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8년 11월 30일 (금)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정관용> 지난 추석 즈음에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큰 화제가 된 칼럼이 하나 있었어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이런 제목의 칼럼인데요. 추석에 모인 친척들이 취직은 했니, 성적은 올랐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뭐 이런 듣기 싫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분한테 되물으라는 겁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말이죠. 아주 파격적인 어떤 조언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는데. 그 칼럼을 쓰신 김영민 교수 이번에 수필집이라고 말해야 되겠죠. 그런데 제목이 또 심상치 않아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내셔서 오늘 직접 스튜디오에 좀 초대해 봤습니다. 김영민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김영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정관용>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신데 수필집을 내셨고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아침이면 죽음을 생각하라에. 전공이 정치사상, 철학 그쪽이십니까?
◆ 김영민> 네, 정치사상입니다.
◇ 정관용> 그건 참 보기 드문 경우라서요.
◆ 김영민> 사실은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건 과거 우리가 공부하는 정치사상이라는 게 발표할 당시에는 수필이었던 적도 있고 에세이였던 적도 있고 심각한 글들도 있었던 적이 있고. 이번 책도 안에는 수필도 있지만 또 심각하게 좀 긴 글도 있고 그래서 어찌 보면 그 전통 내에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우선 지난 추석 화제가 됐던 칼럼 얘기부터 시작해야 우리 청취자분들이 익숙해질 것 같아서. 정말 누구랑 결혼을 했니. 예를 들어서 작은아버지가 계시다. 그러면 작은아버지, 추석이란 뭐죠. 이렇게 물으라는 얘기죠?
◆ 김영민> 칼럼의 취지는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쉽지 않겠지만 그런데 이제 당숙 같은 경우는 실제로 당숙이 몇 촌인지 아마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죠, 요즘 세대는 그럴 것 같고. 그런데 이렇게 뭐냐고 묻는 건 일상에서 하기는 어려워도 실제로 수업 시간에는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좀 진지하게 다시 논하고 싶을 때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고는 하죠. 그래서 추석도 이제 그렇게 얘기해도 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런 표현을 쓰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 칼럼에 보면 이런 듣기 싫은 질문을 받았을 때 추석이란 뭐죠라고 물어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네가 걱정돼서 그런다. 예를 들어서 결혼을 해야 될 거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면 결혼은 뭐죠 그러면, 이런 식으로 계속 지금 물으라고 코치하셨잖아요.
◆ 김영민> 그렇죠.
◇ 정관용> 그러다가 지금 오히려 들으신 어르신들이 화내지 않을까요?
◆ 김영민> 화내도 나쁜 결과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 질문에서 계속적으로 고통받느니 잠깐 화를 거쳐서 더 이상 그런 괴로운 질문을 안 받게 된다면 그것도 다시 나쁘지 않은 결과일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 대처법이 지금 화제가 되기는 했습니다마는. 진짜 그 칼럼에서 담고자 했던 내용의 핵심은 뭐죠?
◆ 김영민> 그런 핵심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건 작업상 비밀이기도 하고 글을 내보냈을 때는 역시 자기 뜻대로 해석하는 게 독자의 권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핵심 같은 것은 잘 밝히지 않는 게 저자로서의 입장이라면 입장입니다.
◇ 정관용> 칼럼도 좀 까칠하시더니 대답도 매우 까칠하신데요. (웃음)
◆ 김영민> 그런가요.
명절 차례상(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좋아요. 이번 책의 제목.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건 왜 제목을 이렇게 붙이셨습니까?
◆ 김영민> 그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삶을 좀 다시 재고해 보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 정관용> 제목을 바로 받는 프롤로그 글을 제가 바로 보니까 동서양의 옛 황제로부터 시작해서 학자, 무인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글과 주장과 내용을 인용하시면서 프롤로그를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인용된 문구 거의 대부분이 우리는 결국 죽는 거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그러지 마. 우리는 시한부 인생이야. 죽음을 미리 딱 각오하고 있으면 뭐든 더 힘이 나는 거야. 그런 대목을 쭉 옮기셨더라고요.
◆ 김영민> 힘이 난다고 하기는 어렵고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라고 권한 사람들이 예전부터 있었고. 이게 제가 처음 한 얘기가 아니고 그 계보 아래서 이 책도 읽을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정관용> 실제로 수업 시간에 정치사상 이런 걸 아마 강의하시지 않겠어요? 학생들하고는 정말 아까 추석과 같은 식의 대화를 많이 하신다고 하셨죠?
◆ 김영민> 그렇습니다. 그래서 학생들한테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 정관용> 학생들한테 근본적인 질문을 자꾸 던지시는 거예요?
◆ 김영민> 그건 사실 정치 사상의 수업의 기본이 그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 정관용>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것처럼.
◆ 김영민> 물론입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이고.
