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자료사진/이한형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조사를 받고 있는 이른바 '혜경궁김씨' 사건이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 지사가 친문 진영에서는 일종의 금기(禁忌)와도 같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채용비리 의혹을 언급한 것이 친문(親文) 진영과 선을 그은 행위인지 여부를 두고 당내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향후 대응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 지사가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특혜채용 의혹이 허위임을 법적으로 확인"하자는 데서 비롯됐다.
이 지사는 "저나 제 아내는 물론 변호인도 문준용씨 특혜채용 의혹은 '허위'라고 확신한다"면서도 고발의 원인이 된 트위터 글의 위법성을 판단하려면 우선 "특혜채용 의혹이 '허위'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뒤 이를 바탕으로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상적이지 않은 제3자의 '대선경선후보 명예훼손 고발'로 이렇게까지 온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고 억울한 의혹제기의 피해자인 문준용씨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며 이날 발언이 자신의 사견과는 무관한 '팩트체크'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지만 당내 반응은 이와 다르다.
당내 일각에서는 보수 야당의 단골 대여 공격 소재였던 준용씨에 대한 특혜채용 의혹을 다시 점검하자고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은 기존에 이 지사가 경찰 수사 등을 맹비난했던 점을 감안할 때 단순한 사실점검 차원이 아닌 의도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아내인 김혜경씨가 해당 트위터의 계정주가 아님을 밝히면 모든 의혹이 자동적으로 해소됨에도 굳이 무죄성을 입증하기 위해 준용씨의 채용과 관련한 내용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고발된 계정에서 여러 차례 게시된 준용씨 사건에 대한 글들을 역이용해 사실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은 문 대통령과 당내 친문 진영에 대한 역공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나는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제명 등 당내 요구에 대한 대응은) 당이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2012년부터 문제가 됐고 새누리당이 5년 동안 우려먹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아주 정치적으로 나쁜 의도에서 시작된 사건을 이 시점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도 "경선을 통해 공천을 받았고, 경기도지사까지 된 상황에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반응은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며 "경선 때도 아닌데 문 대통령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은 결국 이번 사건을 토대로 자기 정치의 발판을 다지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중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자 사실관계를 확인하자는 주장에 대해 쉽게 '역린(逆鱗)'이라는 낙인을 찍었다가 자칫 무혐의로 처분될 경우 역풍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법적으로 어떠한 결론도 나오지 않았고 본인도 특혜채용이 허위라고 확신한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굳이 당이 나서야 할 필요가 있느냐"며 "충분히 기다린 후에 대응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수야당은 이번 상황을 호재로 보고 '여권 내 분열'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이 지사와 민주당 사이를 더욱 멀어지도록 압박하고 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26일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성남FC 2부리그 강등과 관련한 축구연맹 징계를 받을 당시를 언급하며 "(이 지사가) 자기 문제에 부닥치면 자기를 도와준 사람도 같이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행태도 서슴없이 하는 사람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며 "문 대통령은 아마 이번에 알았을 것"이라고 경고에 나섰다.
'김부선 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던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도 "대통령의 아들 문제를 언급한 것은 반문(反文) 야당선언"이라며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여당으로서는 감히 꺼낼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해 이 지사가 야당 수준으로 민주당을 공격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민주당원 일부가 이 지사의 발언을 강하게 비난하며 징계를 요구하고 있어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법적, 도덕적으로 명백한 결격사유가 발생하기 전에는 징계를 논할 수 없도록 한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 본인이 성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에 위법 여부를 떠나 불륜이 인정되기 때문에 도덕적인 사유로 징계를 할 수 있었지만 이 지사의 경우 자신이 지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정치적인 해법으로 탈당을 권고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방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사건의 수사과정, 검찰의 공소과정, 법원의 재판과정을 보고 나서 얘기할 사안"이라며 대권주자급 인사에 대한 정석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이후 당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친문성향의 당원들은 SNS를 통해 출당 등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이 대표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며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어 당 지도부로서는 원칙과 여론 사이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 안과 바깥 양쪽에서 흔들기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 지사는 "자진 탈당은 절대 없다"며 당내에서의 무죄 입증에 주력할 방침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 지도부의 고민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