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에 돈이 되지 않다고 무시 받았던 은행 예·적금 상품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증시와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 확대와 금리 상승 추세가 맞물리면서 재테크 시장에서는 원금을 지킬 수 있는 안전 자산으로 돈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이 판매하는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8월 말 578조2980억원에서 이달 12일 606조 3135억원으로 약 네 달 만에 28조원 넘게 늘었다.
정기예금은 주로 1년 단위로, 평균 연 1~3%의 금리를 내건 은행의 대표적인 수신상품이다. 정기적금과 주택청약종합저축처럼 매달 혹은 사전에 정한 대로 돈을 꼬박꼬박 넣는 적립식예금도 같은 기간 6755억원 증가했다. 둘을 합하면 5대 은행이 이 기간 끌어모은 수신액은 28조 6910억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은행 예·적금에 몰린 돈이 같은 기간 줄어든 요구불예금 수준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통장처럼 돈을 언제든 넣고 뺄 수 있는 상품으로, 대기성 자금을 뜻한다.
8월 말 475조 8648억원이던 5대 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은 12일 기준 468조 7818억원으로 7조 가량 감소했다. 단순 입출금통장에 있던 돈 뿐 아니라 주식이나 다른 재테크 수단으로 썼던 돈까지 예·적금으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금리 상승세가 떠도는 부동자금을 유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10월 중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은 전월 대비 15조 6000억원 증가했다. 2010년 2월(16조 8000억원) 이후 8년 8개월 만에 최대치다.
최근 올라간 예·적금 금리(단위%) [그래픽=임금진PD]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난 10월 30일 1년 만에 이뤄진데다 이미 그 전부터 시중금리 상승에 맞춰 은행들의 수신상품 금리도 조금씩 올라갔다.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예금은행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저축성 수신 평균 금리는 올해 연 1.8%에서 출발해 올해 8월 1.81%, 9월 1.84%를 거쳐 특히 10월에는 1.93%로 한 달 만에 0.09%포인트 뛰었다.
9~10월 대출금리 상승폭인 0.03%포인트보다 세 배 더 올라 예금금리 오름 속도가 대출보다 더 빨랐다. 1년짜리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10월 기준 2.06%로 2015년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저축은행 평균 정기예금 금리는 한 달 만에 0.1%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정기예금(12개월) 평균 금리는 연 2.58%로 전월 말 대비 0.08%포인트 뛰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면서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찾아 저축성 예금과 저축은행 예금 등에 돈이 몰리는 '머니 무브'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중자금이 현금 자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라면서 "정책 불확실성 등으로 투자 환경이 나빠지면서 은행 이자라도 받자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