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띄운 '제 3차 남북정상회담 동행 요청'에 국회가 분열하는 모양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릴 이번 정상회담엔 국회의장단마저 빠진 채 범(凡)여권 정당 대표만 함께하는 '반쪽 동행'이 이뤄지게 됐다.
청와대의 부족한 물밑조율의 결과라는 비판이 범여권에서도 제기되는 가운데, 11일 동행을 설득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청와대 한병도 정무수석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로부터 "뭐 하러 왔느냐"는 푸대접까지 받았다. 한 수석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동행하겠다는 정당 대표들만이라도 함께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전날 이뤄진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당 대표 동행 요청 공식 브리핑'과 관련해 그 방식과 의도, 동행 자체의 부적절성 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두 정당 대표는 북한 비핵화 성과가 뚜렷하지 않고 이와 관련한 여권의 충분한 설명도 없었으며, 동행 시 당 대표들의 역할도 모호하다는 주장을 토대로 이미 해당 브리핑 이전에 '동행 불가' 입장을 밝혔었다.
그럼에도 공개 요청이 이뤄지자 "야당을 반(反)평화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압박"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왔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지금까지 이 정부가 남북문제를 두고 야당과 어떤 논의를 하거나, 정보를 준 적이 있느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가 정상회담에 같이가자는 게 진정성이 느껴지겠느냐"며 "(바른미래당은) 평화세력이 아니라며 이를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 얼마나 비열한 정치공작인가"라고도 했다.
이런 냉랭한 상황에서 국회를 찾은 한 수석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만났으나, 손 대표는 "뭐 하러 왔느냐. 어제 안 간다고 했는데 또 왔느냐"고 불쾌함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수석은 예방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당 대표들은 동행 의사를 밝혔으니 "모시고 가는 쪽으로 생각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야당 압박용 요청'이라는 반발에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당의 이익이나, 야당의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를 티끌만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밝혔다.
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역 방문일정을 이유로 한 수석을 만나지도 않았다. 김 위원장은 경북 구미 방문 현장에서 "먼저 (야당과) 이야기를 한 뒤 청와대 발표가 이뤄졌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이틀 동안 이어진 야당의 강경 반응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상회담에 국회가 동참해달라는 것은 지난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직접 요청했던 내용"이라며 "한 달 전부터 요청해온 것을 이제와서 '정략적이다', '졸속이다'라고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맞받았다.
그러나 '반쪽 동행'이 현실화 되자 범여권인 정의당에서도 청와대를 향한 비판이 감지됐다. 정의당 핵심관계자는 "어떻게 청와대가 이렇게 (국회와) 조율 없이 일을 진행했느냐는 질타가 오전 회의에서 나왔다"며 "저쪽에선 안 간다는데, 우리만 간다고 하면 '이건 뭐야' 이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장단도 동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문 의장조차도 앞선 임 실장의 발표 내용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의결했다. 해당 안을 냉각기류가 흐르는 국회로 넘긴 것이다. 앞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성과를 지켜본 뒤 판단해야 한다며 즉각적인 처리를 반대했고, 결국 여야 원내대표는 3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본 뒤 비준동의안 처리 여부를 논의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였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보수 야권의 '회담 동행 거부'에 대한 메시지로 읽히자 당사자들은 다시 한 번 발끈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당 대표가 장기판의 박카스 뚜껑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졸 취급을 하는 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김삼화 수석 대변인도 논평에서 "국무회의에서 야당 대표들에게 당리당략 운운하며 일방적인 발표를 다시 한 번 강행한 문 대통령의 불통과 고집에 당은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