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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스토리] 우리가 몰랐던 車 긴급 출동서비스의 그늘

사건/사고

    [노컷스토리] 우리가 몰랐던 車 긴급 출동서비스의 그늘

    24시간 출동대기 뒤에 380시간 근무하는 그들
    회사 담당자, 카톡으로 복장점검에 삼성스티커 확인
    '고객평가' 좋아야 성과급…계약 갱신도 영향 받아

    ※ 이 기사는 삼성화재 애니카 현직 에이전트들과 인터뷰를 하고 삼성화재,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측의 입장을 받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은 2009년 전국적으로 에이전트를 모집하고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출동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사진=삼성화재 공식 블로그 캡처)

     

    '출동요청이 됐습니다.'

    사고 접수가 들어왔다. 10시간을 대기하다 받은 첫 접수다.

    "고객님,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 출동자입니다. 경기도 A지역이죠? 약 20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새벽 4시. 졸린 눈을 비비고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사고 처리는 신고 접수 후 2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평가에 반영돼 성과급에 영향을 미친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오른 발에 힘을 줬다. 차는 굉음을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은 2009년 고객응대 서비스를 높인다는 취지로 전국적으로 에이전트를 모집했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직원이 되는 줄 알았다.

    영화 속 첩보요원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내 직함은 에이전트다. 정확하게 말하면 위탁계약직. 회사 사원 번호를 가지고 있지만, 회사 직원은 아니다. 회사의 관리를 받지만, 회사 직원은 아니다. 회사는 우리를 철저하게 '독립사업자'로 분류했다. 4대 보험도 없다. 사고 처리 건당 받는 수수료가 내 수입의 전부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출동 서비스'

    2010년 TV에 대대적으로 광고됐던 애니카 서비스. (사진=삼성화재 다이렉트 유튜브 영상 캡처)

     

    처음엔 애니카 홍보문구의 의미를 몰랐다. 언제 신고 접수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늘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 신고 전화를 제때 받지 않는 것도 평가에 반영됐다. 낮은 평가를 받은 에이전트에게는 신고 전화를 연결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식사를 할 때, 화장실을 갈 때도 전화를 확인한다. 만성화된 소화불량과 불면증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고통스럽다.

    평일 근무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당직이 있는 오늘 같은 날에는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차에서 출동대기를 한다. 일주일로 치자면 약 90시간, 한 달 이면 380시간에 달한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나마 내가 있는 곳은 교대할 수 있는 동료라도 있지만 인력이 없는 지역에는 7일 중 6일을, 24시간동안 대기를 하는 동료도 있다. 주 52시간 근무는 정말 먼 나라 이야기다.

    폭염이 내리쬐는 날에는 그늘이 있는 자리가,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는 지하 주차장이 사무실이 된다. 동료들끼리 돈을 모아 작은 사무실을 마련해 대기도 해봤다. 하지만 10년 째 출동 건당 2만 3000원, 야간 건당 4만 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승용차였던 내 차는 어느순간 애니카로 바뀌었다. 회사에서는 출동차량을 지원하지 않는다.

    지역의료보험, 국민연금, 차량유지비, 통신비 등도 내 몫이다. 신고 접수를 받고 출동하는 유류비도 내 몫이다. 업무 처리 중 사고가 나도 내 몫이다. 회사는 늘 "직원이 아닌 사업자잖아요"라며 뒷짐을 진다. 이러다 보니 동료들은 사고를 당해도 입원하기를 꺼려한다. 입원을 하면 그만큼 수입이 끊기니까.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하면 평균 180만 원 정도가 남는다. 월 380시간을 일한 내 순 소득이다.

    삼성화재손사 담당자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애니카 에이전트의 복장을 점검하고 차량 스티커 또한 부착됐는지를 확인했다. 위 사진은 실제 카카오톡 내용을 재구성한 자료다. (그래픽=김성기 PD)

     

    '내가 정말 사업자였던가?'

    이 말이 나오면 말문이 막힌다. 나와 동료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회사 측이 요구한 복장을 입은 사진을 올린다. 담당자는 우리 복장이 제대로 됐는지를 평가해 메시지로 알린다.

    "복장불량"

    오늘 다른 동료가 받은 메시지 내용이다. '삼성화재 애니카 서비스' 스티커가 제대로 붙여있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역시나 제대로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으면 또 다른 지적이 이어진다.

    '내가 사업자라고?'

    갓 길에 서있는 고객님의 차량이 보인다. 수리가 필요 할 정도의 교통사고가 난 것 같은데 고객님의 표정이 심각하다. 그래도 웃어야 된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 출동자입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나는 웃으며 고객님에게 '삼성화재 애니카'가 큼직하게 박힌 명함을 건넸다. 차량은 파손이 심해 수리가 필요해 보였다. 고객님의 의사를 물어보고는 삼성화재 협력업체로 지정된 정비공장에 차를 맡겨도 되는지 물었다. 지정된 정비공장에 맡겨야 실적에 반영되니까.

    "그래요."

    다행이다. 고객님이 한차례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직 부탁은 끝나지 않았다.

    "고객님 회사 측으로부터 고객평가가 오면 '매우 만족'으로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회사는 고객 평가를 중요시 한다. 평가가 좋아야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평균 95점 이상을 받아야 성과급 기준에 들 수 있다. 혹시나 고객님이 낮은 점수를 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나는 고객님에게 다시 한 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정말 사업자일까?'

    삼성화재손해사정측은 법원의 1심 판결에 즉각 항소를 했다. 회사 측은 평가 기준에 대해 "고객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로, 고객에 의한 만족도 평가가 우수하면 정해진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그 외 불이익은 없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처리 시간에 대해서도 "고객들이 빠르고 원활한 보상처리를 요구하여 고객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권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사진은 현장으로 출동하는 에이전트. (사진=삼성화재 애니카 유튜브 영상 캡처)

     

    2016년, 2017년 서울지역 노동청에 4차례 진정을 냈지만 노동청은 우리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퇴직한 동료들이 삼성화재손해사정을 상대로 법원에 퇴직금 소송을 진행했고 마침내 지난 8월 28일, 법원은 우리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을 내렸다.

    회사는 즉각 항소에 나섰다.

    함께 일하던 300명의 동료 중 남아 있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되는 140여 명. 1년마다 갱신하던 계약도 실적에 따라 6개월, 3개월 단위로 줄고 있다. 기간이 줄수록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동료들과 나는 지난 8일 국회에서 노동조합인 삼성화재애니카지부를 출범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동이 트기 시작한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출동 서비스'

    24시간을 근무했고, 아직 3시간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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