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24살 청년 노동자에 떠민 '죽음의 외주화'



경제 일반

    24살 청년 노동자에 떠민 '죽음의 외주화'

    하청노동자 아무리 죽고 다쳐도 원청은 '나 몰라라'
    정부,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 시작…아직 갈 길은 멀어
    하청 산재에 대한 원청 책임·처벌 명시한 28년 만의 산안법 전부개정
    처벌의 '하한선' 되살리고 위험작업에 대한 도급 금지 범위 확대해야

     

    태안 화력발전소 사망사고를 낳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정부는 원청과 하청의 산업재해를 통합 관리하고 원청의 산재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통합 관리를 위한 통계 작업도 쉽지 않은데다, 원청기업이 빠져나갈 구멍이 곳곳에 숨어있어 아직 남은 과제가 더 많아 보인다.

    ◇정부,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 추진하지만…통계 범위·신뢰도 등 남은 과제 산적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총 12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해 12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2주 간격으로 안전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등 최근 3년 동안 4건의 사고로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원청인 태안 화력발전소는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책임지고 처벌을 받기는커녕,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 인증까지 받아 정부로부터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여원을 감면받았다.

    사망한 노동자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산재 통계가 하청업체에만 남을 뿐, 원청인 태안 화력발전소 사업장의 산재 기록으로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원·하청 산업재 통합관리제도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제조·철도·지하철 업종 가운데 원청의 상시 노동자 수가 1천명 이상인 사업장 119곳을 선정, 원청의 산재 지표에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의 산재까지 포함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2차, 3차 하청에 하청이 재하청을 낳는 국내 현실에서는 어디까지 원하청 산재를 통합관리할 범위로 봐야 하는지부터 불분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연구원은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에 사업장에 들어와서 납품하는 하청업체도 포함해야 하는가. 2차·3차 하청 등을 어떻게 다룰지는 애매한 문제"라며 "물론 법으로 정하기 나름이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영세하고 폐업도 잦은 하청업체 자료를 원청이 단순 합산해 보고하는 방식이다보니 통계 결과의 신뢰도마저 낮을 수밖에 없다.

     

    ◇하청 산재에 대한 원청 책임·처벌 명시한 산안법, 실효 거두려면…

    게다가 하청업체의 산재가 아무리 많아도 그 자체만으로는 원청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거나 처벌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해 정부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대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안이다.

    1990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전부개정될 산안법 개정안에는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 외에도 원청, 발주자(건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배달앱 사업주도 산재 예방을 위한 책임을 부담하도록 했다.

    이러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 뿐 아니라 원청업체의 사업장 전체로 확대하고, 이를 어길 경우 하청업체 고용주와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했다.

    아울러 노동자 사망사고에서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현행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던 처벌 기준을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높였다.

    하지만 노동계는 "애초 법 개정의 취지가 대폭 훼손됐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입법예고 당시 고용노동부가 구상했던 개정안의 수준에서 크게 후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최명선 안전보건국장은 "그동안 산안법 23조, 24조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하던 것에 비하면 많이 진전된 것"이라며 "개인을 처벌하고 기업을 양벌규정하면서 벌금이 너무 낮던 것을 분리해 벌금을 매기도록 한 점도 높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래 산안법 개정안에는 1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는데, 국무회의를 거치며 이 부분이 사라졌다"며 "사실상 형사처벌의 하한형이 없다면 상한형을 7년에서 10년으로 늘려도 의미가 없는, 면피성 조항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산안법 위반 혐의로 열린 형사재판 건수는 총 5109건, 이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인 28건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인 3413건이 벌금형에 그쳤고, 액수도 겨우 4~500만원 수준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사망 산재 사고에는 반드시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원청업체 안에서도 현장관리직만 '꼬리자르기' 식으로 처벌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산안법 개정안에도 경영진도 처벌할 수 있는 기초 근거를 마련했지만, 더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해 원청 경영진이 확실히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개정안에 도급이 금지된 유해·위험한 작업 범위가 너무 좁다"며 "이미 '위험의 회주화' 금지 범위를 더 넓힌 의원발의안이 발의된만큼 도급금지 범위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시각 주요뉴스


    NOCUTBIZ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