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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무원 사칭 사기로 수억원 피해…평창 버스기사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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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공무원 사칭 사기로 수억원 피해…평창 버스기사들의 눈물

    지난해 12월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개폐회식장의 모습. 지금은 해체돼 본관과 성화대만남았다. (사진=이한형 기자)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이 폐막한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개·폐회식이 열린 올림픽 플라자는 본관과 성화대만 남고 모두 철거됐다. 대회 조직위원회 규모도 점점 축소돼 파견 공무원들도 속속 '원대 복귀'를 위해 짐을 싸고 있다.

    대회 기간 강원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관광객, 선수단 등을 실어 나른 전국 각지의 전세버스 기사들도 다들 생업으로 복귀했다. 부실한 식단, 방음도 안 되는 숙소 등으로 고생하던 지난 시간이 이제는 추억이 될 법도 하다. 그러나 CBS노컷뉴스가 만난 전세버스 기사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그날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전북 전세버스업계, 비수기 한파에 미수금까지 '엎친 데 덮친 격'

    전북에서 'ㄱ여행사'를 운영하는 A씨. 평창올림픽 폐막일인 지난 2월 25일 버스와 기사 6명을 강원도로 보냈다.

    '올림픽·패럴림픽 때문에 버스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은 그의 머릿속에는 '평창=국가행사'라는 공식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평창 대회는 대한민국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자 최초의 동계 올림픽이었다.

    돈만 생각하면 굳이 강원도로 버스를 올릴 이유가 없었다. 3월은 인근 대학교 개강 통학버스에다 상춘객·결혼식 버스전세까지 겹치는 업계 성수기다.

    전북권 전세버스 업체들이 아직 받지 못한 평창 올림픽 차량대금 내역 중 일부. (사진=독자 제공)

     

    A씨는 새삼 그날의 결정이 후회스럽다. 그는 동계패럴림픽 기간인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9일까지의 차량 대금 3990만 원을 받지 못했다. 전국전세버스공제조합 전북지부에 따르면 평창으로 버스를 보낸 전북권 업체 16곳의 미수금 총합은 모두 2억 3300만 원 정도다.

    A씨는 "평창에서 3월에 일한 돈을 아직도 못 받고 있어 버스업체들이 어려움이 크다"며 "비성수기인 요즘 전라북도 업체 중 80%가량이 버스 할부도 못 내는 것으로 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전북권 전세버스업체 10여 곳에 재재하청을 준 'ㄴ업체'(재하청)가 돈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역 내 피해업체들과 함께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부터 등장하는 ㄴ업체와 ㄷ업체 등 사기 피해자들이 C씨에게 받은 계약서 첫장과 마지막장. 이희범 평창 조직위원장의 이름은 물론 가짜 직인까지 찍혀있다. 직인 자국에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있다.

     

    ◇ 하청-재하청, 틈새 파고든 '공무원 사칭' 사기에 '속수무책'

    'ㄴ업체'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업체는 평창 조직위원회 관계자를 사칭한 일당에게 피해액 4억 원 남짓의 사기를 당했다.

    ㄴ업체 관계자 B씨는 지난해 가을 전세버스업자 C씨를 만났다. C씨는 '조직위와 직접 계약을 맺었다. ㄴ업체에 셔틀버스 하청을 주겠다'며 접근했다.

    B씨에 따르면 당시 C씨는 가짜 조직위와 체결한 '145억 8천만 원짜리 계약서'를 들고 나타났다. 대회 기간과 제공하는 차량 수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계약 규모였다. 더구나 계약서에는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의 직인까지 찍혀 있었다. B씨는 철석같이 믿고 전세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패럴림픽이 끝난 뒤에도 가짜 조직위는 좀처럼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나랏일이라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조직위 계약'과 달리 C씨가 연결해 준 또 다른 원청업체와의 계약은 정상적으로 이행되고 있었다. C씨에 대한 의심을 굳히기 어려운 이유였다.

    C씨 일당이 제작한 가짜 공문서. 맨 왼쪽 상단에 변형된 태극 문양 형태의 정부 통합 로고가 보인다. (사진=독자 제공)

     

    그때마다 C씨는 꾸준히 미끼를 던졌다. 어느 때는 문화체육관광부 명의의 공문을 들고 나타났고, '운행 차량에 붙이라'며 평창올림픽 마스코트가 그려진 부착물도 건넸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C씨는 '조직위 지시를 받은 지자체 공무원이 사무실로 실사를 나왔다'며 B씨에게 우는소리를 하고, 심지어 '조직위 본부장'이라는 한 남성과 함께 'ㄴ업체' 사무실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이때 자칭 조직위 본부장은 '열심히 잘하라'며 훈계까지 했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C씨가 피해업체에게 건넨 셔틀버스 부착물(왼쪽)과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차량 부문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셔틀버스에 붙이도록 한 부착물(오른쪽) 비교. (사진=독자제공, 국토교통부 해외철도정보(KRiC) 홈페이지 캡처)

     

    이 모든 것이 사기고, '조직위 본부장' 또한 가짜였다는 걸 깨달은 건 지난 7월 초 '진짜 평창 조직위'를 찾아간 때였다. 조직위 직제상 '본부장' 같은 직함은 없었고 위원장 직인 자체도 날조였다.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당한 'ㄷ업체' 대표 D씨 역시 "업계에서 십수 년 일했지만 서류가 너무 감쪽같았다. 뒤늦게 사기인 걸 깨닫고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지만 어린 딸 때문에 버티고 있다"며 울분을 표했다.

    D씨는 C씨가 만든 가짜 셔틀버스 노선(인천·김포공항-평창)에 속아 차량을 제공했다. 그는 "내 몫으로 돌아와야 할 차량 대금 중 상당 부분을 C씨가 가로챈 것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이 족히 수억 원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C씨는 피해자들에게 '사기 등 행위를 인정하며…피해금을 갚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행각서와 변제각서 등을 써준 상태다.

    B씨 등의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대표변호사는 "영세 전세버스 업체의 사정을 악용해 공문서위조 등 범죄까지 저지르며 사리사욕을 채운 피고소인에 대해 고소와 더불어 민사 절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송업체 선정에 대한 사전 점검 및 관리감독, 재하도급에 대한 제한규정을 뒀다면 충분히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관계 당국의 조처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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