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기해년(己亥年)의 해가 밝았다. 2019년 보수 정치권 등 야권의 핵심 과제는 통합이 될 전망이다. 올해 2월말~3월초로 예정된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이후 2020년 4월 총선 전까지 야권은 새 판을 짜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철저히 선거와 맞물린 관측이다. 2019년 한 해 동안에는 큰 선거가 없다. 6‧13 지방선거를 치렀던 지난해 국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 원내교섭단체들 그리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대한애국당 등의 나머지 야권으로 재편됐다.
이 같은 구도는 지난 2016년 총선 당시와 비교하면 옛 새누리당 출신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국민의당 계열은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나뉘어 재편된 결과였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참패로 현재의 구도가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야권은 현재의 판을 흔들고 서로 힘을 합치려 들 가능성이 커졌다.
◇ 합당이냐 선거연대냐…한국당 전대에 달려통합이냐 선거연대냐, 야권이 정계 개편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선 한국당의 새 당 대표 선거가 주요 변수다. 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털어내고, 차기 지도부를 통해 자립하고 자체적으로 총선을 치러낼 역량을 회복하면 통합의 필요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때문에 누가 당 대표가 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초반 판세는 비박계 및 복당파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견제할 친박계 후보가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대세론 형성이 가능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김태호 전 경남지사, 김진태‧정우택 의원 등이 친박계 결집의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정 계파와의 친소관계가 불분명한 홍준표 전 대표의 전대 출마 여부도 주요 변수다. 홍 전 대표의 관계자는 “1월 중 자서전 발간이 예정돼 있고, 이 시점을 전후에 결심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당의 당권 경쟁이 결국 계파 간 경쟁구도를 피할 수 없게 돼 버린 점은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적법한 것이었느냐는 질문이 당 대표 선거의 의제가 될 수밖에 없고, 어떤 계파가 승리하는지에 따라서 평가를 달리 하게 된다.
친박계가 승리하게 되면 한국당은 ‘탄핵당’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영남권(TK), 고연령층 위주의 당원 성향 때문에 어떤 주자도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쉽지 않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오 전 시장 역시 탄핵 당시 원외인사였고, 탄핵을 주도한 인사도 아니기 때문에 그가 당선된다고 해서 탄핵 사태를 역사화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보수 태극기 부대 집회 (사진=박종민 기자)
◇ 태극기부대 VS 개혁보수…‘물과 기름’, 한솥밥 가능?나경원 원내대표를 당선시킨 지난 원내 경선에 이어 전대에서 또 다시 친박계가 승리해 주도권을 회복하게 되면 탄핵 찬성파를 끌어들이는 통합은 힘들어질 전망이다. 대신 태극기 부대를 주요 세력으로 하는 대한애국당과의 합당이 추진될 수 있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1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하는 상대는 바른미래당이 아니라, 대한애국당”이라며 “애국당 당원들이 보수가 궤멸됐을 때 전장에 나서 싸운 전사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우해줘야 하는 반면, 당을 박차고 떠난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피난 떠났던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맥락에서 친박계에선 바른미래당과는 통합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선거연대면 충분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당권=공천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새 당 대표가 친박계가 되면 애국당을 껴안아 공천하면 득표율 30%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흐른다.
보수 정치권에서 태극기부대와 반대편에 위치한 개혁보수도 현재로선 통합에 난색을 표하긴 마찬가지였다. 바른미래당 소속 한 전직 의원은 통화에서 “태극기부대가 중심이 되는 통합을 하면 개혁보수는 떠난다”라며 “수도권-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한 개혁보수가 당권을 쥐고, 태극기부대 중 건전한 보수를 선별하는 형태의 통합만이 진정한 통합”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진영이 탄핵을 문제를 놓고 여전히 분열돼 있고, 난제를 풀어낼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건은 한국당이 새 지도부를 꾸린 뒤 예전의 국민적 인기를 회복하는지에 달렸다. 한국당이 유일한 대안 정당으로 우뚝 서면 바른미래당 내부 바른정당 계열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겠지만, 개혁보수와의 통합이 절실한 상황이 이어지면 통합 필요성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 점검단이 서울역에 도착한 지난 1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기, 인공기 등을 태우고 있다. (사진=황진환기자)
◇ “반(反)문재인 연대만으론 통합 불가”보수야권의 각 정파를 단순히 한 묶음으로 모으는 방식의 통합에 대해선 정치권 외부에서도 부정적인 전망이 제기된다. 현재 정부 정책의 문제점 때문에 ‘반문(反文‧반문재인)연대’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연대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CBS노컷뉴스에 보낸 서신을 통해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반공을 내걸고 만든 자유당(1950년대), 민주공화당(1960-1970년대)은 냉전시대에나 가능했지 탈냉전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다”며 “지금은 반문, 반공이 아니라 무엇을 추진하겠다는 모토로 내걸고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문연대는 반공처럼 상대방을 정적(政敵)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방편일 뿐 정강정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인 셈이다.
임 교수는 대안에 대해 “바람직한 통합정당을 만들기 위해선 다중(성적 소수자, 진보 기독교와 타 종교, 20대, 외국이주자, 페미니스트, 한반도평화세력, 청년실업자, 빈곤노인층 등)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수혈하고 정당과 통합해야 한다”며 “진정한 통합은 흡수통합이 아니라 각 개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 연대하는 정당 연대”라고 조언했다.
한국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보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대변하는 정파들을 수용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재건의 방식으로 통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