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익환, 문동환, 송몽규 등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북간도'(현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일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간도 지방의 동부로 두만강과 마주한 지역인 북간도는 1800년대 말 일제의 무자비한 수탈에 견디지 못한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대거 이주한 곳이었다.
이후 그곳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과 반일 자치운동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먹고 살기 위해 이주한 곳에서는 대체 어떠한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내용을 CBS TV 특집 다큐멘터리 2부작 '북간도의 십자가'(1월 1일, 2일 연속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을 기념해 기획·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
◇ 항일운동과 기독교 그리고 북간도
'북간도의 십자가'를 연출한 반태경 PD는 이번 기획을 하게 된 배경으로 "3.1운동 당시 기독교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다가"였다며, "당시 기독교인의 참여도는 매우 컸다"고 밝혔다.
"1919년 당시 인구가 1600만 명이었고, 이중 겨우 1.5%(20만 명)가 기독교인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3월에서 5월까지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온 사람들을 조사하니 22%가, 3월에서 12월까지는 17%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방송내용 中)
반 PD는 기독교 독립 운동사의 뿌리를 찾아가다 북간도에 자리 잡은 기독교인들을 마주했다.
'간도 대통령'이라 불린 규암 김약연 목사 가문을 비롯해 윤동주 시인 가문, 문익환 목사 가문 등이 북간도로 이주해 땅 600만 평을 산 뒤 공동체를 꾸렸다. 농사를 짓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항일 무장투쟁도 진행했다.
"농사를 짓더라도 학전, 경전, 군전 셋으로 나눴다. 그곳에서 나오는 소득은 자기네 먹고 사는 데 1/3, 아이들 가르치는 데 1/3, 독립운동 후원하는 데 1/3. 이처럼 철저하게, 그러니까 마을을 조성할 때부터 목적이 그거였다."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 방송내용 中)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 시위도 북간도에서 일어났다. 바로 북간도 용정에서 벌어진 3.13 시위이다. 아울러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에도 다수의 북간도 기독교인들이 참여했다.
막새기와
북간도 기독교인들의 배짱은 일상에서도 드러난다. 기와지붕 처마 끝 '막새기와'에는 태극기 문양과 십자가가 새겨있다. 일제 헌병이 득실거려도 당당하게 자신이 조선인임을 잊지 않고 있으며, 빼앗긴 조선의 독립을 기독교를 통해 이루겠다는 각오를 담은 것이다.
이처럼 다큐에서는 이주할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와는 무관했던 이들이, 왜 기독교를 받아들였는지의 사연부터 시작해 어떠한 정신과 방식으로 항일운동을 진행했는지를, 다양한 증언과 사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아울러 항일운동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김약연을 보필했던 문재린(문익환/문동환의 부친), 은진중학교 교목을 지낸 김재준(한국기독교장로회 설립자), 은진중학교에서 수학한 강원룡, 문익환, 문동환 등 북간도의 후예들이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화·통일·인권·노동운동에 기여한 이야기까지도 볼 수 있다.
◇ 북간도 마지막 생존자 문동환과 역사학자 심용환의 만남…그리고 내레이션 문성근
문동환 목사(우)와 심용환 작가.
다큐는 북간도 출신 마지막 생존 인사인 문동환 목사와 젊은 역사학자인 심용환 작가의 시선을 교차하는 형식으로 북간도 항일 독립운동 이야기를 추적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문동환 목사가 회고하는 북간도 곳곳을 심 작가가 직접 찾아간다. 이어 작가가 북간도 현지에서 느끼는 감동과 질문에 대해 문 목사가 화답하는 방식이다.
배우 문성근이 내레이션을 맡아 작은아버지 문동환 목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만 97세인 문 목사의 시점에서 내레이션을 하다 보니 반말 투로 이야기한다. 반 PD는 "반말로 진행되는 다큐는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며 웃음 지었다.
배우 문성근.
문성근은 "단순히 제 아버지(문익환 목사)의 이야기를 다루거나, 작은아버지(문동환 목사) 역할로 목소리 연기해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며 "3.1운동 100년에 명동촌(村) 기독교를 점검하는 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북간도의 기독교는 독립운동의 기지 같은 기능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또한 다큐의 역사적 고증과 새로운 발굴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측이 오랜 북간도 취재와 연구를 통해 입수한 다양한 유적과 사료들을 최초로 공개한다.
여기에 이만열(前국사편찬위원장), 윤경로(前한성대 총장), 북간도 연구의 최고 권위자 서굉일(한신대 명예교수), 이덕주(前감신대 교수) 등 교계와 학계를 아우르는 사학자들이 공식 자문진으로 참여해 다큐멘터리의 논리적 완결성을 뒷받침해준다.
북한 및 김일성 연구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인 미국 하와이대 서대숙 명예교수(1931년 북간도 용정 출생)도 출연해 일제 강점기 북간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전하기도 한다.
◇ 100년 전 '북간도의 십자가 사건'은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북간도의 십자가'는 3.1운동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그러나 단순히 '100년 전 기독교는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을 역할을 감당했다'는 식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반태경 PD가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선보인 다큐 '다시 쓰는 루터 로드'도 그러했지만, 다큐는 결국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
반 PD는 "100년 전과 북간도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과제 앞에서 종교·종교인의 올바른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갔다. '과연 지금의 한국교회는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진 탄압을 견디며, 시대를 선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시대와 호흡하고 신앙을 실천하는 것. 성경 속 가르침대로 낮은 자와 소외된 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 이번 다큐 역시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