 따라하느니 그렇게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싶었다. 적절하게 뉘앙스만 전달하는 식으로 했다.
▶ 황정민, 이성민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배우들도 이번 영화가 입을 모아 힘들다고 하더라.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나. 본인이 건넨 디렉팅이 궁금하기도 하다.- 배우들에게 원칙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관객들이 1시간 정도까지 영화를 보면서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몰랐으면 좋겠다는 것. 본인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지 말라고 했다. 두 분 다 할 게 별로 없어서 어려웠던 것 같다. 두 번째는 대화 장면이 액션 장면처럼 느껴지면 좋겠다는 것. 긴장감이라는 대원칙 속에서 제약이 많았는데 그런 요구를 하니까 배우들이 힘들었을 거다. 반면에 (주)지훈이 같은 경우는 그런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 선배들이 힘들어하니까 본인도 힘들어하더라. (웃음) 자유롭게 하려고 왔는데 선배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보는 나도 너무 힘들었다. 결국 우리끼리 잘 극복해보자고 술을 마시면서 극복했던 것 같다.
영화 '공작'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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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이렇게 정면으로 국내 영화에 노출된 것은 거의 처음이다. 뒷모습이나 그림자 등으로 대체하지 않고 실체화시킨 이유가 있나.- 흑금성과 김정일 위원장이 나누는 대화가 긴데 진짜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 나오지 않으면 관객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어쨌든 허구를 진짜라고 믿게끔 하는 작업 아닌가. CG 등도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인 대안은 특수분장이었다. 실력있는 외국 특수분장팀을 섭외해서 김정일 위원장 사진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할 수 있겠다고 대답이 오더라. 김정일 위원장과 키가 비슷한 한국 배우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시는 분들로 세 명을 추려서 보냈다. 기주봉 선생님과 하면 가장 비슷하게 모사할 수 있겠다고 그랬다. 뉴욕에 가서 10시간 본을 뜨고, 또 미국에 가서 수정하고 테스트에 테스트를 반복했다. 현장에서도 6시간 분장을 하면 10시간 촬영을 했다.
▶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지도자와 앙증맞은 애완견의 조합도 아이러니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그런 장면을 어떻게 고안하게 됐나.- 북한 관련한 서적을 많이 봤는데 북한 1호 시인이었던 탈북시인이 쓴 '친애하는 지도자에게'라는 시가 있다. '1호 시인'이라는 건 공식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묘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시인이다. 그 시인이 김정일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묘사가 시집에 자세하게 나와있었다. 한달 전쯤에 만날테니 준비하라고 한 다음에 어느 날 밤에 나오라고 해서 사람을 묶어서 데려간다고. 그렇게 해서 차를 타고, 배를 타고 갔더니 김정일 위원장 별장이 있었고 군인들이 깔려있었다고 한다. 손도 소독하고, 잔뜩 긴장해서 서있는데 강아지가 막 발을 핥고 있었다는 거다. 너무 사실적이면서 그럴싸했다. 독재자와 애완견이라는 대비가 모순적이면서도 그 장면 자체가 풍부해지더라.
▶ 왜 하필 흑금성에 대한 실화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20년 전의 이 이야기가 지금 현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했나.- 이 실화를 접했을 때 첩보영화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스파이는 사실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스파이는 즉 군인이고,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적으로 만난 사람을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게 되는 거다. 각자의 신념은 다르지만 적을 한 사람으로 인정할 때, 그의 신념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 흑금성은 리명훈이 북한 국민들을 아끼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또 리명훈은 흑금성이 가지고 있는 강직함을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서로 조국을 위해 일한 게 아니겠느냐'는 그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라고 봤다.
