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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재탄생, 고문받던 종철이와 아버지 모두 기뻐할 것"

사회 일반

    "남영동 재탄생, 고문받던 종철이와 아버지 모두 기뻐할 것"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아주 좋았다
    '이관식',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민주주의, 인권 소중함 느낄 수 있는 공간
    경찰청, 509호실 제외하고 고문 흔적 지워
    시간 걸려도 민간 주도로 원형 보존 목표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8년 12월 26일 (수)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박종부 (박종철 열사 형)

     

    ◇ 정관용> 네 달 1월이 되면 고 박종철 열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숨진 지 32년이 됩니다. 민주화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악명높은 장소. 남영동 대공분실이 오늘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어요. 오늘 이관식이 열렸는데 그 현장에 박종철 열사의 친형님이시죠. 박종부 씨가 함께했습니다. 직접 연결해서 오늘의 소감 좀 들어보도록 하죠. 박종부 씨, 안녕하세요.

    ◆ 박종부> 안녕하십니까. 박종부입니다.

    ◇ 정관용> 먼저 소감 한말씀.

    ◆ 박종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현 문재인 정권에서 이루어진 이관식이라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 정관용> 너무 늦었다. 그렇죠.

    ◆ 박종부> 네, 네.

    ◇ 정관용> 그런데 오늘 이름이 이관식인 것은 왜 그렇습니까?

    ◆ 박종부> 공식적으로 그러니까 남영동 대공분실 자체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시민의 품으로 넘긴다는 그러한 개념의 이관식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청이 관리해 왔죠.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이관한다는 얘기는 그 관리 주체를 경찰청에서 행정자치부로 옮긴다는 얘기입니까?

    ◆ 박종부> 정확하게는 경찰청도 행안부 독립기관이지만 행안부에 보고하기로 돼 있죠. 그래서 행안부가 경찰청이 관리하는 걸 시민의 품으로 넘기는 것이지만 시민이 관리주체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관리의 위탁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체에 관리인이 위탁하는 그런 형태가 됩니다.

    ◇ 정관용>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이제는 여기를 관리하는군요.

    ◆ 박종부> 그렇게 됩니다.

    ◇ 정관용> 사실 박종부 씨 87년 그때 이후로 90년대까지는 남영동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지 않으셨어요, 혹시?

    26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이관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민갑룡 경찰청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이 시민들과 함께 분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사진=김형준 기자)

     

    ◆ 박종부> 그렇지만 더러 다녔습니다. 당시에 공식적으로 개방하기 이전까지도 아버지와 저 같은 경우는 유족으로서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었습니다. 가서 509호실을 둘러보고 했었죠.

    ◇ 정관용> 오래전부터 박종철 기념사업회에서는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들자,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해 오셨는데 그 이유는 뭡니까?

    ◆ 박종부> 저희 아버지이신 박정기 아버님과 함께 20여 년을 한 결같이 주장해 왔었습니다. 사실 이번만큼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하고 교육할 수 있는 그러한 훌륭한 공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이곳은 반드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 정관용> 어찌 보면 안기부 남산 분실이 있었고요. 또 보안사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현장들이 슬그머니 다 없어져 버렸죠?

    ◆ 박종부>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군다나 남영동만큼은 기필코 보존되어야 하고 그리고 운영복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정관용> 지금 원형에서 일부 훼손이 되고 변화가 있습니까?

    ◆ 박종부> 상당히 많이 훼손돼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종부> 실제 5층 조사실, 사실 고문실이죠. 5층 조사실은 한 군데 빼놓고는 모든 집기가 다 철거가 되어 있고요. 그리고 한 군데라는 곳이 제 동생 박종철이 죽어간 509호실인데 509호실을 원형 보존을 하겠다고 했습니다만 그리고 복구를 했다고 합니다마는 사실은 원형은 아닙니다. 원형은 아닌 걸. 그 당시 고문당했던 많은 분들이 아직도 생존해 계시니까. 그분들의 증언 같은 것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예전의 그 상태로 운영복구를 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동안에 5층에 509호 빼놓고 나머지는 집기를 다 드러내고 그런 건 누가 왜 그렇게 한 겁니까?

    ◆ 박종부> 실제 지난 2006년, 2007년을 거치면서 경찰청의 시민인권위원회 등등 해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죠. 남영동 대공분실의 활용 방안 같은 것을 많이 검토하고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경찰청에서 의도했던 인권센터가 들어가게 되었고 인권센터가 들어가게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5층 조사실은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시민인권위원회의 한결같은 주장이었습니다마는 우리 주장대로 관철시키지 못했었죠.

    ◇ 정관용> 경찰청은 그곳을 인권센터로 경찰이 주관하면서 운영하겠다라고 하며 사실상은 고문의 흔적을 지워버린 거네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씨의 영정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박 열사가 사망한 조사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진환기자)

     

    ◆ 박종부> 많이 훼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완전히 원형으로 다시 복구하려면 당장 내일부터 그렇게 복구된 형태로 일반 시민들이 찾고 이럴 수는 없는 상태군요, 아직은.

    ◆ 박종부> 사실 아직은 좀 무리합니다. 상당한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정식으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개관해서 일반 시민이 다 그 현장을 볼 수 있게 되려면 언제쯤 될까요?

    ◆ 박종부> 이곳이 부지만 해도 2000평이 넘습니다. 그리고 7층으로 이루어진 본관 건물이 있고요. 그리고 또 3개의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시민의 품으로 안기게 될지는 아직도 논의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아직 기본 설계 같은 것도 끝나지는 않은 상태군요.

    ◆ 박종부> 그렇지 않습니다.

    ◇ 정관용> 어쨌든 오늘 그러면 이제 경찰은 손 떼라. 민간이 이걸 좀 주관해서 만들어보겠다 그것을 선언한 그런 행사라고 볼 수 있겠군요.

    ◆ 박종부> 정확합니다.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 정관용> 아쉽게도 아버님, 고 박정기 씨가 지난 7월 돌아가셨잖아요.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 것 같으세요.

    ◆ 박종부> 많이 기뻐하셨을 겁니다. 아버님께서는 생전에도 그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보존을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결국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굳게 믿으셨던 분이시고요. 지난 6월 10일이었죠. 6월 10일날 대통령께서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그 발언을 전해 들으시고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언제 이루어지느냐 등의 진행 상황을 항상 물어보시고 하셨습니다. 지금 종철이와 같이 매우 기뻐하고 있을 겁니다.

    ◇ 정관용> 그래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일, 이제 너무 늦었고요. 지금이라도 서울로 서둘러서 시민의 품에 그 당시를 기릴 수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제대로 개관하게 되기를 좀 바라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박종부> 감사합니다.

    ◇ 정관용> 고 박종철 열사의 형님이시죠.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 이사이신 박종부 이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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