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1인칭 시점(오른쪽)과 비슷해 논란이 된 조승희의 사진(왼쪽).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이 발생한지 20일이 지나면서 잔혹한 살인도 어느새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그럼에도 개운치 않은 불안함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신경 세포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게임과 폭력성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박은 여전히 뜨겁다.
◆ 게임과 폭력, 어떻게 얽혔나폭력적인 영화, TV 프로그램 등 미디어 폭력(media violence)이 폭력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오랜 논쟁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미디어 폭력의 효과를 놓고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다.
'게임'이 폭력과의 연관성을 의심받은 계기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1999년 4월 20일, 이 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등학생 2명이 총기를 난사해 학생 12명, 교사 1명을 죽이고 자살했다. 이후 두 학생이 FPS 전투게임 '둠'의 이용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 언론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사건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 정부 의무감 보고서에서는 이 사건을 촉발한 요인이 두 학생의 삶의 질과 정신적 상태 등이었다고 반박했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도 게임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샀다. 한인 대학생 조승희가 캠퍼스에서 총기를 난사해 61명의 사상자를 내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이후 조승희의 사진 중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캐릭터의 모습처럼 양손에 권총을 든 사진이 보도되며, 그가 폭력적 게임에 빠져 범죄를 저질렀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버지니아주 조사위원회는 조승희가 해당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군 내에서 총기 난사로 12명의 사상자를 낸 '임 병장 사건'도 게임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임 병장이 입대 전 FPS 게임에 빠져 있었다는 군 관계자 발언이 나오면서였다.
최근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지난 8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비디오게임 대회 도중, 한 게이머가 탈락 후 총기를 난사해 4명이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의 폭력성을 지목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게임을 탓하는 것이 총기 규제 문제를 덮으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 "게임이 폭력성 높인다"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게임이 폭력성을 높이는지에 관해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연구결과의 첨예한 대립으로 아직 학계에서도 뚜렷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학계에서는 게임이 폭력성을 실제로 높인다는 시각이 조금 더 우세하다. 폭력적 게임이 여러 방식으로 공격성과 연관된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의 앤더슨(Anderson) 교수다. 그는 같은 대학의 부시맨 교수와 진행한 폭력적 게임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기존 연구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통해, "폭력적 게임에 노출되는 것이 공격적·폭력적 행동에 대한 명백한 위험요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게임이 폭력성에 어떻게 영향을 준다는 것일까.
앤더슨과 부시맨은 '일반 공격 모델(General Aggression Model, GAM)'을 통해 게임이 공격성을 높이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폭력적 게임이 사람들의 공격적 사고를 점화(priming)시키는 효과가 있다. 짧게라도 폭력적 게임을 하면 공격에 관한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폭력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형성되고, 계속해서 폭력에 대한 정서적 민감도가 떨어지는 둔감화(desensitization)가 일어난다. 상대를 해치는 방법 등 공격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는 것도 장기적 효과의 하나로 여겨지는데, 이는 폭력의 학습을 강조한 '사회학습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관점은 학계에서 많은 부분 수용돼 왔다. 미국심리학회(APA)는 2005년에 '폭력적 게임이 폭력적 행동·사고·감정을 유발하며 친사회적 행동을 감소시킨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소아과협회(AAP)도 2009년 '미디어 폭력' 정책 강령에서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AAP는 청소년들이 미디어의 폭력성에 노출되면 폭력에 무뎌지고 공격적 행동을 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AAP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적 게임은 공격적 행동과 사고를 촉진시키는 상관관계를 보였다.
◆ "게임은 폭력 원인 아냐"반면 게임과 폭력성을 연관 짓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퍼거슨은 앤더슨 등의 메타분석에 '출간 편향(publication bias)'의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원래 학술지에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주로 실리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보고하는 논문은 분석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퍼거슨은 폭력적 게임이 유행한 시기에 오히려 폭력 범죄가 감소했다는 등의 자료를 들어 앞선 연구를 반박했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힘입어, 미국 연방법원은 2001년 '폭력적 비디오 게임과 유해한 행동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 심리학자 퍼거슨이 ‘게임은 폭력범죄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제시한 자료. 폭력적 비디오 게임이 유행한 1990년대 이후 폭력범죄는 오히려 감소했다. 자료='우리나라 게임 산업 정책방향에 대한 연구'(탁연숙, 2017)에서 재인용
게임이 공격성 해소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입장도 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폭력성이 인간의 본능이고, 쌓인 폭력성은 분출해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를 느껴야만 해소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시각을 계승한 현대의 카타르시스 이론도 공격성의 배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폭력적인 것을 간접 경험해도 공격성을 배출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 따르면, 폭력적 게임은 오히려 '감정적 독소' 폭력성을 배출시키는 '디톡스제'인 셈이다.
게임이 폭력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이는 매우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게티스버그대 발렛(Christopher Barlett)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적 게임을 하면 공격성이 높아지지만 이는 최대 4분간 지속될 뿐이었다.
◆ '게임과 폭력성' 대립하는 학계 의견, 열쇠는오랜 논쟁으로 많은 연구가 축적됐음에도 아직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주제상의 한계가 있다. 앤더슨 교수는 APA(미국심리학회) 기고글을 통해 "(연구윤리 문제로) 폭력행위 그 자체를 관찰하고 측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게임 이용자의 공격성을 측정하고 싶어도, 실질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살펴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떤 게임을 선정할지, TV 위주로 진행된 기존 미디어 폭력 연구를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의 과제도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전 연령층을 포괄하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한국의 미디어 폭력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이상기·이정민, 2015)에서는 우리나라의 게임 연구는 대부분 아동·청소년층에 초점을 맞추고, 대학생 외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합의된 부분도 있다. 특정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폭력적 게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빌라노바 대학의 패트릭 교수와 럿거스 대학의 샬럿 교수는 폭력적 자극에 취약한 성격적 특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연구에 따르면, 신경성이 높고 친화성, 성실성이 낮은 사람들은 폭력적 게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쉽다.
사회적 관계가 중요한 변수라는 지적도 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사저널 기고글을 통해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보통의 사람들은 폭력물을 접해도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현실과 게임의 차이를 인지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현실감각이 무뎌져 폭력물을 현실과 혼동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폭력적 게임에 많이 노출되는 경우, 현실에서도 폭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외에도 폭력적 게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게임 상황과 개인적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밀란-비코카 대학의 가비아디니 교수는 연구를 통해 게임을 많이 할수록 게임이 도덕적 이탈을 유발한다고 보고했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하트만 교수는 공감능력이 낮은 플레이어에게서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종합하자면, 게임이 폭력성을 유발하는지에 대해 학계에서는 명확히 합의된 바가 없으며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다만, 게임이 폭력성을 높일 수 있으나 개인적 성향·환경 등에 따라 그 영향력은 달라진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