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 앞에 11일 주말을 맞아 추모 발걸음이 이따금 이어졌다.
사고 이후 고시원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과 선물이 쌓여 있었다.
국화꽃을 비롯해 여러 색깔의 꽃이 다발로 놓였다. 숨진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길에 목이라도 축이길 바랐는지 커피·사이다 등 음료수와 귤을 놓은 이들도 있었다.
테이블 근처에는 바닥에 국화꽃 수십 송이가 놓였다.
국화꽃과 함께 놓인 종이에는 '쪽방, 고시원, 여인숙…. 반복되는 빈곤층 주거지 화재 참사의 재발 방지 촉구합니다', '부동산 정책 말고 주거권 정책이 필요합니다' 등이 적혀 있었다.
고시원 앞을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국화꽃과 사고현장을 둘러보던 한 60대 남성은 "이런 사람들 수두룩한데…. 건너 여관이나 여기 고시원이나. 다 노인네들 아닌가, 할 일 없고 갈 데 없고 돈 없고"라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후 2시께 현장을 찾아 추모에 동참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번 사건 자체가 우리나라 빈곤층의 주거 문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줬다"면서 "자기 한 몸 누일 곳 없이 종일 일하고 고시촌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대책을 정의당이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고시원 같은) 이런 시설에 대한 소방대책도 허점이 많다"면서 "스프링클러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방치돼 있는데, 소급해서 소방시설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겠다"고 덧붙였다.
9일 화재 당시 생존한 국일고시원 거주자들은 거처를 옮기기 위해 짐을 날랐다. 좁은 고시원에서 나오는 짐들은 대부분 성인 1∼2명의 살림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적었다.
검은색 여행용 가방 1개와 휴대용 버너만 들고 고시원을 나온 A(56·남)씨는 "나랑 고시원 세 번 같이 옮긴 사람이 이번에 죽었다"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랑 반대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1987년에 포항에서 공장 다니면서 민주항쟁을 다 겪었고 나도 미친 듯이 했다"면서 "그런데 그 결과가 나한테 뭐가 남았나.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푸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의 도움을 받으면서 짐을 옮기던 B(64·여)씨는 '어디로 가시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베개와 이불을 동여맨 보따리, 빨래 세제와 식용유 등을 욱여넣은 비닐 가방, 옷가지를 담은 부직포 가방 등을 모두 실어도 포터 트럭 짐칸에 반도 차지 않았다.
참사로 숨진 희생자 7명 중 5명의 장례가 이날 치러졌다. 발인식은 국립중앙의료원 등 희생자 빈소가 마련된 각 병원에서 조용히 거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