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학습된 배려' 넘어 장애인을 '인간'으로 마주하기, '어른이 되면'



영화

    '학습된 배려' 넘어 장애인을 '인간'으로 마주하기, '어른이 되면'

    [노컷 인터뷰]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①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시설에서 살다가 18년 만에 언니 장혜영 씨와 함께 살게 된 발달장애인 장혜정 씨의 이야기다. 서울 거주 6개월이라는 기록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널리 나누고 싶어 만든 작품이다. 기획, 각본, 연출을 맡은 언니 혜영 씨는 '어른이 되면'은 일정 부분 우연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언론 시사회에서 '어른이 되면'을 보고 나서, 이 작품에 대해 더 풍성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저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장애인의 생활을 오롯이 개인이나 가족이 책임지는 지금 구조가 맞는 걸까?' 등 자꾸만 질문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신선함도 좋았다. 혜정 씨는 비장애인보다 더 굳은 의지로 무언가를 극복하거나, 부단한 노력으로 끝내 어떤 지점에 올라서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개인의 호불호와 취향이 있고, 아무리 언니라도 너무 간섭한다는 느낌이 들면 불쾌함을 표하는 보편성도 담겼다.

    '어른이 되면' 개봉 날이었던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장혜영 감독을 만났다. 어제 잠들기 전만 해도 걱정이 앞서 이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는 장 감독은, 집을 나섰을 때 내리는 눈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늘(13일)이 '어른이 되면' 개봉 날이다. 기분이 어떤가.

    오지 않길 바랐다. 걱정되니까. (웃음) 근데 뭔가 딱 나왔을 때,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좋았다. 아침에 인터뷰도 있어서 긴장했는데, 문을 열었을 때 눈이 내리는 걸 보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눈이 참 서정적으로 내리더라. 보자마자 '찍어야겠는데? 예쁘게 나오겠는데?' 했다. (웃음)

    ▶ 정식 개봉 전에 '어른이 되면'을 본 관객들이 남긴 평을 보니 9점 후반대에 이를 정도로 평점이 높았다. 그중에서는 상영관이 적어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상영관은 예상한 만큼 확보했나.

    사실 저는 처음에 (이게) 개봉할 거라고 많이 기대하진 않았다. 만든 방법도 영화판 논리와 거리가 멀었다. 개봉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되게 감사한 일이다. 어쨌든 30개 조금 넘게 했는데 더 많았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아예 (극장에) 걸리지 않는 영화도 너무 많으니까. 어제(12일) 거의 자정이 다 돼서 유튜브 라이브를 했다. 개봉 소식을 알리며 이런저런 걱정을 했더니 다른 분들을 모시고 오겠다, N차 관람을 하겠다, 정 안 되면 영혼 관람(직접 오진 못 하지만 예매해 돈을 지불함으로써 작품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방식)을 하겠다 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쪽 생리를 저보다도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어떤 분이 '영주에 오는 날도 있을까요?'라고 하셨는데,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서 언젠가 영주에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 주 월요일(17일)에 부천독립영화전용관 판타스틱 큐브에서 GV를 한다. 개관작으로 선정해 주셔서 더 의미가 있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의 주인공인 혜정 씨 (사진=시네마달 제공)

     

    ▶ 언론 시사회 때 이 영화는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했다. 혜정 씨를 위한 공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서울 거주 6개월이라는 기록이 필요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자격 조건이 됐는지 궁금하다.

    자격은 된다. 활동 지원 서비스 수급 자격과 혼동하시는 분도 많은데 그것과는 다르다. (이건) 발달장애인 중 도전적 행동이 심한 사람도 이용할 수 있었던 서비스였기 때문에 제가 목을 맸던 거였다. 혜정은 욕구가 충족 안 되면 소리를 막 지르거나 다른 사람들과 걸핏하면 싸우거나 하는 성향이라서 시설에도 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얘길 들었었다. (시설에서) 나오고 나서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 복지 서비스는 대부분 경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어쨌든 6개월 제한이 걸린 파일럿 프로그램, 그걸 받으려고 했는데 혜정과 1년 6개월 정도 살아보니까 그 프로그램은 우리보다 더 힘든 경우를 위한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다.

    ▶ 경증 장애인, 중증 장애인이라는 건 누가 판정하나.

    의학적 판단에 준거한다. 발달장애 같은 경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속한다. 그런데 개인에 따라 정말 다르다. 스스로의 인식, 주로 함께 지내는 보호자들의 인식이 되게 많이 작용한다.

    ▶ 혜정 씨가 시설 안에선 도전 행동이 많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라고 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분들(시설에서 일하는)에게 연락 온 적이 있다. 잠도 안 자고 커피 때문에 너무 자주 싸운다고. 사무실 선생님들 있는 데에 커피가 있는데 그걸 먹으러 가고 싶어서 도망치기도 하고, 몸으로 막 부딪쳐서 경첩을 부수고 나갔다더라. 그 정도로 관리가 안 되니 며칠만이라도 데리고 있어달라고. 선생님들 코피 난다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엔 안 믿었다. 왜냐하면 저하고 있을 때는 안 그러니까. 뭐가 됐든 환경 요인이 되게 크다고 생각했다.

