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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이면 합격"… 결혼-임신 제약받는 방송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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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임이면 합격"… 결혼-임신 제약받는 방송작가들

    방송작가유니온, '2018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 발표
    응답자의 70.8% "원할 때 자유롭게 임신 결정 못 해"
    '일과 임신-출산 병행 불가능', '휴직 등 혜택 전무'한 탓
    "작가는 결혼하면 안 돼", "똑똑했던 작가들도 애 낳고 나면 멍청해져" 폭언 듣기도
    가장 시급히 필요한 제도로는 '유급 출산 휴가' 꼽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지난달 28일 '2018 모성보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방송작가들은 결혼, 임신, 출산을 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방송작가들은 다른 직종보다 경력을 이어갈 때 결혼과 임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여겼고, 기혼 여부와 자녀 유무 질문을 곧잘 받았으며, 결혼·임신·출산에 관한 부정적 발언을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지부장 이미지, 이하 방송작가유니온)는 지난달 28일 '2018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해 이같이 밝혔다.

    우선, 총 응답자 216명 중 70.8%에 달하는 153명이 임신을 본인 자유의사로 선택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3명으로 29.1%에 그쳤다.

    임신 결정이 자유롭지 않은 이유는 높은 노동강도와 잦은 밤샘 등으로 일과 임신 및 출산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1위였다. 총 186명의 응답자 중 66.1%인 123명이 이같이 답했다.

    임신 후 휴직·휴가·돌봄 등 혜택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한 응답자는 25.3%(47명), 임신하면 해고 등 불이익을 받을까 봐 7%(13명), 임신하면 동료들에게 눈치 보일까 봐 1.6%(3명)였다.

    임신 후 일을 그만둔 적 있냐는 물음에는 총 176명의 응답자 중 37.9%인 67명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임신 가능성이 더 높은 기혼자를 대상으로 분류하면, 임신 후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는 응답은 65.3%로 올라갔다.

    결혼과 임신에 관해 들은 부당한 말 혹은 맞닥뜨린 부당한 상황도 다양했다. 총 129명이 주관식(하나의 답에 여러 상황이 포함될 경우 중복 계산)으로 내놓은 답을 보면, △결혼 및 임신하면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 59건 △결혼 및 임신으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 30건 △기혼·유자녀 작가 비하 및 차별 발언 29건 △업무로 인한 유산 상황 3건 △면접 시 출산 및 임신 관련 질문받았다는 내용 3건 등이었다.

    "너 애 가지면 이제 일 복귀 못 하겠네?", "작가는 결혼하면 안 돼", "넌 이제 (경력) 끝났다!", "애 생기면 야근 못 하겠네. 그럼 다른 사람 구해야지", "결혼하면 전투력이 떨어진다. 애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

    방송작가들이 생각하는 임신 결정이 자유롭지 않은 이유 1위는 '높은 노동강도, 잦은 밤샘 등으로 일과 임신 및 출산을 병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총 186명 중 66.1%인 123명이 꼽아 1위였다. (그래프=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제공)

     

    작가들이 들은 말 중 일부다. 한 작가는 둘째를 가졌을 때 당시 제작부장이 빈정거리는 투로 '임신은 잘 되네'라고 말한 것을 두고 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유산했으나 회사에 말 못 한 경우, 출산일 임박한 막달에도 경제적 걱정 때문에 녹화장에 왔던 경우 등의 사례도 나왔다.

    이렇다 보니 방송작가들은 경력을 이어가는 데 다른 직종보다 결혼과 임신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총 205명 응답자 중 그렇다는 응답이 79%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매우 그렇다는 55.1%(113명)이었고 그렇다는 23.9%(49명)였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5.4%(11명)였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0.5%(1명)였다.

    방송작가들이 생각하는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총 202명 응답자 중 38.1%(77명)가 '밤낮없는 불규칙한 노동으로 건강에 해가 될까 봐'를 꼽았다. '일을 멈추면 경력단절이 되어서'는 35.1%(71명), '기혼·유자녀 작가들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가 17.3%(35명), '결혼 및 임신과 동시에 해고될까 봐' 9.4%(19명)였다.

    또한 189명의 응답자 중 기혼 여부나 자녀 유무 질문을 받은 경우는 58.7%(111명)였다. 그런 질문을 받지 않은 응답자는 41.3%(78명)였다.

    임신·출산에 관해서도 부정적인 발언이 쏟아졌다. "우리 팀은 메인 작가도 다 처녀다. 유부녀가 들어오면 분위기가 흐려진다. 특히 애 엄마는 같이 일해 본 적도 없다", "똑똑했던 작가들도 애를 낳고 나면 멍청해지더라", "애 키워 줄 사람 있어요? 애 때문에 일할 수 있겠어요?", "결혼했으니 너까진 안 벌어도 되지 않느냐. 쉬운 일 찾아봐라", "임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든가… 혹시 불임이면 합격이다" 등이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작가는 "기혼 작가는 주말에 일을 못 하니 힘들다", "남편 돈 버는데 뭘 그렇게 돈돈 거리며 등급 올려달라고 하나?", "애가 어린데 왜 벌써 일을 해?", "유부녀들은 정신이 딴 데 가 있어", "아줌마 되더니 감이 떨어졌네", "아줌마들 말고 처녀랑 일하고 싶다" 등 무시나 비난·성희롱성의 발언도 들어야 했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결혼·임신·출산 관련 휴가를 써 봤다는 비율도 낮았다. 총 115명 중 28.7%인 33명만 휴가를 다녀왔다고 답했다. 하지만 유급으로 공식 휴가 받은 경우는 1명에 그쳤고, 임시로 다른 작가에게 일을 맡기고 무급으로 휴가를 보냈다는 응답이 26.1%(30명)였다. 아예 일을 그만두는 방법으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는 응답이 61.7%(71명)로 가장 높았다.

    방송작가들은 모성권 보호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도입해야 할 제도(중복 2개까지 선택 가능)로 '유급 출산(결혼) 휴가'(123건)를 들었다. 그 뒤로는 출산/결혼/육아 시 팀에서 해고되지 않을 조항(100건), 재택근무 공식 인정(92건), 연차 경력단절 시기에 대한 보상 및 제도(81건), 워킹맘 인증을 위한 각종 증명서 발급(64건) 순이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작가들은 그동안 서면 계약서 한 장 쓰지 못하고, 해고 통보 한마디에 직장을 떠나야 하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 처해 왔다. 설령 서면계약서를 쓰더라도 기존 방송작가를 위한 계약서에는 모성보호에 대한 언급 한 줄 없다"고 지적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지난 9일 한국방송협회 등 방송계 7개 단체가 공동 발표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에 명시된 "독립창작자는 고용 형태나 임신·출산·육아 등의 조건에 따라 임금 및 해고·면직 그 밖이 노동조건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을 들어 "인권선언이 보여주기식 쇼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작가유니온 이미지 지부장은 "정부가 아이 낳기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며 매년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프리랜서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모성보호권에는 소홀해 왔다는 사실이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방송작가의 94.6%가 여성이지만, 여성을 위한 모성보호 제도는 전무하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방송사들은 이제라도 방송작가들의 모성보호권 보장을 위한 사회제도 마련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작가들은 모성권 보호를 위해 '유급 출산(결혼) 휴가'가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래프=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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