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의 상고심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입정해 있다. 오씨는 2013년 7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인 2013년 9월 24일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 등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는 법원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판결하고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모든 국민이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고 정하고 있는 헌법 19조는 인간 존엄성의 조건이자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라며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불이익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해 개인의 양심 실현을 제한하는 건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여기서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기 인격적 가치가 파멸될 거라는 진정한 마음으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을 뜻한다"며 "양심적 거부자들에게 집총과 군사훈련 등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건 양심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인 위협이 된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심적 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2004년 선고는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부분에 대해 모두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은 "병역을 기피하는 정당한 사유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해야 한다"며 "양심과 같은 주관적인 사유는 정당하지 않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앞서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이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현행법을 적용해 서두르게 판단할 게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후속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재판이 끝나고 오씨는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의 용감한 판결과 여론조사 등을 통해 나타난 국민들의 찬성의견에 감사드린다"며 "국민들의 수준 높은 관용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오랫동안 어려움을 인내해준 가족과 함께 법원의 문을 두드려온 병역거부자들에게도 감사한다"며 "오늘 대법원 판결 이외에도 약 930여건의 판결들이 계류중인데, 그 모든 판결들도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씨는 지난 2013년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시민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합리적인 향후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군인권센터·전쟁없는세상·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은 이날 선고 이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논의되는 '징벌적' 대체복무제를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현재 정부안은 복무기간을 현역 육군의 2배인 36개월, 복무 영역은 교정시설로 단일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실무추진단에서 검토하던 여러 안 중에 가장 '징벌적'인 것으로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36개월로 확정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복무 기간을 운용하게 된다"며 "유엔 등 국제기구와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1.5배 이상의 대체복무 기간은 인권침해라고 반대중이다"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되면 계류된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 검찰은 공소를 취하하고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후에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기준에 맞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현재 마련중인 대체복무안은 기준미달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현재 준비중인 대체복무안은 병역거부자들로 하여금 '당해보라'는 심리가 있어 부당하다"며 정부는 다른 소수자가 평균에 치이지 않게 구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