    도전적 행동이 강한 최중증 장애 당사자가 탈시설했을 때 가장 드라마틱한 개선을 보였다는 스웨덴 연구 결과가 있다. 기본적으로 여럿이 프라이버시 없이 같은 공간 안에 24시간 있다면… 서로 욕구가 다른 이들이니 언제든 불씨가 발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밖에서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화낼 필요도 없으니까 안 그런 거다.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환경 안에 있는 것만으로, 자기를 '인간'으로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망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달라진다는 걸 체감했다. 사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제가 혜정의 환경에 있었다면 저도 너무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 1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에는 시설에서 나온 발달장애인 혜정 씨와 그의 언니 혜영 씨, 인서 씨, 은경 씨, 정민 씨 등 친구들이 나온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를 운영하며 혜정 씨를 찍은 영상 작업을 해 왔지만, 극장에 걸리는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을 것 같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첫 장편! 모든 게 어렵다. (웃음) 모든 게 어려웠지만 역시 그 유혹이 있었다. 제가 나오고, 제 주변인, 말하자면 가장 내밀한 사람들이 나오니까 감추고 싶은 욕망에 대한 걸 제어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다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상에서 힘든 부분이 있으니 '나 너무 힘들다' 하는 걸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 맨 처음에 이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어쨌든 일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거였다. 저 자신의 마음과 거리를 두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런 종류의 자아분열이 있었다.

    (편집하기) 전에는 구성을 하지 않았다. 다큐 편집 과정에 들어가면서 정말 지난하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질문이 있다. '이것은 이야기인가?', '이것은 좋은 이야기인가?' 하는 두 가지 물음으로 편집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것은 이야기인가, 하는 질문은 다른 말로 하자면 왜 사람들이 굳이 장혜정이라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봐야 하지? 왜 굳이? 그 바쁜 사람들이? 하는 거였다. 이것은 좋은 이야기인가,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보고 나서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그 변화는 좋은 것인가? 결국에 이야기로 만든다는 건, 삶의 서사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것이었다. 아까 얘기했던 함정을 그렇게 지나쳐올 수 있었다.

    개인은 특수성을 다 갖고 있지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측면의 보편성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남의 얘기에도 관심을 갖는 게 아닐까 싶다. 장애인의 경우 보편보다는 특수를 되게 강조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저기에 속하지 않아' 하면서 굉장히 안전한 지대에서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우리가 히어로물을 보면서도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느끼듯이, 장혜정과 장혜영과 주변인의 삶 또한 어떤 부분은 특수하더라도, 어떤 면에서는 되게 보편적인 부분이 있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 점이 있다고 믿었고 그걸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갔다.

    ▶ '어른이 되면'은 18년 동안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난 혜정-혜영 자매의 동거기다. 함께 살면서 혜정 씨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혜정을 2D로 보고 있었던 부분이 되게 많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3D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라고 봤던 거다. 요샛말로 '빻았다'고 하지 않나. (웃음) 어느 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같이 영화 보러 갔을 때가 있다. ('어른이 되면'에 나온) 은경도 영화를 진지하게 하는 친구다. 가열차게 작업해 왔던 영화 하나가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돼서 혜정이랑 보러 갔는데 GV 시간에 제가 질문을 했던 거다, 은경한테. 혜정이 그걸 보고 자기도 하고 싶었나 보다. 손을 번쩍 드는데, 순간적으로 제가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TPO(Time, Place, Occasion 때-장소-경우)에 맞는 질문을 하지 않을 거고, 폐가 될 것 같으니까.

    다행히 (혜정이) 손을 올리는 속도가 저보다 빨라서 마이크가 왔다. (웃음) 마이크 잡고 저를 보더라. "잘 봤습니다" 하고 마이크를 넘겼다. 그때 '아직도 멀었구나, 아직도 멀었어' 했다. 저조차도 장애는 뭔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고, 뭐랄까 늘 폐를 끼칠지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한 거다. 대중이 모이는 자리, 공공장소에서는 최소한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고, (혜정이) 뭘 하려고 하면 막으려고 했다. 그때의 그 아픈 깨달음이 없었으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없었을 것이다. 공공장소에 가면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 낯선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좀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 사실 '어른이 되면'을 보면서 '아, 난 혜영 씨처럼 저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작품이 누구 한 명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걸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게 아닌데도 저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바라봤고, 그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관객의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그런 감정이 드는 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하냐고 생각하느냐면, 장애인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는 거다. 장애인의 신체를 쳐다보는 것 자체가 사회적 맥락에서 무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면 안 된다고도 배운다. ('어른이 되면'에 나오는 사람은) 비장애인이 연기한 장애인도 아니고 진짜 장애인이니, 이걸 보고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배려를 넘어서지 않으면 장애인을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는 건 어렵다.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왜지?' 하고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특정한 감정들 자체를 배제하고 싶진 않다.

    '어른이 되면'을 청소년 관객에게 종종 상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하고의 대화가 희망적이었다. '마더' 같이 눈물겨운 모성을 그린 영화가 있지 않나. 이 친구들이 저 엄마처럼 눈물겨운 희생을 못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른이 되면' 속 혜정의 친구들을 보면서는) '저런 건 할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는 거다. 되게 반가웠다. (혜정과) 계속 붙어있는 건 확실히 힘들 거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만난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 다큐 안에서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 24명의 친구가 있었다면 1시간 동안 혜정을 돌볼 수 있을 거라고. 물론 혜영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혜정 씨는 때로는 단체의 도움을 받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돌봄'에 관해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 슬픈 일(가족이 장애인을 보살피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일어나는 것도 '이젠 안 되겠다', '혼자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본다. 시설은 가족이나 가족들에게 '너희들을 자유롭게 해 주겠다'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시간이라는 자원 앞에서 개인은 절대적으로 무력한 것 같다. 시간을 갖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거니까. 되게 원자화된 사회이지 않나. 저도 이 임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되게 노력하는 면이 크다. <계속>

    (노컷 인터뷰 ② 생각많은 둘째언니, 끝끝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이유)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