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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천하장사' 박정석 "여보, 하와이 恨 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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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첫 천하장사' 박정석 "여보, 하와이 恨 풉시다"

    '여보, 해냈어' 박정석이 26일 2018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정경진을 누르고 생애 첫 장사에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안동=대한씨름협회)

     

    '씨름계의 잡초' 박정석(31·구미시청)이 생애 첫 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천하장사에 등극했다.

    박정석은 26일 경북 안동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2018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정경진(31·울산동구청)을 3 대 1로 눌렀다. 데뷔 첫 장사 타이틀을 무려 천하장사로 장식했다.

    결승에서 박정석은 안다리로 연속 두 판을 따내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셋째 판 정경진의 들배지기에 당하며 주춤했다. 자칫 지난해 추석대회 백두장사(140kg 이하) 결정전에서 정경진에 두 판을 따낸 뒤 내리 세 판을 내준 아픈 기억이 떠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정석은 넷째 판 정경진의 거센 반격을 막아내며 접전을 펼쳤다. 1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한 가운데 이어진 연장. 경고 1개를 받은 정경진은 들소처럼 박정석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한 박정석이 맹공을 막아내며 경고승으로 천하장사 타이틀을 확정했다.

    경기 후 박정석은 "꿈을 이뤄서 너무 좋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곧이어 "그러나 안주하지 않고 그동안 장사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대회 장사를 하는 목표를 이루도록 하겠다"고 각오부터 다졌다.

    그럴 만했다. 박정석은 실업 씨름 입단 뒤 단 한번도 꽃가마를 탄 적이 없다. 지난해 추석대회 백두장사 1품까지 3번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천하장사대회에서도 지난해 3품(4강)이 가장 좋았다.

    장사 확정 뒤 박정석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박정석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고생했던 게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너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남들도다 2배 이상 노력하니까 분명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신 분들이 떠올라서 울었다"고 털어놓는 중에도 눈물을 쏟아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박정석이 26일 2018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생애 첫 장사에 오른 뒤 김종화 구미시청 감독을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안동=대한씨름협회)

     

    박정석은 경남대 2학년 시절 씨름을 그만둘 뻔했다. 부상이 축적되면서 골반과 허리가 심각한 손상이 왔다. 척추가 4cm 이상 찢어지면서 그 여파로 왼 다리가 4cm 더 길어지기까지 했다.

    이에 박정석은 "씨름을 포기하려 했다"면서 "그러나 모제욱 감독님이 '넌 끈기 있으니까 재활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주셨다"고 돌아봤다. 모 감독의 스승인 '털보' 이승삼 전 감독도 정신적인 지주였다. 현재 이승삼공간 갤러리 대표로 씨름과 문화 전달에도 힘쓰는 이 감독은 박정석은 물론 정경진도 키워낸 왕년의 스타다.

    재활 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다리 길이가 맞지 않은 상황에서 힘을 쓰다 인대가 파열되기도 했다. 고향인 충남 태안군청에서 6년 계약이 끝나 선수 생활에 위기도 왔다. 박정석은 "그때 현재 구미시청의 김종화 감독님이 손을 뻗어주셨다"면서 "손명호(의성군청) 형도 그때 많이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실 오늘 결승에서 롤 모델인 명호 형과 붙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경진이에게 지난해 추석대회 결승에서 당한 2 대 3 역전패를 설욕했다"며 나름 의미를 찾았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박정석은 또 다시 울컥했다. 2014년 결혼한 이후 고생한 아내 때문이다. 박정석은 "내가 하루 4번이나 훈련하는 등 운동에 집착하느라 집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면서 "형편도 좋지 않아 그동안 변변한 가방이나 옷 한 벌 해주지 못했다"고 말할 때 다시 울먹였다.

    이번 대회 상금 1억 원을 그래서 뜻깊게 쓰려고 한다. 박정석은 "3일 이상 운동을 쉬어본 적이 없어 4살, 3살 딸과 그동안 여행 한번 하지 못했다"면서 "장인, 장모까지 모시고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번에 풀고 싶다"고 눈물 사이로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곳은 하와이다. 여기도 사연이 있다. 결혼 당시 신혼여행지가 하와이였는데 한을 남기고 왔다. 박정석은 "당시 돈이 없어 환전을 많이 못했다"면서 "그래서 (면세점이나 아울렛 등에서) 가방을 사지 못했고, 레저도 할 수 없었는데 그게 아내의 한이 됐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래서 이번에는 꼭 아내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빠가 됐다. 박정석은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우리 아빠 TV에 나왔다'고 하더라"면서 "이제 천하장사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빠 미소를 지었다. 박정석은 "남은 상금은 집을 사느라 진 빚을 갚겠다"고 듬직한 가장으로서 말했다.

    척추와 인대가 끊어지며 선수 생명까지 위협을 받았던 박정석. 그러나 가족과 지인, 스승 등 주변의 격려 속에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 씨름 최정상에 올랐다. 안주하지 않겠다는 박정석의 굳은 각오가 앞으로도 이어질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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