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심석희(21·한국체대)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심석희(21·한체대). 앞서 열린 재판에는 변호인을 통해 의견을 진술해왔던 심석희는 17일 열린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법정동을 직접 찾았다.
심석희는 그동안 2018-2019시즌 준비와 대회 출전으로 재판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입은 피해와 의견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이날 증인 출석을 결심했다.
여기에는 조 전 코치의 태도가 심석희가 결단을 내린 결정적 이유가 됐다. 앞선 재판들에서 반성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데다 항소심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는 것. 여기에 폭행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모습에서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심석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조 전 코치의 폭행이 시작됐고, 아이스하키 채로 맞아 손가락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무자비한 폭행으로 평창올림픽 전에는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고, 뇌진탕 증세로 올림픽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지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증언을 하면서 눈물을 쏟고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에 조 전 코치도 반성의 자세를 보였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심석희 측 관계자는 "조 전 코치가 '앞으로는 심석희 앞에 나타나지 않고, 반성하게 살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너무 늦게 뉘우쳤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항소심 1차 공판 등 앞선 재판들을 모두 봤지만 이전에는 조 전 코치가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었다"면서 "그랬기 때문에 심석희가 아버지 등과 상의해 증인 출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항소한 것 자체가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조 전 코치는 지난 9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앞선 혐의들이 인정돼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심석희 측은 이 판결도 형량이 가벼운데 조 전 코치가 항소까지 한 것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을 지도하는 조재범 전 코치(오른쪽)의 모습.(자료사진=이한형 기자)
여기에 조 전 코치가 폭행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태도도 문제였다는 의견이다. 지난 10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 전 코치의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여기서 조 전 코치는 "전명규 한체대 교수의 압박으로 직업을 잃을까 봐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다"며 폭행의 배경에 윗사람의 억압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했다. '쇼트트랙 대부' 전 교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던 평창올림픽 기간 불거진 전횡 의혹으로 사퇴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심석희 측 관계자는 "조 전 코치가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폭행을 가한 것처럼 진술한 부분에 어이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 전 코치 스스로 용납될 수 없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심석희가 재판에서 조 전 코치가 특정 선수를 밀어주기 위해 자신의 스케이트 날을 바꾸고 폭행했다고 주장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당초 조 전 코치는 손 의원에 전한 옥중 편지에서 "전 교수의 지시로 한체대 선수들이 무조건 더 잘 나가야 한다며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석희는 조 전 코치가 실제로는 한체대 소속인 자신에게 불리한 행동을 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심석희 측 관계자는 "이렇게 조 전 코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심석희가 재판에 직접 출석해 증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 전 코치의 반성 없는 태도와 폭행의 책임을 전가하는 자세가 눈물의 호소와 증언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단 조 전 코치 측 변호인은 "조 전 코치가 심석희의 스케이트 날을 바꿔치기했다거나 (특정 선수 지도를 위해) 올림픽 경기장에 나타났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