◇ 정관용> 그럼 학생들 반응은 어때요? 익숙해져 있습니까?
◆ 김영민> 그렇습니다. 제 학생들은 꽤나 익숙해져 있어서 아마 이 칼럼 자체가 새롭다기보다는 이것이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이 아마 새롭다면 새롭겠죠, 그들한테는.
◇ 정관용> 원래 명절 이런 거에 대해서 좀 비판적이세요?
◆ 김영민> 오랫동안 비판적이어 왔고요. 그리고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한테 명절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더 많이 하는 때가 도달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정관용> 그러면 가족들이 모이고 뭐 이런 거 순기능이 큰 거 아닙니까?
◆ 김영민> 가족들이 모이는 계기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꼭 이 계기로 모이는 건 시효가 다 하지 않았나. 나쁘다기보다는. 어떤 일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나 힘이 있을 때 주로 이제 존재하고 순기능을 발휘하는데 그랬던 적이 있었죠. 그래서 추석이나 명절이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걸 지탱하는 어떤 조건들이 이제 시효를 거의 다해가지 않았나 그런 게 있겠죠.
◇ 정관용> 특히 지방이 출신이신 분들. 그나마 명절 때 긴 연휴를 이용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도 찾아뵙고 하는 그런 건 여전히 살아 있는 거 아닙니까?
◆ 김영민> 그런데 저는 명절 때 이렇게 다 같이 내려가는 교통체증도 있고 그래서 우리도 만약에 선진국의 다른 나라들처럼 1년에 한번 8, 9, 10일의 휴가를 누린다면 각자 편한 날에 내려갈 수 있고 또 제사 이외의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그렇게 친족들을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것 자체는 그렇게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만나서 이런 식의 예식을 하는 건 그 자체로 나쁘다기보다는 시효가 다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입니다.
◇ 정관용> 그런 의미에서. 또 그전에 쓰신 칼럼 가운데 많은 분들한테 읽힌 게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었어요. 교수들이 학생들 논문도 읽지 않고 논문 심사하는 거. 거기에 회의를 느껴서 유학 갔다, 그런 내용들의 대목인데. 그렇죠?
◆ 김영민> 네.
◇ 정관용> 거기서 말한 그럼 위력이란 무엇입니까?
◆ 김영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힘 전체가 사실은 위력이고.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폭력적인 그런 위력이 대체로 그 효력을 잃어갈 때 드러나는 증상이다, 이런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위력을 폭넓게 더 생각할 필요가 있죠.
◇ 정관용> 그 위력을 통해 누군가를 어떻게 행동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될 때는 폭력적으로 반응하더라.
◆ 김영민> 가장 거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죠.
◇ 정관용> 가장 거친 위력이 폭력이다. 마침 그 글을 쓰신 즈음이 안희정 전 지사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무죄 나왔을 때거든요. 그 판결은 어떻게 보셨어요?
◆ 김영민> 사실은 그 판결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뭐라고 할 사안은 아니고 그건 법률 전문가들이나 관련 당사자들이 여러 증거를 취합해서 판단할 일이죠. 제가 오히려 문제시했던 건 사실은 그 판결 자체보다는 판결문입니다. 판결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위력의 이해가 제가 생각하는 위력의 이해보다는 상당히 협소한 것이어서. 그래서 똑같은 결론에 이르든 아니면 다른 결론에 이르든 판결문 내에서 거론하거나 사용하고 있는 위력 개념을 좀 제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런 취지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 무죄 선고를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윤창원기자
◇ 정관용> 판결문에서는 위력을 어떤 정도로 좁게 해석을 했던가요?
◆ 김영민> 아까 말했듯이 아주 명시적인 폭력에 가까운 그것만 위력으로 저는 규정하고 있다고 봤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더 넓고 유연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개념이죠. 판결 자체가 사실은 그건 제가 관련된 증거에 접근 가능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그건 해당 당사자들이 판단할 문제죠.
◇ 정관용> 교수님의 칼럼을 쭉 몇 편 보다가 아주 재미있는 표현 하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게 있더라고요. 앞에 놓인 탁자를 당수로 쪼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목젖을 뽑아 줄넘기를 한 다음에 창문을 온 몸으로 받아깨면서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지 않았을까. 이 대목이 몇 군데 쓰이더라고요. 이게 좀 일부러 이런 식의 풍자적인 표현을 쓰시는 겁니까? 뭡니까?
◆ 김영민> 글쎄요.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 정관용> 어떤 보이지 않는 위력 앞에 내가 무저항으로 있었던 것 자체. 그것을 회한하면서 이런 대목을 쓰셨거든요.
◆ 김영민> 그런 회한의 정도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매우 회한스럽다. 이 정도 가지고는 부족하고 그 정도 표현이 무게에 값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평소 아주 근본적인 것, 원칙적인 것. 이런 데 관심 많으시죠?
