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두고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정권의 외압에 따라 실제로 사건을 축소·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에 꾸려진 진상조사단으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검찰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수사 초기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검찰총장 이하 지휘부에 전달되는 청와대 및 안기부의 외압에 굴복해 졸속수사, 늑장수사, 부실수사로 점철됐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은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과오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검찰총장이 피해자의 유족을 직접 찾아가 이런 과오를 사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과거사위는 다만 "사건 발생 초기 검찰이 치안본부의 조작·은폐 시도를 막고 부검을 지휘해 사인이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임을 밝혀낸 점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언급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의 잘못된 수사 사례와 모범적 수사 사례를 대비해 그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대응방안 등을 현직 검사와 수사관 또는 검사 및 수사관 신규 임용자 등에 대한 교육 과정에 반영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과거사위는 이날 고 김근태 전 의원에 대한 '고문은폐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의 중대 과오가 인정된다고 보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을 권고했다.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은 1985년 9월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3일간 강제감금·고문을 당한 김 전 의원이 검찰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하고 수사를 요구했으나 묵살했다는 의혹이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고문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으나 안기부와 공모해 이를 은폐했고, 오히려 고문 경찰관에 대한 고소·고발을 무혐의 처리하는 등 사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경찰의 고문 수사를 용인, 방조하고 은폐하는 데 권한을 남용했다"며 "남용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과 피해 당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했다.
또 정보기관이 안보사범 등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통보받거나 사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안보수사조정권' 관련 대통령령에 대해서는 "냉전이데올로기 시절 권위주의 정부의 유물에 불과하다"며 폐지를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