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2기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재갑 전 고용노동부 차관을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노동정책의 보수화를 진두지휘한 인물을 노동부 수장에 앉히면서 사실상 노동 적폐 청산 작업을 중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전 차관이 지난달 30일 노동부장관 후보로 지명되자 이례적으로 보수야당이 이 후보자를 반기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내정 발표 다음날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 내정자 같은 경우 저도 잘 안다"며 "노동부 오랜 공직 생활을 한 관료, 차관까지 하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한 그런 정통 관료"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섣부른 노동시장에 국가권력이 개입하고 또 그로 인해서 일자리가 또 없어지고 경제는 나빠지는 이런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비정규직 최저임금 문제, 이런 접근 방식이 기존과는 달라지지 않겠냐는 기대는 가진다"고 덧붙였다.
반면 양대노총은 한목소리로 이 후보자 지명을 반발하고 나섰다.
"재벌과 유착한 부패와 농단이 횡행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거수기를 자임했던 고용노동부의 고위관료"(민주노총), "친정집의 과거 과오에 대해 제대로 개혁의 칼을 들이대고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핵심파트너인 노동조합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할 수 있을까"(한국노총)라는 비판이다.
이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실장·국장급으로 승진해 노동부 차관까지 역임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으로 임기를 모두 채운 보수 관료인 점을 감안하면 이처럼 엇갈린 반응도 당연하다.
더구나 이 후보자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타임오프제, 유연근무제, 비정규직 사용연한 2년 연장 등 노동계가 크게 반발했던 'MB표 노동정책'을 주도했던 인물인만큼 현 정부와의 정책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노사실장과 차관을 지낸 이재갑 후보를 인선한 것은 굉장히 의아하다"며 "그 당시 있었던 여러 노동 탄압 정책이나 고용 유연화 정책에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 후보자를 장관 후보로 내정한 이유는 최근 고용지표가 악화됐다며 일자리 문제가 불거지자, 노동부에 있는 동안 줄곧 고용 관련 업무를 맡아왔던 이 후보자를 해결사로 내세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후보 지명 다음날 이 후보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책 우선순위에 대해 "뭐니 뭐니해도 일자리 창출 문제가 최우선"이라고 꼽았고, 노동존중사회는 "두번째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김영주 현 장관이 장관 후보로 내정된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경제적 불평등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노동자 처우개선을 강조한 것과는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는 이 후보자가 고용에 비해 노동 관련 업무 경력이 부족한 점을 꼽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의 '고용'노동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한 익명의 노동계 인사는 "고용 전문가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과거 정부 시절 관료로 활동할 때에는 우리들은(노동계에서는) 직접 만나본 일도 없던 인물"이라며 "그만큼 노동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라고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정통 고용노동부 관료 출신으로 조직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꼽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 이슈가 정국을 뒤흔들고, 노동부 조직 내부에서도 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통한 노동 정책 적폐 청산 작업이 진행되자 노동부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결국 공무원은 정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과거사를 비판하면서 조직이 다소 위축된 것도 사실"이라며 "관료 출신 장관이 온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 후보자가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적폐 청산 작업을 적당한 선에서 멈춰세울 것으로 기대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이주호 정책실장은 "현 정부가 말로만 노동정권, 소득주도성장을 얘기할 뿐 정작 노조의 교섭력을 강화할 노동정책에서는 후퇴하고 있다"며 "더 개혁적인 장관이 와도 시원찮을 판에 관료 출신 장관이라니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개혁도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것도 아닌데 공무원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 아니라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