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양승태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에 대한 법리해석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9일 임 전 차장에 대한 두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직권남용죄의 경우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에 속하지 않으면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일뿐 직권남용죄가 아니다"라며 "피고인의 행위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직무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경우 성립된다. 임 전 차장의 경우 이 '직권'을 갖지 않는다는 게 변호인 주장이다.
이어 "행정처 업무는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며 "따라서 실·국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와 같은) 보고서를 쓰는 건 의무 없는 행위를 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직권을 갖는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법령과 규칙에 따르면 기획조정실장은 심의관들에 대해 지휘권이 있다"며 "기조실장보다 상급자인 당시 임 전 차장도 물론이다"라고 주장했다.
실·국장이 상급자 지시로 (블랙리스트와 같은)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의무 없는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 변호인 주장에 대해선 "이는 정당한 명령일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실·국장들은 피고인의 위법 부당한 명령에 따라서 보고서 등을 작성한 것"이라며 "이 경우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공판준비기일에 이어 공소장일본주의 관련 쟁점도 다시 떠올랐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재판부가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검사가 공소장에 범죄사실만 기재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부분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고 보고 기각 판단했다.
변호인 측은 "244쪽에 달하는 사법사상 최장의 공소장을 읽으면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회고하는 백서를 보는 느낌이었다"며 "그 자체로 유죄라고 보여질 정도로 검찰의 상세한 의견이나 부정적인 평가가 들어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공소장 하나만으로도 이미 중범죄자가 됐다"며 "여론재판만으로도 피고인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 '변호인' 대사를 인용하며 "재판은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피고인을 이미 죄인으로 취급하는 그 어떤 관행도 인정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공소사실에 대한 변호인 측의 이해가 부족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받아쳤다.
검찰은 "단순한 제목 기재가 판사에게 예단을 불러 일으키거나 실체를 판단하는 데 장애를 가져온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본적으로 공소사실 기재는 역사적 발생 사실을 증거로 판단·해석 후 기술하는 것으로 검찰의 의견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부분이 어떤 이유로 허용이 안된다는 건지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냥 모든 걸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으로 보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