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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젊은 기자'는 정말로 '속국 근성'을 가졌나?



통일/북한

    [팩트체크] '젊은 기자'는 정말로 '속국 근성'을 가졌나?

    정상회담 당시 프레스센터에서 질문한 한 기자 뭇매
    '미국과 사전협의 거쳤냐'는 질문이 '허락 받았냐'로 둔갑

    문재인 대통령이 2박3일간 평양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20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를 방문해 대국민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이번 추석 연휴 초반기 CBS의 젊은 기자가 SNS 상에서 뭇매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사흘째인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질문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

    기레기'라는 표현은 기본이고 '젊은이가 생각이 찌질하다', '매국노 새끼', '노예새끼' 같은 표현이 난무했다.

    관련 기사들에도 "우리가 미국 속국이냐? 허락받게? 정신좀 차려라 부끄럽지도 않냐?", "영혼까지 털어서 사대하나?", "기자들 스스로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듯" 등등의 댓글이 붙었다.

    CBS 기자는 대체 무슨 질문을 했기에 이런 비판을 받았을까? 그런 비판이 과연 합당한가? 해당 기자의 질문이 오역되거나 중간에서 왜곡되지는 않았나?

    당시 이 기자는 서울에서 평양 상황을 브리핑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전날 남북정상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내용 가운데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

    질문은 두 가지였는데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하셨는데 이게 미국과 먼저 협의가 돼 있었는지, 그래서 서울에 오셨을 때 종전선언을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문 대통령이 북한에 특사를 보낼 때도 미국과 사전에 의견을 교환하고, 대북 특사를 곧바로 미국에 보내 북한과 나눈 얘기를 공유하는 게 문 대통령의 남북, 북미관계 해법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접근법을 알고 있는 언론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에 대해 미국과 사전에 협의가 있었는지를 물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종전선언이 가능한지를 물은 것은 종전선언 주체가 남북미 3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 서울 방문 때 트럼프 대통령도 참여한 3국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가능성까지 내다본 수준 높은 질문이다.

    그런데 언론 기사나 SNS에서는 서울 종전선언 질문은 덮어둔 채, 젊은 기자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답 방에 대해 미국의 허락을 받았냐'고 질문을 했다면서 그게 왜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문제냐고 따진다.

    하지만 위에 질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젊은 기자는 허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 왜 허락이라는 말이 등장했을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만들어낸 말이다.

    (사진=자료사진)

     

    "아침에 프레스센터에서 어떤 젊은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합의했는데 미국과 협의하고 한 것이냐고 묻더라. 이 질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나. 남북 정상 간에 가고 오고하는 것도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기자라니 큰일 났다. 주인 의식을 가져야한다. 오너십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22시. KBS특집대담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한반도 평화의 길')

    "요즘 젊은 사람들 왜 이러냐.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저보다 젊은 사람도 그런 말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외교 문제라든가 특히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조율을 해야 된다 또는 미국의 조율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미국의 허락을 받고 해야 된다는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슬프게도. 이게 무슨 속국 근성이에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그런 걸 보고 내가 깜짝 놀랐어요" (21일 오전 KBS 1R)

    현장 질문에는 없던 '허락'이라는 단어를 정 전 장관이 방송에서 함으로써 이 기자가 미국의 허락을 얻었느냐는 질문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일부 언론이 정 전 장관의 발언 가운데 눈에 띄고, 귀에 쏙 들어오는 부분을 제목으로 붙여 기사를 내보냈다.

    오마이뉴스는 <"젊은 기자가 미국 허락받았냐 질문하다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 전 장관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쳤고, 이 기자의 질문이 무엇인지는 다루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기자들 주인의식 좀 가져라" 정세현, '오너십' 강조한 이유>라는 기사를 객원기자 이름으로 내보냈지만 이 기자의 질문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너십을 강조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 전 장관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 이 기자의 질문은 남북문제를 깊이 고민해 온 전문가들이나 언론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정 전 장관도 21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고 그 다음에 한미 간에 반드시 협의를 거쳐야 되는 문제는 사전에 협의를 할 수도 있고 저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때 가서 우리 이런 의도로 시작했습니다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라고 말했다.

    경의선 북쪽 철로 구간의 상태를 남북이 공동으로 점검하려는 계획도 한미연합사령관이 사령관으로 있는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거부되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미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 북한에 제안할 수 있을까?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자세로 한반도 문제를 다룬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를 미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젊은 기자는 미국의 허락을 받았냐고 질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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