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주요 매체에서 어느 순간부터 '종전선언' 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통일부 분석에 따르면 노동신문이 종전선언을 미국에 촉구한 것은 지난달 18일 논평이 마지막이었고, 중앙통신은 지난 2일자 논평 이후 종전선언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제재 해제' 요구가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중앙통신은 16일자 기사에서 핵실험과 ICBM 발사 중지 조치를 상기시키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때문에 취해진 대북 제재 조치는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곧 적대시정책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고, 관계 개선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라며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 9일 러시아에서 열린 북중러 3국 외교차관급 회담을 통해 "유엔이 대북 제재 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끌어 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북한이 선제적으로 취해온 조치에 화답하는 행보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중국과 러시아를 제재 완화의 우군으로 삼고 미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와관련해 북한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7일) 이후 종전선언은 이미 기정사실화하면서 '제재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발사대 해체 등의 선의적 조치에 대해 미국이 이미 이행했어야 될 상응조치라고 주장해왔다.
즉 종전선언은 선의의 조치와 교환되는 등가물이었다는 것.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은 "지난 7월에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갑자기 종전선언을 강조하고 나왔는데, 이는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선의의 조치 단계에서 종전선언을 하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해놓고도 이를 어기고 있다는 비판이었다"고 말했다.
홍민 위원은 "북한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폭파된 풍계리 핵실험장과 해체를 앞둔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에 대해 전문가들의 참관을 허용한 것도 '이것으로 종전선언 문제는 일단락 짓고 이후 본격적인 비핵화 이행단계에 미국이 제공해야 할 상응조치를 논의하자'는 시그널"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회동을 계기로 남북은 물론 미국까지 연내 종전선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제 남은 것은 영변 핵시설 폐쇄나 핵물질과 핵무기 폐기 등 진전된 비핵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상응조치, 즉 대북 제재 해제 프레임을 짜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가급적 조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대해서 한미 간에 공감대가 있었다. 종전선언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같은 기조에 따라 북한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실무협상이 시작되면 6·12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 명시된 '관계 정상화' 합의 이행을 요구하면서 제재 해제나 완화, 또는 부분적인 면제 조치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이와함께 북한 내부적으로도 대북 제재 해제는 절실한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선언하면서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로 방향을 잡았다. 그가 내걸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벌써 3년차를 지나고 있다.
노동신문은 17일자 보도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세 번째 해인 올해에 경제전선 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를 열어 제껴야 한다"며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는 내세운 전투 목표를 무조건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연말을 앞두고 경제 분야에서의 성과를 독려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북한은 지금 경제적 성과에 목마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당 간부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핵을 포기하는 대신 약속한 경제 정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 해외 자본의 대북 투자가 필수적이다. 제재 완화 공세를 강화하고 나선 근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