영화 '공작'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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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주지훈에 대해서는 함께 한 배우, 감독들이 모두 인간적인 매력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스틸컷에서 주지훈이 등장했던 기차 추격씬은 실제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나.- 주지훈이 맡은 정무택 역이 정체가 들킨 흑금성을 추격하는 액션 장면이었는데 이미 긴장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찍으면서도 잘릴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었다. 결국 편집 과정에서 덜어냈다. (주)지훈이에게 따로 술을 사주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감독님, 뭐가 미안해요. 잘릴 것 같았어요. 영화 잘 되는 게 중요하죠. 상관없어요' 이러더라. 사실 이런 걸 미리 말을 안 하면 배우가 화를 낸다든지, 인터뷰에서 드러낸다든지 굉장히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주변에서 많이 봐서 먼저 이야기하고 잘못을 구했다. (웃음) (주지훈의 경우는) 그 나이 또래 배우 중 그런 배우가 흔하지 않다고 본다. 술도 잘 마시고, 밥도 잘 먹고 거기에 기운 자체가 밝고 유쾌한 친구다. 사실 모델 출신이라 차갑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에는 '신과함께-인과 연'과 '공작'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서 홍보도 두 탕을 뛰고, 뒷풀이도 전부 와야 되는 상황이어서 아마 힘들었을거다.
▶ '신과함께-인과 연'이라는 막강한 흥행작과 개봉 시기가 겹쳐 걱정도 많았겠다.- 사실 '신과함께' 팀과도 너무 다 친하다. 하정우 형과는 '군도'에서 같이 했었고, 김용화 감독님은 우리 대학교 선배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후배라서 잔심부름도 많이 했었다. 배급 시기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스갯소리로 '신과함께'하는 '공작'이라고 그랬었는데 상황을 봤을 때는 '신과함께'가 배려한 '공작'이 돼야 하지 않나 싶다. 뭐, 선배니까 그렇게 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웃음)
▶ 이번 영화에서는 본인이 카메오로 등장하지 않더라. 영화 '춘몽'에서 주연 경험도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본인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 '춘몽' 찍고 나서 정신적으로 예민해지고 힘들었다. (웃음) 타인의 연출작에 그렇게 오래나온 게 처음이라…. 내가 계속 잘못하거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곤두서 있었다. 원래는 촬영 끝나면 대본도 고치고 그런 일들을 하려고 했는데 2주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매일 술만 마셨다. 촬영 끝나고 왜 배우들이 술만 먹는지 알겠더라. 그런데 술을 먹는 와중에도 내일 촬영분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그 감독의 머릿속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시는 남의 연출작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더 (내가 감독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같이 밥도 자주먹고, 좀 더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힘들다고 하면 '나도 힘들다' 하면서 같이 힘들어하고….
영화 '공작'의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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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와의 전쟁', '군도', '공작' 등 주로 남성 서사, 남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왔는데 언젠가 윤종빈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과 그들의 서사도 볼 수 있을까.- 장르가 중요할 것 같다. 내가 남성만큼 여성을 잘 알지는 못한다. 물론 결혼생활을 하다보니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여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내가 이게 잘못됐고, 이런데서 문제가 생긴다는 걸 많이 알게 됐다. 현재 이해를 하는 과정에 있으니 섣불리 하지 않고 몇 년만 더 기다렸다가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감독 윤종빈이 아닌 순간, 일상 생활에서는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야구, 축구, 농구, UFC, 테니스, 골프 등 스포츠 중계는 전부 본다. 하는 건 별로 잘하지 못하는데 보는 걸 좋아한다. 스포츠는 영화보다 실제가 훨씬 재밌기 때문에 나로서는 잘 찍을 수가 없다. 나이 들면서는 맛집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웃음) 시대극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지방촬영을 가면 맛집 찾아다니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 강동원도 맛집 마니아라 같이 맛집 정보 공유하고, 먹어보면서 점수 매기고 그런다. 우리끼리 '거긴 명성보다 거품이다', '맛은 있는데 MSG 맛이 너무 많이 나서 속이 불편하다'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웃음) 강동원은 정말 전 세계 맛집을 다 꿰고 있는 '강슐랭'이다. 저번에도 해외에서 강동원이 소개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