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남측 상봉단이 20일 오전 강원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번 8.15를 계기로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는 국군포로나 전쟁 전후 납북자 등 특수이산가족들의 상봉도 이뤄졌다.
이번 행사에는 1명의 국군포로 가족과 5명의 납북자 가족의 상봉이 진행된다. 안타깝게도 남측의 가족들이 애타게 찾던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거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이달영(82)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군인이었다. 이씨는 "1952년쯤 아버지가 국군포로로 가셨다는 걸 같이 근무했던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린시절 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같이 배웠던 사촌들은 어제 배운 글자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자신은 또렷이 기억했다고 한다.
살아계셨으면 올해로 100세가 되셨을 이씨의 아버지는 지난 1987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대신 이씨는 이번에 이복동생 2명을 만나게 된다.
이씨는 국군포로로 잡혀가신 아버지께 자녀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갖은 고초를 겪으셨을 것 같아 걱정됐지만 자녀도 낳고 생각보다 길게 살아계셨다는 소식에 다행스럽다고 한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남측 상봉단이 20일 오전 강원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최기호(83)씨의 세 살 많은 형은 1.4후퇴 당시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쏟아지던 폭격 속 형이 어떻게 끌려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최씨는 "당시 폭격이 너무 잦아서 형님은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카라도 상봉이 되서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에 큰형의 두 딸을 만나게 된다.
최씨는 "형님이 딸을 2명이나 낳았다니 반갑고, 조카들 만나면 형님이 어떻게 북에 가시게 됐던 건지 물어봐야 겠다"고 덧붙였다.
최씨의 어머니는 맏형을 매우 그리워했다고 한다. 최씨는 "끼니 때마다 항상 형이 먹을 밥을 상에 같이 올리시면서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있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밥이 뜨거우니 당연히 물방울이 맺히는 건데, 아마 잘 살아있으리라 생각하신 걸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다"고 추억했다.
큰형의 사진 한 장이 없다는 최씨는 조카들이 사진을 가져다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곽호환(85)씨도 인민군이 소집한 회의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형을 찾았지만, 형은 지난 1981년에 이미 사망했다고 한다. 대신 형의 두 아들을 만난다.
곽씨의 아들은 "아버님께서 오래전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셨는데, 이번에 그 자녀들이라도 만나게 돼서 소원풀이를 하시게 됐다"며 기뻐했다.
특수이산가족의 범주에 포함되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각각 500여명 정도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측은 이번 상봉 행사를 준비하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을 선정해 북측에 생사확인을 의뢰했고 확인이 된 21명 중 여섯 가족의 상봉이 성사됐다.
앞서 지금까지 20차례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은 350명의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한 생사확인을 북측에 의뢰했고 확인된 112명 중 54가족이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