◆ 김영민> 관심 많은데 직업병 같은 거죠. 이런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그렇게 하게 돼 있기 때문에.
◇ 정관용> 우리 김 교수님이 보시기에 근본과 원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서로 나누고 토론해서 합의와 동의에 기반한 사회입니까? 아니면 그런 것 없이 온갖 무근거한 권위와 허례와 이런 것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입니까?
◆ 김영민> 굳이 얘기하자면 후자에 가깝겠지만 전자와 같은 사회도 너무 이상적이기 때문에 저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물론 없겠지만. 그런데 후자 쪽이.
◆ 김영민> 아주 자주 보이는 현상이어서 상당히 우려하는. 저도 그런 문화의 일부겠지만 어쨌든 고민스러운 대목이죠.
◇ 정관용> 그런 우려하는 대목을 그나마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가? 민주주의를 더 연습하면 되는 겁니까? 어떻게 하는 겁니까?
◆ 김영민> 민주주의도 연습을 해야겠죠. 그렇지만 저는 그게 또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어쩌면 만병통치약이라기보다는 그나마 가능한 보다 나은 방식에 해당할 것이고 그 외에도 강조할 건 굉장히 많죠.
◇ 정관용> 한 가지 정도만 더 하신다면.
◆ 김영민> 아까 교수사회 얘기를 했지만 저는 직업 윤리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전문인이나 일정한 권력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개인 도덕성의 문제. 이런 게 많이 폭로되고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거 당연히 필요하고 문제가 되는 과정이겠지만 저는 직업윤리에서의 문제 역시 그에 못지않게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말씀드렸듯이 자기가 심사하기로 한 논문을 안 읽고 온다. 이건 특히 개인적인 도덕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기가 맡은 어떤 직업의 수행에 관해서 충분히 자기가 헌신하지 않는 거니까.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민주주의 문제는 아니죠. 여러 가지 문제기 때문에 저는 각자 주어진 입장, 위치에서 자기 직업윤리를 다하는 이런 것도 굉장히 우리에게 또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방금 또 그 말씀 듣고 있다 보니까 직업윤리하고 하는 건 또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그 직업군이 그럴 만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교수사회에서 석사 논문 정도야 내가 안 읽고 심사 가도 이게 통용되니까 그러고들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집단적 의미의 직업윤리의 각성.
◆ 김영민> 그게 단순히 말해서 교수직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회에 만연한 어떤 증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저희가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고 또 그리고 그런 성취도 있고 그러니까 이런 직업윤리의 중요성 이런 것도 충분히 더 강조될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 정관용> 마지막으로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다, 이런 표현 쓰시고. 우리 한국사회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다, 이런 표현을 쓰셨는데 어떤 표현입니까?
◆ 김영민> 물론 행복도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일단 굉장히 주관적인 상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 또 쾌감에 가까운 형태로 이해하는 형태가 있는데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쾌감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훌륭할 수 있는 것, 바람직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중시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하나 있고. 그리고 그걸 쾌감이나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게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사실은 결국은 쾌감이라는 것은 반작용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저는 어떤 극단적인 행복의 추구보다는 사람들이 덜 불행해지는 방식. 이를테면 사회안전망, 사회보장 이런 것도 어떤 사람을 아주 극도로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지 않게끔 조치하는 그런 데 취지가 있는 거니까 저는 그쪽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제 생각입니다.
◇ 정관용> 가급적 적게 불행한.
◆ 김영민> 덜 불행한.
◇ 정관용> 덜 불행한. 가급적 많은 사람이 덜 불행한.
◆ 김영민> 저는 그게 추구해 볼 만한 방향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연구는 행복하기 위한 연구보다는 많은 사람이 덜 불행해지는 방향에 대해서 말 그대로 탐구를 하고 그리고 거기서 더 넘어가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상당히 많은 부분 사회몫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몫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정관용> 이번에 펴내신 책의 제목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입니다만 상당수의 칼럼 중에 화제가 된 칼럼은 뭐뭐란 무엇인가로 끝납니다, 제목이. 그렇죠?
◆ 김영민> 그렇네요.
◇ 정관용> 우리 청취자들한테 뭐뭐란 무엇인가 자꾸 물으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 김영민> 억지로 물으실 필요는 없고요. 그러고 싶으시면 그러셔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 정관용> 또 그렇게 자꾸 묻다 보면 뭐가 좋던가요?
◆ 김영민> 그런 질문을 하라고 권하는 경우에는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라. 이런 취지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꼭 그렇게는 생각을 안 합니다. 사람이 또 무의미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너무 지나친 의미를 추구하다가 사람들이 전쟁도 일으키고 그런 일도 하기 때문에 의미가 좀 부족한 사람은 그런 질문을 통해서 좀 의미를 더 찾고 과도한 의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적당히 무의미하게 사는 것도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이번에 무엇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하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으로 들고 오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의 김영민 교수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영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