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류사회'에서 미술관 부관장 오수연 역을 맡은 배우 수애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어렸을 때는 과정만 좋으면 괜찮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배우 수애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쌓아 온 커리어는 조금 독특하다. 그는 드라마 '야왕'을 통해 주인공 여성 캐릭터 또한 얼마든지 '악'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층적인 모습을 연기하며 정형화된 캐릭터들에서 한발짝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수애는 '상류사회'의 오수연에 당도해있다.
"우려했던 부분도 있어요. 일단 의상으로 수연의 여성성을 지양했던 것 같아요. 여리여리한 모습을 피하고, 전문성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터틀넥을 많이 입고 나오는데 그게 전문직 여성의 모습을 살리자는 생각에서 선택된 거거든요. 시나리오보다 영화는 잘 나온 것 같은데 사실 평가를 기다리는 입장이라 긴장이 되고, 즐기기 쉽지 않네요."
수애는 처음 '상류사회' 시나리오를 만났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캐릭터 완성도가 너무 좋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과의 호흡이라고 생각해 직접 변혁 감독을 만났다. 차를 마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5년 전 기획된 시나리오에 선뜻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당시 수애가 시나리오 속 수연에게 느낀 매력은 '자신의 민낯을 밝히고 굴레에서 벗어나는 당당함이었다'고.
"감독님이 배우 수애와 오수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았어요. 도전할 부분들이 있었는데 사실 그게 애정이 있는 것과 없는 건 굉장히 다르거든요. 배우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무엇인가를 발견해주는 게 감독님의 역할인데 그런 거에 대한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미팅을 세 번 정도하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열정이 왜곡돼 달려온 수연은 아깝게 1등을 놓친 2등 같은 존재죠. 물불 가리지 않고 욕망을 위해 달려간 수연이 자신의 민낯을 밝히고 굴레에서 벗어나는 설정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러지 못하니 대리만족하는 감정을 느꼈어요. 한편으로는 백조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안쓰러웠어요. 너무 평화로워보이는 웃음과 말투지만 사실 수면 아래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거죠. 자신에 대한 연민이 강해서 더 성공하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보상해주고 싶었던 마음 아니었을까요. 그런 감정으로 연기를 했어요."
영화 '상류사회'에서 미술관 부관장 오수연 역을 맡은 배우 수애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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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에게 먼저 동료같은 남편 장태준 역을 제안한 이유를 물어보니 원래 팬이었단다. 수애는 박해일의 연기가 좋아서 그가 인조 역으로 등장한 영화 '남한산성'을 두 번이나 관람했다. 그러면서 박해일을 '120% 발산을 하는데 계속 무엇인가가 있는 배우'라고 이야기했다. 그 에너지가 가장 궁금했다고 한다. 촬영이 모두 끝나 결과물을 받아든 지금, 수애는 박해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박)해일 오빠와 제 시너지, 케미스트리가 궁금했어요. 저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제가 가진 에너지와 충돌했을 때 어떨지 생각했거든요. 늘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는데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오빠이기 때문에 태준 역이 아니었어도 100% 소화해냈을 거예요. 친분이 있는 상태의 제안이 아니라 저도 굉장히 조심스러웠고 오빠도 솔직히 불편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제가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인 걸 아셔서 좀 더 유념해서 봐주신 것 같아요. 촬영 시작 전에 기대치가 높으면 사실 실망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꼭 다시 작품하자고 이야기할 정도로 정말 그 이상의 배우였어요. 제가 배우로서 더 단단해지도록, 책임감이나 무게감 이런 걸 많이 가르쳐주셔서 너무 훌륭한 파트너였다고 생각해요."
현재 수애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욕망(?)은 영화의 흥행이다. 원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 여러 가지 도전이 필요했던 '상류사회'에 가진 애착도 상당하다.
"저도 지금 욕망덩어리거든요. 거의 욕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분별하게 영화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끓고 있어요. (웃음) 개봉은 제 영역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파이팅하는 기운이 넘치면 에너지를 만드는 것 같아요. 뭔가 내 편이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 더 기운이 전달되는 것 같고…. 이 시점에 항상 책임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개인적인 욕심도 더 생기고, 소통하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사실 지금 객관화시킬 수 없는 건 맞아요. 평가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데 저는 세월이 지나서 예전 작품을 봐도 객관화시키기 어렵더라고요. 더 귀를 많이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죠."
영화 '상류사회'에서 관장을 꿈꾸는 미술관 부관장 오수연 역을 맡은 배우 수애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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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아닐 때 수애의 삶은 누구보다 규칙적이다. 스스로 '아침형 인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찍 기상하고, 최근에는 고양이 집사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생활 패턴은 증조할머니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며 몸에 익힌 것이라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수면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드라마 촬영에 고충을 가지고 있다.
"전 굉장히 아침형 인간인데 6시에 일어나서 필라테스 운동을 해요. 오후에는 스케줄이 유동적이라 못갈 일이 많아서요. 그러면 가장 상쾌해요. 보통 밤 10시나 11시 정도면 잠을 자고요. 요즘에는 조금 늦게 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밤샘 촬영할 때는 잠을 잘 못자니까 피로 누적이 돼서 힘들었어요. 그래도 잘 버텨냈습니다. '콩새'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는데 집사가 돼서 제가 다 해드려요. (웃음) 작아서 '콩새'라는 이름을 어머니가 붙여 주셨어요."
자신의 연기와 작품이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애정을 쏟아붓는만큼, 책임감은 무겁게 몸을 키운다. 배우 생활과 자신의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요즘 수애의 관심사다.
"연이 닿아 있는 것에 애정을 많이 쏟아붓는다는 이야기를 유독 들어요. 신인 때는 과정이 중요한 거 아니냐고 철없는 소리를 한 적도 있었죠. 어느 순간 내가 즐겁자고 한 직업이 아닌데 많은 걸 간과하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 때부터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하는 거랑 잘되는 건 다르더라고요. 제가 영화에서는 타율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요. (웃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 흥행될 줄 알고 선택하죠. 그냥 저는 특정한 이미지로 국한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다양하게 시도하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욕심이 많네요. 연기는 그냥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지점도 중요한데 이제 제 삶도 조금 균형을 잘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