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재 의원. (사진=자료사진)
"국회에 선례가 없는 주장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선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18일 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학재 의원의 "정보위원회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가라"는 요구에 대한 답변이다.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례는 있다.
2016년 새누리당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진영 의원은 당시 맡고 있던 안전행정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위원장은 정당의 몫인데 탈당을 했으니 내놓는 게 맞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의원은 다음 날인 19일 "진 의원의 사례를 확인했지만 안 그랬던 사례가 더 많다"며 계속해서 강변을 이어갔다.
이 의원의 주장은 이렇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의결을 통해 선출된다.
교섭단체 간 합의에 의해 상임위원장직을 배분받았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본회의에서 위원장직을 수여받았기 때문에 당적을 변경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자신이 속했던 바른미래당의 전신인 국민의당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며 자신의 위원장직 유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의원 말처럼 당을 옮기면서도 상임위원장 직을 함께 가져 간 전례는 다수 있다.
2002년 박상규 의원은 탈당 후 한나라당에 입당했지만 새천년민주당 소속 당시 선출된 산업자원위원장 자리를 16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유지했다.
최근으로 오면 올해 초 국민의당에서 민주평화당으로 이동한 장병완, 유성엽 의원과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국민의당 창당에 동참한 김동철, 박주선 의원, 2016년 바른정당을 창당했다가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간 권성동, 김영우, 이진복 의원도 계속 상임위원장직을 유지했다.
당적을 바꾸면서도 위원장직을 유지한 사례가 더 많기 때문에 이 의원의 주장은 얼핏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상임위원장은 그 임명은 본회의 표결로 결정되지만 사전에 교섭단체 간 합의로 위원장 후보자를 내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당의 몫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 다수 의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성 정당에서 또 다른 기성 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과정에 대한 문제 또한 제기되고 있다.
장병완 의원과 유성엽의원은 산업자원통상위원장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자리를 유지한 채 국민의당에서 평화당으로 이동했지만 평화당은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으로 분당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국민의당을 모체로 한 정당이기 때문에 아예 다른 당으로 이적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으로 국민의당이 사라지면서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은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무소속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분당 당시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간에는 상임위원장직을 둘러싼 별다른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런 점에서 기성정당에서 기성정당으로 이동한 이 의원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민의당은 당이 사라지면서 분당이 됐기 때문에 이 의원의 탈당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상임위원장은 당별로 할당하고 그 후에 당이 위원장 후보를 정하고 본회의에서는 인준만 할 뿐이기 때문에 정당에 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같은 '비(非) 상도의성'에 대해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아닌 민주당과 평화당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원구성 협상에서 합의한 것은 '정보위원장은 바른미래당이 맡는다'는 것이었다"고 말했고 평화당도 "상임위원장 배분은 교섭단체 간 합의에 의해 배분하는 것이므로 합의 당시 당적을 기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합당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당적을 변경할 경우 상임위원장직을 사임'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사안의 칼 자루를 쥐게 된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향후 비교섭단체가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점과 함께 이번처럼 당적을 변경한 경우에 대해 정치적 도의 문제와 바람직한 국회 관행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미 여야 간 합의로 선출된 다른 당 소속 상임위원장 문제를 결부시킨 점은 '너희가 위원장직을 내놓지 않으니 우리도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올바른 '정치적 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을 한 만큼 관련 제도 마련을 위한 국회 내의 숙고와 결단은 내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