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곽상도, 최교일, 임이자 의원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회의에서 비준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9·19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한 국무회의 심의·의결과 관련한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법리 공방이 한창이다.
헌법 3조와 헌법 60조,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남북관계발전법)까지 서로 거론하며 같은 현상에 대해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양선언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가청와대와 한국당 간 논쟁의 핵심은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가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냐 여부다.
공식적인 해석 창구인 법제처는 둘 모두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로 평양공동선언의 경우 이보다 앞서 남북 정상간 합의한 4·27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한 선언이므로 '판문점선언에 따른 중대한 재정적 부담 외에 별도의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군사합의서에 대해서도 '공동유해발굴사업을 제외하고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아니한다'는 점과 비행금지구역 설정, 서해평화수역 설정 등도 '항공안전법 등에 근거가 있다'는 점을 들어 비준·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판문점선언을 뒷받침하는 부속선언인 평양공동선언도 국자재정에 영향을 줄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평양공동선언이 판문점선언과 그에 대한 비용추계서를 구체화한 것이라며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분석하기까지 했다.
법제처가 '통일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사업 등의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했다'며 아직 그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 정상화 등은 추진이 이뤄진다면 정비에만 최소 100억원대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는 규모의 사업이다.
과거에 진행한 바 있어 어느 정도 규모가 투입되는지 알 수 있는 세부적인 사업명까지 적혀 있는 선언문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재정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다.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한 부분도, 착공식 자체는 큰 돈이 들지 않는 행사지만 이어질 사업에 들어갈 비용은 적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 국가 인정 놓고 뒤바뀐 靑.野한국당이 시작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합의서의 국무회의 의결의 위헌성 주장은 '안전보장'과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권을 국회가 가지도록 한 헌법 60조를 근거로 한다.
이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북한은 우리 법률 체계에서 국가가 아니다"라는 반론을 펼치면서 북한의 국가적 성격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도 "'평양선언'은 헌법 제60조 제1항이 적용되는 '조약'이 아니라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남북합의서'"라며 남북 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자 한국당은 10·4남북공동선언의 성격을 "남북정상 간의 합의는 법적으로 따지면 국가 간 조약"이라고 규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을 거론하며 재반론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청와대와 야당의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그간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던 현 여권은 북한의 국가성을 부인한 반면 흡수통일을 기조로 하며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부인하던 한국당이 오히려 북한의 국가성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이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는 남북관계발전법 제정 이전인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남북정상회담 합의문과 경제협력 합의서 등을 성사시킨 후 모두 국회의 동의 절차를 밟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에는 다른 논리를 적용해 정부의 심의·의결만으로도 효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이같은 처리는 국제법상으로는 국가로 인정받지만 국내법상으로는 국가로 볼 수 없는 북한의 특징을 이용한 '그때그때'식 대응이라는 비판을 낳는다.
북한은 유엔의 회원국이고 수교를 하는 국가가 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는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국내적으로는 그 주권성을 인정할 수 없는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언론까지도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 간의 만남을 남북 '정상' 회담이라고 표시하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자면 헌법 3조 위반이지만 누구도 위헌이라고 문제 삼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법제처의 정반대 해석이 부른 논란 확산법제처는 더 큰 내용을 담고 있는 판문점선언에 대해서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라고 판단한 반면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는 그런 부담이 없다며 국회 비준·동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1년 전인 2007년에는 정반대였다.
당시 법제처는 노무현 대통령이 합의를 이끌어 낸 10·4선언에 대해서는 "국가나 국민에 대한 재정 부담의 여부, 규모 및 방법을 확정할 수 없고, 입법 사항의 여부도 확정하기 어렵다"며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반면 후속 조치인 남북 총리회담 합의서에 대해서는 "재정 규모가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서도 "사업 계획이 확정적"이라는 이유로 비준·동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같은 방식의 남북 합의에 대한 법제처의 180도 다른 접근에 "법제처가 정부 입맛에 맞는 논리를 세워놓고 이에 해석을 끼워 맞췄다"는 비난은 야권 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북한의 모순적인 지위를 이용해 상황에 따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며 "대북 정책은 관계의 특수성에 있어서도, 안보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신중함이 필수인 만큼 안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