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서울올림픽의 주역' 1988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 탁구를 이끌었던 안재형(왼쪽부터), 양영자, 홍차옥, 유남규 등 전 대표팀 선수들이 18일 2018 실업탁구리그 개막에 앞선 이벤트 경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구리=월간 탁구 안성호 기자)
미래에셋대우 2018 실업탁구리그가 열린 18일 경기도 구리시체육관. 이날은 실업리그 개막과 함께 1988 서울올림픽 개최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 경기가 열렸다.
바로 한국 탁구의 간판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 안재형 여자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당시 양영자, 홍차옥 등 당시 올림픽에 나섰던 탁구인들이 혼합 복식 경기를 펼친 것. 유 감독은 당시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냈고, 양영자는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과 함께 여자 복식에서 역시 금메달을 수확했다.
안 감독 역시 올림픽 당시 남자 복식 동메달리스트였다. 홍차옥은 단식 8강에서 당시 안 감독의 예비 부인이던 자오즈민(중국)에 졌다. 그러나 3년 뒤 1991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을 이뤄 여자 단체전 우승에 힘을 보탰다.
모처럼 유니폼을 입고 테이블에 선 4명은 밝은 표정으로 경기를 펼쳤다. 유 감독과 홍차옥, 안 감독과 양영자가 팀을 이뤄 대결했다. 은퇴한 지 20여 년, 홍차옥은 랠리 도중 운동화가 벗겨져 웃음을 자아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매서운 스매싱과 날카로운 드라이브로 예전 최강을 달리던 한국 탁구 대표임을 입증했다. 접전 끝에 안 감독-양영자 조가 12 대 10 승리를 거뒀다. 경기를 마친 이들은 밝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경기 후 양영자는 "오랜만에 경기를 해서 재미있게 하고 싶었고, 탁구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양영자는 경기도 동탄에서 탁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홍차옥은 생활체육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2013년 박사 학위를 받아 서울대 사범대 강의도 나서고 있다.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왼쪽)과 홍차옥의 경기 모습.(구리=월간 탁구 안성호 기자)
'화기애애' 양영자(왼쪽)와 안재형 여자 대표팀 감독의 경기 모습.(구리=월간 탁구 안성호 기자)
유 감독은 "서울올림픽 당시 함께 땀을 흘리던 동료들과 오랜만에 경기를 하니까 감회가 새롭다"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홍차옥과는 한번도 복식조를 이룬 적이 없었고, 선수 시절에는 패배의 아픔을 안겨준 적이 많았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복식조가 돼서 잘 해주려고 했더니 신이 나서 열심히 하더라"고 귀띔했다.
30년 전 올림픽 금메달 순간의 기억도 떠올렸다. 당시 유 감독은 20살 약관에 대표팀 선배였던 김기택을 꺾고 올림픽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유 감독은 "어제 올림픽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참석하지 못했다"면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금메달을 딴 10월 2일이 돌아오면 나 혼자서라도 와인을 마시며 축해해줬다"고 말했다.
조마조마했던 기억도 있다. 유 감독은 "당시 체력을 위해 뱀탕을 먹고 있었는데 도핑 테스트에서 걸릴까 봐 겁이 났다"면서 "당시 남자 육상 100m 벤 존슨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금메달이 박탈돼서 더욱 그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래서 인터뷰도 '내일 할게요'라고 고사하고 새벽 2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그리고 다음 날 신문에 '유남규, 금메달' 기사를 보고 비로소 실감을 했고, 택시를 타니까 기사 분이 알아보고 요금을 받지 않더라"고 웃었다.
이들 선배가 이벤트 경기에 나선 것은 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지만 침체된 한국 탁구를 살리자는 뜻도 있다. 유 감독은 평소 "한국 탁구가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다"면서 "선수들이 헝그리 정신을 갖고 간절하게 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에 김형석 포스코에너지, 김택수 미래에셋대우 감독 등 탁구인들과 실업리그 창설에 뜻을 모았고, 이벤트 경기에 선뜻 나선 것.
김 감독 등은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실업리그에 북한팀이 참가하면 좋을 것"이라며 밝혔다. 마침 현 감독이 18일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다. 유 감독은 "현 감독이 오늘 이벤트에 함께 했다면 좋았겠지만 갑자기 방북하게 됐다"면서 "가서 좋은 결실을 갖고 돌아와 한국 탁구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안 감독도 "한국 탁구의 프로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