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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대결의 상징 JSA… 화해와 평화의 땅으로 거듭난다



국방/외교

    분단과 대결의 상징 JSA… 화해와 평화의 땅으로 거듭난다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JSA 내 남북 교차초소 설치, 관광객 자유왕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11월 북한군 오청성이 귀순할때 북한군 추격조가 따라오며 총격을 가했던 곳.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대결을 상징하는 비운의 땅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남·북·유엔사는 16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3자협의체 회의를 열어 JSA를 비무장화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의 후속조치를 논의했다.

    JSA 지뢰 제거 작업 추진 사항 점검과 함께 화기와 초소 철수, 경비 인원 감축, 감시장비 조정 등 차후 이행해야 할 비무장화 조치에 대한 실무적 문제가 집중적으로 협의됐다.

    지난 16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남북유엔사 3자협의체 첫 회의가 열렸다. 3자협의체는 JSA 비무장화가 정상적으로 추진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제공)

     

    ◇ 정전협정 체결후 남·북·유엔사 처음으로 동시에 머리 맞대

    남북 군과 유엔사가 함께 머리를 맞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DMZ 등 정전협정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유엔사와 북한군이 대화를 해왔다.

    1953년 정전협정이 유엔사와 북한,중국 사이에 맺어진 것이고 한국군은 배제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엔사는 17일 "유엔사 및 남북한이 어제 역자적인 3자회의를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군사령관이기도 한 빈센트 브룩스 유엔사 사령관은 "생산적인 3자 대화에 고무됐다"며 "큰 틀에서 이번 회의는 유엔사와 북한군간의 현존하는 군사 정전위 체제가 남북군사합의서를 더욱 잘 이행하기 위해 최근의 북한군과 한국군간의 군사대화와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제 회의는 9.19 군사합의서에 따른 JSA 비무장화를 위한 조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일정과 검증방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JSA 비무장화 방안은 지난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 상세히 명시돼 있는데 JSA 비무장화 조치가 완료되면 JSA는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경기도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관광객 남북 자유왕래…군은 쌍방지역에 교차초소 설치

    JSA를 방문하는 남북 관광객과 외국인 등이 JSA 내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고 말그대로 공동경비구역이 돼 남북 군이 군사분계선 넘어 쌍방의 지역에 교차초소를 두게 된다.

    현재 JSA 내 북측 초소 5곳과 우리측 초소 4곳은 철수된다. 그리고 JSA 북측지역 '판문점다리' 끝점에 우리측 초소가 설치된다.

    대신 판문점 진입로의 우리측 지역에는 북한 측 초소가 새로 설치되는데 새로 들어설 북한 측 초소 인근에 우리 군 초소가 있다.

    JSA 남북지역에 각각 북·남 초소가 교차 설치되는 것뿐 아니라 남과 북이 근접해서 근무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JSA에는 정전협정의 정신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표식물도 없었고 자유롭게 양측을 넘나들 수 있었고 남북 경비 초소도 혼재돼 있었다.

    그러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MDL 표식물로 콘크리트 턱을 설치하고 남북 초소도 각각 분리됐다.

    이에 따라 군사분계선이 없었던 이전으로 돌아가 JSA를 비무장 평화지대의 상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남북군사분야 합의의 정신인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없애는 것에 더해 권총무장도 하지 않기로 합의가 된 상태다. 남북 각각 35명 이하의 인력을 두기로 했으며 경비근무 인원들은 노란색 바탕에 '판문점 민사경찰'이란 파란색 글씨가 새겨진 넓이 15㎝의 완장을 왼팔에 차기로 했다. JSA를 방문하는 민간인 등과 경비 인원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이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JSA 지뢰제거부터 상호검증까지 기간을 약 1개월로 설정하고 있어 이달 안으로 이런 비무장화 조치가 거의 완료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27일 판문점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 분단과 대립의 상징 판문점…평화의 상징으로 변모

    판문점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일촉즉발의 긴장이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 두 정상이 지난 4월 이곳에서 만나 화해의 새 장을 연 곳이다.

    서울에서 60㎞, 개성에서 10㎞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8·15광복 이전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에 속한 마을이었다.

    널문리라고도 불리다가 6.25 당시 한 가게 이름에서 유래돼 판문점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1951년 휴전협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800m,남북으로 600m 규모로 정해진 유엔사와 북한의 공동경비구역(JSA)이 만들어졌다.

    1953년 이곳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판문점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6.25 전쟁포로들이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돌아갔으며, 표류하다 남측에 의해 구조된 북한 어부들이 남에서 받았던 옷가지 등을 팽개치며 '수령님 만세'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1976년 8월에는 이른바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근처에서 미류나무 베기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진 것을 비롯해 지난해 11월에도 남으로 귀순하는 오청성을 향해 북한군이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도는 대치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판문점은 1971년 첫 남북회담을 시작으로 360여차례의 크고 작은 회담이 열린 대화와 소통의 장이기도 했다.

    1998년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충남 서산 간척지에서 키운 소떼 5백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분단과 대립 또 대화와 만남의 상징이기도 했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가 군사분야 합의의 첫 실질적 조치로서 남북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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