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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반

    탄력근로 확대=수당 없는 연장근무 확대

    탄력근로 도입되면 노동시간 한도 늘면서 연장수당 못 받아
    하루 24시간 연속 근무·1년 연속 주 6일 10시간 근무도 모두 '합법'
    "정부에 속았다" 노동계 거센 반발에 사회적 대화도 '휘청'

     

    #2019년 여름, 김씨가 일하는 A에어컨 수리센터는 6개월 단위기간으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했다.

    일감이 몰리는 6~8월 3개월 동안은 연장근무까지 합쳐 1주일에 52시간씩 일하고, 대신 9~11월은 28시간만 일하는 식이다.

    시급 9천원인 2019년, 김씨가 탄력근로제가 적용된 6개월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936만원이다. 김씨와 완전히 똑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아직 탄력근로제를 적용하지 않은 B업체에서 일한 박씨보다 70여만원 적은 임금이다.

    올 겨울 난방기기 수리 대목을 앞두고 다시 12월부터 탄력근로제가 적용되면 똑같은 시간을 일한 김씨와 박씨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정치권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기로 합의했지만, 노동계는 임금은 줄고 일하는 시간만 늘어나 주 52시간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與野政, 사회적대화 거친다지만…사실상 탄력근로제 확대 강행 확정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는 지난 5일 청와대에 모여 탄력근로제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8일에는 여야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오는 20일까지 노사 합의 도출을 요청하고, 합의가 가능하면 합의안을 토대로 처리하겠다"면서도 "합의가 불가능하면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을 정한 뒤 이 기간 동안 일감이 많을 때에는 오래 일하고, 적을 때에는 그만큼 적게 일해 단위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한도에 맞추는 제도다.

    기업으로서는 단위기간을 확대할수록 일감 변동에 따라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제도다.

    특히 보통 3개월 단위로 계절이 바뀌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계절에 일감이 몰리는 레저업종이나 냉·난방기기 관련 업체 등 계절업종은 탄력근로제를 적극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시간은 늘고, 수당은 줄고…노동자에겐 '백해무익'

    하지만 노동자들로서는 탄력근로제 도입이 확대될수록 손해만 볼 뿐,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사실상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탄력근로제가 적용되면 현행법상 3개월 단위기간을 기준으로는 1주일의 노동시간 한도가 기존 40시간에서 52시간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늘어난 한도시간은 연장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다. 즉 탄력근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통상임금의 1.5배로 적용되는 연장근무수당을 받았을 12시간을 탄력근로제 도입과 함께 수당 없이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위의 가상사례에서 김씨가 박씨와 완전히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연장근무수당의 차이 때문에 6개월 동안 70만 2천원, 1년이면 140만 4천원을덜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적절한 조치'를 통해 임금이 저하되지 않는 보전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이 '보전방안'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어 사실상 노사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치됐다.

    이처럼 인건비 부담이 줄어든만큼 기업은 부담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게 된다.

    52시간에 더해 연장근무 12시간을 포함해 일하면 주52시간 상한제 이전과 마찬가지로 1주일에 64시간씩 일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3개월(13주)을 일하면 정부가 정한 '과로사 기준'인 12주 동안 주당 평균 60시간의 업무시간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또 1일 최대 노동시간 12시간을 지키더라도, 연장노동은 1일 제한이 없이 1주일 12시간 제한만 있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2주에 한 번 이틀간 48시간 연속 근무를 하더라도 법적 문제가 없다.

    단위기간이 늘어나면서 장시간 근무를 더 오래하게 되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행대로 3개월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적용할 경우 첫 3개월의 후반부와 두 번째 3개월의 전반부를 합쳐 3개월 동안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주장대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면 같은 방식으로 무려 1년 동안 주6일 10시간씩의 근무를 강요받아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탄력근로제 도입이 유력한 업종일수록 현장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대표적 계절업종인 에어컨 수리기사들이 모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곽형수 수석부지회장은 "여름에 30분만 땡볕 아래 서 있어도 힘든데, 우리는 10시간 넘게 무거운 에어컨을 나르고 용접하고 수리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 부지회장은 "탄력근로제를 하면 시간외수당도 다 날아가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을 위해 제도를 바꾸려면 노동자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어야 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도 좋을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계절업종의 특성상 일감이 몰리는 계절에는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에도 "예를 들어 에어컨은 여름이 아닌 계절에 방문해 미리 수리하는 서비스를 적극 실행하면 여름 일감도 그만큼 줄어들고, 겨울에도 고용할 수요가 생길 것"이라며 "이처럼 기업이 일감을 배분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손쉽게 비용만 절감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도입해 더 좋아진 것처럼 홍보하지만, 우리는 수당은 줄어들고 계속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테니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다"며 "정부에게 속은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에 속았다" 노동계 거센 반발…사회적 대화에도 악영향

    양대노총 위원장은 지난 9일 만나 탄력근로제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특히 경사노위를 통해 탄력근로제 개선책을 마련하라는 여야의 '단서조항'이 오히려 노동계의 불만을 사고 있다.

    노동계의 반대가 거센 마당에 불과 열흘 남짓 남은 기간 동안 합의점을 찾으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는 사실상 정치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결정한 채 사회적 대화는 '명분쌓기'로만 악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 참여여부를 놓고 짐짓 불편한 분위기가 엿보이던 양대노총이 오히려 탄력근로제 문제로 '단결'한 반면,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였던 '사회적 대화'에는 탄력근로제 확대안이 최대 장애물이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전태일 열사의 기일을 맞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탄력근로제 확대 조짐을 강력히 반대한 데 이어, 오는 21일 총파업에 나서기로 하면서 탄력근로 확대를 둘러싼 노정간 갈등이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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